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간 조정으로 실질해결책 제시
사건 처리기간 1건당 42일로 단축
조정 성립률도 78%까지 끌어올려
분쟁조정 외 연구·상담 등 업무 다양
확대된 역할 걸맞게 기관명 변경 추진
온라인 플랫폼 등 새 영역 대처 위해
공정거래분야 박사급 인력 확보 시급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은 일반인에게는 낯선 조직이다. 명칭도 익숙하지 않은 데다 하는 일도 ‘직관적’으로 알기 쉽지 않다. 하지만 억울한 일을 당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는 다르다. 이들에게 조정원은 각종 불공정거래 행위를 조정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특히 사건이 상급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까지 가기 전, 분쟁 당사자 간 조정을 통해 빠른 실질적 해결책을 만들어 내고 있다.
2년 넘게 조정원을 이끌고 있는 김형배 원장은 ‘신속한 조정 성립’을 위해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김 원장은 “조정의 핵심은 신속함과 상호 만족”이라고 말한다. 사업자 간 분쟁 발생 시 오랜 시간과 비용이 소모돼 양측 다 손해를 보는 소송 대신 당사자 간 원만한 합의를 끌어내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이는 조정원의 역할을 강조한 말이다. 실제 김 원장 취임 후 조정원의 사건 처리 기간은 일주일가량 단축됐다.
김 원장은 2008년 공정거래조정원 설립 이후 확대된 기관의 역할에 걸맞은 기관명 변경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공정거래조정원이라는 이름이 당사자 간 공정거래 조정뿐 아니라 연구, 교육, 예방 상담까지 수행하는 현재 기관의 역할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김 원장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분쟁조정통합법제정안에 기관 명칭 변경이 담길 수 있도록 공정위와 협의 중이다.
30년 가까운 공정위 근무 기간 동안 꼼꼼한 일처리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는 조정원에서도 3년째 ‘조용한 혁신’을 진행 중이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세계일보와 만난 김 원장은 조정원의 역할과 미래에 대한 선명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다음은 김 원장과의 일문일답.
―취임 2년이 넘었다. 그동안 어떤 성과를 냈다고 자평하나.
“조정 처리 기간 단축과 높은 조정 성립률이다. 조정원에는 1년에 3000건 이상의 조정 신청이 들어오는데, 과거 1건당 49일 정도가 걸렸다. 이를 내부 시스템 개조와 교육 등을 통해서 42일로 단축했다. 조정 성립률도 78%까지 끌어올렸는데 임기 동안 목표는 이를 80%로 만드는 것이다. 사건 처리 단축과 조정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다. 실력과 태도, 전문성을 고루 갖춘 인재가 있어야 한다.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교육을 대폭 확대했다. 외부 강사, 국제분쟁조정전문가 등을 초빙해 직원들의 열정과 전문성을 배양했고, 내부적으로 인정받는 직원 및 팀장들에게 노하우를 발표하도록 하는 등 교육 강화에 힘썼다. 아울러 모든 사건 기록의 이력 카드를 만들도록 하며, 보고 체계를 간소화하고 소회의 개최 빈도를 늘리는 등 제도 개선도 추진한 결과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조정 업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1년, 마스크 대란 때 피해를 본 제조업체를 구제해 준 사건이 있다. 판매상이 제조업체에 약 110억원어치 물건을 주문했으나 마스크 가격이 급락하자 판매업체가 손실을 우려해 거래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에 우리는 양 당사자들의 입장 차이를 좁히는 노력을 했고, 제조업체가 88억원을 받고 마스크 일부를 판매상에 저렴하게 공급하는 정도로 조정을 이뤄냈다.”
―최근 온라인 플랫폼 관련 분쟁이 증가하고 있다. 현재 조정원의 플랫폼 분쟁 사건 처리는 어떤 상황인가.
“코로나19를 겪으며 온라인 플랫폼 관련 분쟁조정 신청 또한 2020년 73건에서 지난해 111건으로 3년간 약 23% 증가했다. 지난 4월 말 기준 접수 사건 수도 4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가 증가했다. 이처럼 매년 증가하는 온라인 플랫폼 거래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1월 ‘가맹유통플랫폼팀’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전담 부서를 통해 온라인 플랫폼 분쟁조정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네카쿠’(네이버·카카오·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자율 규제에서 기관 개입 쪽으로 변화하는 분위기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정부의 기조는 시장 중심의 경제 운영이다. 플랫폼 문제도 정부의 일반 기조에 따라 민간의 자율 규제에 무게를 두고 방향을 잡고 있다고 본다.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자율 규제와 정부의 법 집행이 상호 대체적이고 갈등 관계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민간의 자율 규제와 정부의 법 집행은 상호 보완 관계로 봐야 한다. 플랫폼과 입점업체 간 불공정 계약, 수수료 수준과 같이 사적 계약 성격이 강한 이슈들은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이해관계자들이 상생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다만 거대 플랫폼이 중소 경쟁자를 시장에서 쫓아내거나 잠재적 경쟁자를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반칙 행위는 시장 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최근 기업의 공정거래자율준수프로그램(CP) 도입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어떤 방안이 필요하나.
