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휴정기 마치고 10월부터 재판 재개
낙태 판결 비난하는 시위들도 다시 열릴 듯
미국 연방대법원이 약 3개월의 휴정기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임명한 대법관이 법정에 등판해 진보의 목소리에 힘을 보탤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의 낙태권을 부정한 지난여름 판결을 둘러싼 논란의 재점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것이 오는 11월 연방의회 중간선거에 미칠 영향에 민주·공화 양당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22일(현지시간) 대법원에 따르면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이 오는 30일 서임식(Investiture Ceremony)을 갖는다. 잭슨 대법관은 지난 6월30일 임기를 시작해 이미 대법관 신분이 됐으므로 이번 서임식은 법적으론 큰 의미가 없다. 다만 대법원장을 비롯한 동료 대법관, 그리고 지인들한테 축하를 받으며 ‘대법관으로서 이런 각오로 재판에 임하겠다’ 하는 포부를 처음 밝히는 자리란 점에 의미가 있다.
일각에선 그를 임명한 바이든 대통령 본인이 서임식에 ‘깜짝’ 등장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잭슨 대법관은 미국 사법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그를 후보자로 발탁하고 상원에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말 그대로 전력을 기울였다. 상원 인준안 표결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잭슨 후보자와 함께 텔레비전(TV)으로 투표 실황을 지켜보다가 가결이 확정되자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좋았어(All right)!”라고 외친 점이 이를 보여준다.
바이든 대통령과 여당인 민주당, 그리고 진보 진영이 잭슨 대법관한테 거는 기대는 대단하다. 대법원은 현재 보수 대 진보가 6 대 3으로 보수가 진보를 압도한다. 잭슨 대법관이 합류했어도 여전히 진보는 ‘소수파’일 뿐이다. 하지만 보수 대 진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에서 잭슨 대법관이 논리정연한 소수의견 등을 통해 보수 대법관들을 공박한다면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결집, 그리고 중도 성향 유권자 일부의 진보 가담 등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백악관의 판단이다.

마침 7월부터 3개월 동안 휴정기를 가진 대법원이 오는 10월 다시 문을 연다. 휴정기에 들어가기 직전 대법원이 내놓은 결정은 다름아닌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의 폐기였다. 약 50년 전인 1973년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통해 “여성의 낙태할 권리는 헌법에 의해 보호되는 기본권”이라고 판시했다. 그런데 이번에 보수 대법관들이 똘똘 뭉쳐 이 판례를 폐기하고 “여성의 낙태할 권리는 헌법상 기본권이 아니며 미국의 50개주(州)는 저마다 낙태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 직후 여성들, 그리고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대법원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거세졌고 일부 대법관은 성난 군중의 습격을 받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3개월 휴정기 동안 잠잠했던 반(反)대법원 시위가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의 다수파인 보수 대법관들이 문제”라며 “투표로 확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 또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던 시절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대법관들이 여성의 낙태권을 빼앗았다는 식의 논리를 펴며 대중에게 ‘낙태권 회복을 원하거든 선거에서 민주당에 한 표를 던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마침 미국은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대법원 개정을 계기로 대법원의 낙태 관련 판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여성계를 중심으로 다시 터져 나오면서 이것이 선거에 미칠 영향에 미 정가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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