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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약자 빠진 ‘21세기 러다이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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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20 22:55:53 수정 : 2022-06-20 22: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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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노동자들은 방직기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이자 이를 부쉈다. 인간과 기술의 경쟁 속에 기계를 파괴하면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지난한 투쟁도 산업혁명의 물결은 막지 못했다.

최근 법률 플랫폼 ‘로톡’과 대한변호사협회의 갈등은 앞선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로톡 사태 이전에는 의료계의 비대면 진료 반대 투쟁이 있고, 그 이전에는 카풀(승차공유서비스)에 반발한 택시업계가 있다. 구산업 노동자들이 신산업에 저항한다는 측면에서 러다이트 운동과 닮아 있지만,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19세기 운동세력이 노동자 계급이었다면, 21세기 운동세력은 기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기득권 세력이란 점이다.

권구성 사회부 기자

택시는 카풀이나 플랫폼택시가 등장하기 전까지 수십 년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이 신산업 진출에 반발했던 이면에는 1억원을 호가하는 택시 면허권이 있다. 면허권 가격은 자연히 택시업계의 상황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는데, 택시기사들은 노후 자금인 면허권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정부는 운송산업의 변혁에도 택시 면허권을 보호해 주는 노선을 택했지만, 결과적으로 택시업계와 소비자 모두 웃지 못하는 실정이다. 택시업계 반발로 카풀 사업을 접었던 카카오는 택시 사업을 전방위로 확대해 시장을 장악했고, 갖가지 프리미엄이 붙은 서비스들의 등장으로 택시 요금이 고공행진 중이다.

최근 의료계와 법조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의료계는 비대면 진료나 의과대학 정원 확대처럼 시장에 공급을 늘리는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 왔다. 특히 비대면 진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그 필요성이 커졌는데도 정부와 의료계의 논의에 진척이 없는 상태다. 오히려 최근에는 서울시의사회가 의료 플랫폼 ‘닥터나우’를 의료법·약사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하면서 ‘의료계판 로톡 사건’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법정 다툼으로 번진 로톡 사태는 진흙탕 싸움이 된 지 오래다. 최근 변협은 헌법재판소의 일부 위헌 결정에도 로톡 가입 변호사에 대한 징계를 강행했다. 법리를 다루는 집단이 최고 사법기관인 헌재의 판결을 거스른 자체가 이미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들은 저마다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기존 산업의 허들이 낮아지는 데 따른 불안감이 깔려 있다. 실제 비대면 진료만 봐도 대형병원보다 동네병원의 반대 목소리가 크고, 로톡 역시 규모가 작은 로펌이나 젊은 변호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어찌 보면 약자끼리의 싸움으로 비치지만, 진짜 약자의 목소리는 쏙 빠져 있다. 애당초 이들이 거센 저항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만큼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약자의 관점에서 지금 사태는 기득권이 이동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시장이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데 인색했던 결과다. 이제라도 변화를 요구하는 각계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시장이 성숙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역사적으로도 결과는 자명하다. 19세기 러다이트 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권구성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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