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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못 받는 분류작업만 日 8시간… 쉴틈없이 일해도 소득 줄어 [심층기획]

입력 : 2020-11-03 06:00:00 수정 : 2020-11-03 08: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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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노동자 잔혹사
2020년에만 14명 사망… 과로사 막으려면
코로나 이후 물량 23%가량 늘어나
“사망자 대부분 30~40대… 지병 없어
월 1만개 배달… 주 70~80시간 근무”

배송단가 하락… 美·日 25~30% 수준
업체들 “분류지원 인력 단계적 확대”
노동자들 “인건비 부담 전가땐 미봉책”

지난 1월13일 새벽, 경기 안산우체국 위탁택배노동자 김모(33)씨가 거실로 나오다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졌다. 3월12일 ‘쿠팡맨’ 김모(47)씨가 경기 안산의 한 빌라 계단에 배송 중 쓰러져 숨을 거뒀고, 4월10일에는 집에서 잠을 자던 경기 파주 문산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김모(33)씨가 깨어나지 못했다.

끝이 아니었다. 2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올해 과로사 등으로 숨진 택배노동자는 현재까지 모두 14명에 이른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산업재해로 숨진 택배노동자를 전부 합친 숫자와 같다.

◆코로나19로 물량 폭증한 올해 14명 숨져

5월에서 6월까지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로 정모(42)씨, 로젠택배 택배노동자 박모(31)씨,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서모(47)씨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지난 8월14일은 ‘택배 없는 날’로 지정됐지만, 택배노동자 잔혹사는 멈추지 않았다. 택배 없는 날로 휴가기간이었던 8월16일에는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이모(47)씨가 물류터미널 잡초 제거작업 중에 숨졌다.

지난달에는 확인된 사망자만 5명이다. 8일에는 서울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김모(48)씨, 12일에는 쿠팡물류센터 단기직 장모(27)씨와 한진택배 노동자 김모(36)씨가 숨졌다. 20일에는 CJ대한통운 운송노동자 강모(39)씨가 병원에서 숨을 거뒀고, 부산에서는 40대 김모씨가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2일에는 40대 건영택배 노동자 조모(40)씨, 27일에는 한진택배 운송노동자 김모(59)씨가 명운을 달리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숨진 노동자들 대부분이 30∼40대로 젊은 나이에 평소 지병이 없었고, 월 6000개∼1만개가량을 배달하며 주 70∼80시간 정도 일했던 것으로 조사된다”면서 “대책위 차원에서 전국적인 자료를 취합하기 상당히 어려운 조건을 고려하면 과로로 사망한 택배노동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똑같이 일하면 소득은 점점 줄어든다

올해 들어 유독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급증한 원인 중 하나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택배물량 급증이 지목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이 국토교통부 등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택배물류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총 택배물량은 약 27억9000만개다. 월별로 살펴보면 코로나19의 영향이 적었던 1월에는 지난해 2억4285만개, 올해 2억4549만개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2월부터 크게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2월부터 7월까지의 택배물량은 지난해 13억4280만개, 올해 16억5314만개로 23%가량 늘었다. 택배업계는 올해 총 택배물량이 지난해보다 30% 증가한 36억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물량이 폭증하면서 업무 부담이 많이 늘어난 물류터미널의 택배 분류작업도 과로사의 주범으로 꼽힌다. 대책위는 “분류작업은 택배노동자들이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배송해야만 하는 장시간 노동의 핵심 이유”라며 “하루 13∼16시간 노동의 절반을 분류작업에 매달리면서도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적당히’ 일할 수 없게 하는 택배노동자의 임금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00년 상자당 평균 배송 단가는 3500원에서 지난해 2269원으로 오히려 낮아졌다. 특수고용직 형태로 일하는 택배노동자의 월급은 배송 건당 수수료이기 때문에 배송 단가가 내려가면 같은 물량을 배달해도 소득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든다. 택배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71.3시간이라는 대책위 조사 결과가 나오는 이유다.

◆“인력 늘리고 소비자도 고통 분담해야”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단기적 해결책으로는 분류작업 인력 투입으로 인한 업무 부담 경감이 제시된다. 올해 숨진 택배노동자들의 40% 이상이 근무했던 CJ대한통운은 지난 22일 택배 현장에 분류지원인력 4000명을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한진택배와 롯데택배도 분류작업에 인력 1000명을 투입할 방침이다. 다만 분류인력 투입 비용에 따르는 추가 인건비 부담이 택배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면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라는 게 택배노동자들의 입장이다.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한 택배회사 소속 노동자가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와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 급한 물품이 아니라면 무조건 ‘당일배송’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고, 택배노동자들이 받는 배달 수수료를 현실화하기 위해 상자당 배송 단가를 높이는 방법이다. 현재 2000원대 초반인 상자당 단가는 미국(9000∼1만원대)과 일본(7000원대)에 비하면 25∼30%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중심으로 당일배송 서비스를 자제하겠다는 움직임과 ‘택배기사 응원 캠페인’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을 변화의 적기로 보고 있다.

주5일 근무 정착 등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택배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에 법정 휴일, 연차, 휴가제도 없이 대부분 주6일 근무를 하고 있다. 몸이 아파 병원을 가거나 하루라도 쉴라치면 일당의 2∼3배에 달하는 비용을 부담해 대체인력을 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인력을 늘려 주5일 근무를 가능하게 하고, 택배노동자와 택배사 사이 표준계약서에 근무시간 제한을 명시하는 것도 방법으로 제시된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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