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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 아닌 창고 방치된 답안지… 공단은 30일간 몰랐다

입력 : 2023-05-23 19:14:34 수정 : 2023-05-23 19: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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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국가시험 답안지 파쇄

17개 시험장 답안지만 정상 입고
채점센터 확인요청 후 누락 인지

응시자들 언론보도로 사태 파악
공단, 재시험 등 대책 내놨지만
난이도 등 형평성 논란 불가피
합격자 발표 연기될 가능성도

초유의 정기 기사·산업기사 실기시험 답안지 ‘무더기 파쇄 사태’는 국가기술자격시험 주관 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관리 부실이 주된 요인이다. 국가자격기술시험이 공무원이나 사기업 임용 조건 등으로 쓰이고 있어 향후 결과를 두고 작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한 달이 다 돼서야 사태를 파악한 공단은 피해자들에게 재시험 응시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 이외에 별다른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번 사태로 치명상을 입게 된 국가자격시험 공신력의 회복을 위해 공단이 철저한 진상 조사, 책임자 처벌은 물론이고 구조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개 숙인 어수봉 이사장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가자격시험 답안지 무더기 파쇄’ 사태에 대해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세종=뉴시스

23일 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 연서중학교에서 치러진 ‘20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의 61개 종목, 609명의 답안지는 관할인 서울서부지사로 옮겨졌다. 서울서부지사에는 관할 지역 18개 시험장의 답안지가 도착했는데, 이 중 17개 시험장의 답안지만 정상적으로 금고에 입고됐다. 나머지 1개인 연서중의 답안지는 금고 옆 창고에 방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튿날인 지난달 24일 금고 안의 답안지는 다른 지역의 채점센터로 보내졌다. 이 과정에서 채점센터 관계자는 연서중의 답안지가 누락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단이 사태를 인지한 시점은 시험을 치르고 한 달쯤 뒤인 지난 20일이다. 응시자 대비 답안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한 채점센터는 서울서부지사에 확인을 요청했다. 공단이 사태 파악에 나선 시점에는 답안지가 있던 창고의 모든 서류가 파쇄된 뒤였다.

피해를 입은 응시자 609명은 이날 언론 발표를 통해 사태를 처음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문도 모르던 피해자들은 합격자 발표를 2주가량 앞두고 재시험을 치르게 된 것이다. 국가자격기술시험이 공무원이나 사기업 임용 등의 조건으로 쓰이는 만큼 합격자 발표를 미루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공단은 피해자 609명 전원에게 개별 연락을 통해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또 피해자들에게 6월 1∼4일 추가 시험 기회를 제공해 예정대로 6월9일 합격자를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날짜에 시험을 치르지 못한 피해자에게는 6월 24∼25일에도 시험 기회를 제공한다. 다만 이 날짜에 시험을 치르면 합격 발표는 6월27일 이뤄진다.

재시험을 총 6일에 걸쳐 진행하는 만큼, 공단은 6번의 시험 문제를 다시 출제해야 한다. 합격자 발표가 절대평가에 따라 이뤄지는 만큼 공정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공단 측의 설명이지만, 시험의 난이도 등을 두고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법률사무소 다반의 방효경 변호사는 “재시험 기회를 주더라도 응시 날짜에 따라 문제가 달라지고 시험 당일의 지식 습득 정도나 컨디션 등의 변수가 많기 때문에 피해가 완전히 회복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공단은 609명 전원에게 재시험 교통비를 지원하고, 시험 시간만큼의 비용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재시험을 보지 않은 경우 수수료를 전액 환불하기로 했다.

공단 자체적으로는 책임자 문책과 함께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기술자격 시행 프로세스 전반을 재점검하기로 했다. 공단의 자체적인 진상 규명과 별도로 고용노동부는 공단을 대상으로 특별감독에 돌입할 것으로 전해졌다.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피해를 입은 609명 중 한 명도 빠짐없이 재응시할 수 있도록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연락해 사과한 후 재시험에 대해 설명하고, 피해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고를 철저히 조사해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고 저를 비롯해 관련 책임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며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서도 책임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권구성·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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