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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대통령도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 어떻게 만들어졌나 [뉴스+]

입력 : 2022-05-27 21:00:00 수정 : 2022-05-27 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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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상징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젊은 두 열사 영혼결혼식 헌정곡
첫 녹음본엔 개 짖는 소리도 담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2주기 기념식에 참석해 손을 맞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이 올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상징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의 탄생 비화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1980년 5월 항쟁이 끝난 뒤 신군부의 엄혹한 감시에 놓인 광주 시민들은 다수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금지됐다. 5·18 희생자들이 광주 망월묘역(구묘역)에 묻혔으나 추모제 등 어떤 행사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신군부의 감시를 피하고자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전남도청에서 숨진 윤상원 열사와 들불야학 출신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이었다. 들불야학 설립을 주도했던 박기순 열사는 1979년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윤상원 열사는 1980년 시민군 대변인으로 전남도청의 마지막 밤을 지키다가 산화했다.

 

1982년 당시에만 해도 세상을 떠난 젊은 남녀를 맺어주는 영혼결혼식은 전국적으로 흔한 일이었다. 이를 위해 소설가 황석영씨의 자택에 10여명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모여 영혼결혼식에 헌정할 노래굿 ‘넋풀이’를 만들었다. 이 넋풀이 마지막에 삽입된 곡이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황씨가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를 개작하고 전남대 학생이었던 작곡가 임종률씨가 곡을 붙였다. 지금은 투쟁가처럼 변했지만, 당시엔 장송곡으로 기획됐고, 저음이 매력적인 오정묵(오창규) 전 광주MBC PD가 노래를 불렀다. 이들은 담요로 창문을 가려놓고 마이크도 없이 기타와 카세트 데크만으로 녹음 작업을 진행했다.

 

그만큼 잡음도 많이 들어갔는데 최초 녹음본에는 개 짖는 소리와 기차 지나가는 소리까지 배경음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만든 카세트테이프 샘플이 서울에 있는 교회 측에 맡겨져 500여개의 테이프로 제작, 전국으로 전해졌다.

 

황씨는 27일 광주문화재단이 ‘임을 위한 행진곡’ 창작 40주년을 기념한 행사에 참석해 “테이프가 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세대 근처 신촌에 있는 주막에 갔더니 저 구석에 있는 학생들이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며 “이제는 미얀마나 태국 등에서까지 불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노래굿 공연에 참여한 오정묵·윤만식·임희숙·전용호씨 등이 참석해 당시의 역할을 재연하기도 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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