“CP 확산을 위해서는 여기에 투자하는 비용을 단기 차원으로 보지 말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관점의 투자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정원은 기업들의 자율적인 CP 도입을 위해 찾아가는 CP등급평가 설명회, CP 심포지엄, CP 포럼 등을 열고 평가 신청 기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ESG 경영 확산에 따라 CP 도입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취임 때부터 공정거래조정원 명칭 변경을 추진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어느 정도 진전된 상태인가.
“다수 전문가가 ‘한국공정거래원’으로 이름을 변경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보였다. 공정거래조정원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사람은 우리가 조정 업무만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불공정거래 예방 활동, 갑을 관계 분쟁 해결, 경쟁영향평가, 동의의결 이행 관리, CP 평가 등 정말 다양한 업무를 수행 중이다. 이러한 일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명칭이 필요하다. ‘공정거래진흥원’이라는 이름도 나왔는데 아무래도 한국공정거래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조정원의 연구 기능 강화도 강조했다.
“조정원 연구센터는 국내 유일의 공정거래 분야 전문 연구 조직으로,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등을 활용한 경쟁법 집행에 관한 연구’, ‘EU의 지배적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데이터 FRAND(표준특허는 로열티를 지불하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원칙)’ 의무 규제에 관한 연구 등을 올해 추진 중이다. 앞으로도 조정원의 연구 성과를 확산하고 새로운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유관 기관과의 학술행사 개최 확대 등 대외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역할이 늘어난 만큼 인력도 더 필요하지 않은가.
“정말 절실하고 그래서 더욱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 원장으로 오고 예산 관련해서 관련 부처와 여러 차례 협의했는데 ‘조정원이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더라. 현재 연구 개수도 많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요구하는 것도 많고, 온라인 플랫폼 같이 새로운 영역에 대한 부분도 복잡해 어려움이 많다. 공공기관 인력 문제 등 때문에 연구 인력 증원이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조정원이 공정위의 손발이 돼 시급한 사안을 도맡아 해결하며 사회적 편익을 만들어 내고 있는 만큼 공정거래 분야의 전문 지식과 풍부한 연구 경험을 갖춘 박사급 전문 연구 인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올해 문을 연 대리점종합지원센터의 역할은.
“대리점들의 애로 및 고충 해소를 위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변호사 등 전문 인력이 사안별로 최적의 분쟁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필요 시 공정위 신고서 작성 지원까지 도와주고 있다. 또한 소송을 스스로 수행하기 어려운 영세 대리점에는 외부 위촉 변호사들과 연계해 소송 대리 지원을 제공하고, 법률 문서가 익숙지 않은 점주들을 위해 소장, 지급명령신청서 등의 법률 문서 작성 지원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교육도 병행한다. 대리점들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리점법 및 사례 교육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상시 제공하고 있으며, 이슈별·업종별 간담회도 개최한다.”
―끝으로 조정원에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할 사항이 있다면.
“분쟁조정 상임위원 도입이 절실하다. 연간 3000건 이상의 분쟁조정을 다루고 있지만 교수, 변호사 등 비상임위원 중심의 조정회의만 있을 뿐 상임위원은 없어 심도 있고 적시성 있는 안건 검토가 어렵다. 이에 따라 성립률 저하 및 처리 기간 지연 등이 우려된다. 따라서 공정거래법 등 6개 법률 개정을 통해 공정거래 등 6개 분야에 각 1명의 상임위원을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현재 관련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 심사 중이다.”
◆김형배 공정거래조정원장은…
●1963년 출생 ●삼척고 ●고려대 경제학과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제학과(석사) ●행정고시 34회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총괄담당관·감사담당관·대변인·시장감시국장·시장구조개선정책관·카르텔조사국장·상임위원 ●주미대사관 공사참사관 ●UN무역개발협의회(UNCTAD) 경쟁소비자정책 자문관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경쟁위원회 부의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