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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꿈꿨던 베토벤 ‘합창’교향곡 지휘하는 김선욱 “자가격리하며 악보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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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2-13 19:37:37 수정 : 2022-12-13 19: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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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에 인생 건 ‘신입 지휘자’

“(독일로) 출국하러 공항에 가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지휘를 해줄 수 있겠느냐는) 연락을 받고 저의 34년 일생에서 가장 많은 고심을 했습니다. 리허설 때까지 나흘 동안 준비할 시간도 촉박했거든요.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30∼40분가량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결국 베토벤이어서 지휘를 맡기로 결심했어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올해 마지막 무대인 베토벤 교향곡 ‘합창’ 지휘자로 나서는 피아니스트 김선욱(34)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지휘를 맡기까지 있었던 우여곡절을 전했다. 당초 서울시향은 올 연말 임기가 종료되는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이 14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15~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예정된 마지막 공연으로 베토벤 교향곡 ‘합창’을 지휘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공연을 일주일가량 앞둔 상황에서 고국 핀란드에 머물던 벤스케 음악감독이 낙상 사고로 골반을 다쳐 입국하지 못하게 돼 대신할 지휘자를 급히 찾아야 했다. 서울시향 측은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왔고 올해 지휘와 협연 무대를 함께 했던 김선욱을 떠올렸고 공항가는 길인 그에게 연락이 닿은 것이다.

 

김선욱은 고심 끝에 서울시향의 요청을 수락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휘자를 꿈꿨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9년 12월31일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처음 베토벤 9번 교향곡 연주 실황을 들었어요. 그 당시 마음 속으로 ‘내가 과연 이 이곡을 지휘할 순간이 올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알다시피 ‘합창’은 상임 지휘자(음악감독)가 아닌 이상 (지휘)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대형 오케스트라와 합창단도 필요하고 쉽게 지휘할 수 있는 곡이 아닙니다. 하지만 베토벤이어서 수락했습니다.”

그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을 연주하는 등 베토벤에 정통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연말 연주 일정과 새로운 레퍼토리 준비를 위해 거주지인 독일로 출국하려던 그는 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돌려 호텔로 돌아왔고, 리허설 전까지 주어진 지난 8∼11일 나흘간 두문불출하며 악보와 씨름했다. 

 

“밥 먹으로 나갈 때 빼곤 자가격리를 했죠.(웃음) 4일 동안 하루 14∼15시간씩 악보를 보며 연구했어요. 제 짧은 인생에 이렇게까지 온 영혼과 정성과 생각을 다 투입한 게 얼마만인가 싶을 정도로…”

 

지난해 초 KBS교향악단과 함께 지휘자로 데뷔한 김선욱은 내년 10월 서울시향 정기공연 지휘 데뷔 무대를 앞두고 있었으나, 이번 공연으로 미리 데뷔하게 됐다. 그는 지난 8월 광복 77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서울시향을 처음 지휘한 바 있다. 해외 데뷔는 지난해 영국 본머스 심포니와 함께 했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은 클래식 애호가를 비롯해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작품으로 특히 한해를 마감하는 이맘 때 자주 연주된다. 서울시향이 매년 선보이는 인기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편성을 줄이고 소규모로 진행돼왔지만, 올해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 87명, 성악가 4명, 합창단 119명 합쳐 모두 211명이 무대에 올라 제모습을 갖춘다.  

 

김선욱은 “‘합창’교향곡은 베토벤이 음악적인 모든 열정과 능력 등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은 작품”이라며 “베토벤은 특히 (연주자가) 생각하지 않으면 그의 음악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리허설 때) 단원들에게 ‘연주자가 베토벤 음악을 본능적으로 즐기려 하면 굉장히 위험하다. 철저한 계획과 목적, 의지력을 갖고 연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그러면서 호텔 방에 박혀 악보를 탐구할 때 느꼈던 바를 소개했다. “(악보를 해석하는) 시간이 촉박한 게 문제가 아니라 (‘합창’교향곡이란) 음악 자체가 가진 힘이 어마어마해서 첫날은 그힘에 압도당했어요. 베토벤 음악이 그래요. 정말 머리를 많이 써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첫째, 둘째 날이 정말 힘들었어요. 음표들이 주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해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랄까. 3악장의 경우 마음이 이상해지고, 감정이 소용돌이 쳤다 뜨거워지고. 쿡쿡 찌르고 아프고. 희망을 노래하는데 희망은 안 보이고 말이죠. 4악장에선 갑자기 하늘의 어떤 신성한 존재와 접촉하는 것 같으면서도 인간적인, 모든 인류의 형제애가 나오니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그래서 이틀까지는 곡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다음 불덩이를 조금씩 조절해 나갔어요.”

 

피아니스트로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렸음에도 뒤늦게 어려운 지휘자의 길도 병행한 김선욱은 ‘신입 지휘자’라고 낮추면서도 ‘인생을 걸었다’며 지휘자로서도 자신의 한계와 싸워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지휘자로 데뷔한 지) 2년 가까이 되는데 지금은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갈 길이 멀지만, 그게 음악가의 길이기도 하고요. 한번 (지휘)할 때마다 정말 많이 배우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지휘를 할 때마다 최대한 많이 체득하려고 애씁니다. 조급해 하지 않고 많은 경험을 쌓아나갈 것입니다.” 그러면서 롤모델 중 한 명인 지휘자 정명훈도 ‘시간이 걸린다’는 조언을 해줬다고 전했다.  

 

김선욱은 “저는 항상 한계와 싸우고 있지만 그 과정이 힘들진 않다. 어려서부터 너무 좋아한 음악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게 이미 꿈을 이룬 거라, 주어진 것에 정말 후회없이 하려고 한다”며 “이번 ‘합창’교향곡도 준비도 기간은 짧았지만 후회없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리지만 재능있는 후배 음악가들에 대해선 “자기들이 가야 할 길을 잘 아는 것 같다”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대나 연주라는 클래식 산업에서 오래 삼아 남는 것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음악하는 사람 모두가 공감할 것입니다. 그 쉽지 않은 길에 너무 많은 고통과 절망, 환희가 있어요. 정말 고립되고 외로운 감정들을 연주나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작업들을 매번 반복해야 합니다. 2~3년 뒤 연주(일정)가 잡혀있어도 4~5년 뒤는 아무도 모르는 게 이 바닥입니다. 여기저기서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안 보이고, 한동안 안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나기도 하고.”

 

김선욱은 “저도 콩쿠르를 통해 많은 연주 기회를 얻었지만 (그런 기회를) 10년, 20년, 30년 계속 유지한다는 건 코끼리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며 “되게 장기전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허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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