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동안 한국 독자들은 어떤 책을 선호하고 무슨 책을 읽었을까? 선진국이라면 책읽기가 공기나 음식처럼 삶의 기본 매뉴얼로 인식한다. ‘읽기 싫으면 안 한다가 아니라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의미다. 올해에는 어느 해보다 통일 관련 서적들이 쏟아졌다. 연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 담화를 기해 남·북·미 관계가 획기적 반전을 이루면서 관련 책들이 다수 서점에 나왔다. 특히 경제·경영서와 4차 산업혁명 관련 책들이 꾸준히 팔렸다. 세계일보와 교보문고가 2018년 베스트셀러 및 도서 판매 결산을 통해 ‘올해의 책’ 10권을 선정했다. 세계일보와 교보문고는 각자 20권씩 선정한 다음 토론을 거쳐 최종 10권을 선정해 지면에 소개한다. 역시 경제·경영서가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다.
초격차/권오현·김상근/쌤앤파커스 |
경제·경영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책이다. 경험한 사람만 줄 수 있는 신뢰하는 책으로 인정받는다. 반도체 연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 권오현 전 회장이 삼성전자에서의 지난 33년의 시간을 회고하며 정리한 경영의 원칙들을 소개한다. 책의 제목으로 쓰인 ‘초격차’는 그가 구체화시킨 삼성의 실제 전략이다. 적자를 내던 반도체 사업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실행한 일종의 혁신안이었다. 치킨게임을 끝내기 위해서는 경쟁자가 쫓아올 수 없는 절대 경쟁력, 즉 비교 불가한 절대적 기술 우위와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했다. 그러나 초격차는 단지 기술의 격차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에 걸맞은 구성원들의 격이다. 경영은 결국 인간을 이해해야 하는 감성의 영역이라는 것.
4차 산업혁명 6개의 미래지도/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오피스/토트 |
당신이 2018년 현재 65세 미만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특이점’ 돌파를 경험할 것이다. 50세 미만이라면 130세 이상 살 확률이 높다. 당신이 30세 미만이라면 ‘수명탈출속도’에 올라타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지도 모른다. 22세기로 넘어가면서 컴퓨터 스토리지 어딘가에 바이트 단위로 존재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너무 먼 이야기인가?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삶과 산업구조를 뒤바꿔놓을 4차 산업혁명의 청사진이 전개된다. 너무 낙관할 필요도 비관할 필요도 없다.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 영화적 상상은 현실이 된다. 수년 내에 우리는 달리는 자동차 핸들에서 손을 놓고 책을 볼 수 있게 될 것이고, 음성기반 플랫폼을 시켜 식당을 예약할 것이다.
레이디 조커/다카무라 가오루/문학동네 |
1997년 작이지만 국내 출간까지 20년의 기다림을 보상받기에 충분한 대작이다. 1984년 일본을 휩쓴 기업 테러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을 모티브로 한 거장 다카무라 가오루의 소설이다. 범인은 유명 제과회사 글리코의 사장을 납치하고, 유통 상품에 독극물을 주입한 후 협박장을 보냈지만 결국 용의자 미검거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마이니치신문은 ‘소설의 형태를 취한 현대 일본사회의 르포르타주’라고 평했다. 작가는 냉정하고 치밀한 시선으로, 차별받아야 했던 사람들, 조직의 책임을 떠맡은 사람들, 사회의 변두리로 몰린 사람들을 빈틈없이 바라본다. 1999년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제치고 판매고 1위에 오른 소설이다. 평단과 독자들의 꾸준한 호평 속에 영화,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19호실로 가다/도리스 레싱/김승욱/문예출판사 |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초기 단편집. 1960년대 유럽,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하고 결혼, 가정, 남성에 의해 객체로 머무는 여성들의 일상을 날카롭게 응시한다. 표제작 ‘19호실로 가다’는 모두 부러워하는 가정을 꾸리던 한 주부가 강요되는 역할 속에서 점차 무력감을 느끼고, 혼자만의 공간을 절실히 찾는 모습을 그린다. 한 여성이 실연으로 미쳐버린 다른 여성에게 자신의 심장을 건네는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도 흥미롭다. 한 남자의 정부였다는 것을 깨닫지만 결국 서로를 위로하며 연대하는 여성들을 다룬 ‘남자와 남자 사이’ 등 11편의 단편이 모였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면서도, 개인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소설 속 인물들의 갈등과 분노, 한계를 묘사한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유발 하라리/김영사 |
인문정보기술과 생명공학이 가져올 인류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스라엘의 소장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세 번째 작품이다. 첫 작품 ‘사피엔스’는 인류가 태초부터 살아온 길을 반추해 보았다면, 두 번째 ‘호모데우스’는 인류 앞에 놓인 먼 미래를 조망했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지금 당장 인류 앞에 놓인 기술혁명에 대한 담론을 펼쳐보이면서 풍부한 지식을 자랑한다. 유발 하라리가 주목한 대목은 기술혁명이라는 난제이다. 앞으로 전개될 생태적 위기나 파괴적인 신기술에 대해 인류에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뾰족한 방안이 없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기술혁명이 몰고 올 파괴력이다. 아마도 21세기 사람들을 착취하는 계층은 경제엘리트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김일성 이전의 북한/표도르 째르치즈스키/한울/한울아카데미 |
대부분 여론조사와 대중매체는 2016년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 예측에 실패했다. 트럼프 지지층은 왜 진작 드러나지 않았을까. 한 과학자는 이 물음에 단서를 제공한다. ‘Nigger(깜둥이)라는 흑인 비하 단어의 높은 검색 빈도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트럼프 지지층은 인종차별적인 검색을 즐겨하는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하버드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빅데이터 과학자인 세스 스티븐슨 다비도위츠(Seth Stephens-davidowitz). 그는 구글 검색정보 수집 프로그램인 ‘구글 트렌드’를 이용해 미국 선거 판세를 분석해냈다. 그 과정을 이 책에 담았다. 버락 오바마의 당선 당시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이 선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며 미국인들은 자랑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에서 드러났듯이 그것은 위선이었다.
스티븐 호킹/마커스 초운/장정문/소우주 |
호킹은 1942년 갈릴레오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300주년이 되는 날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21살 때인 1963년 초 운동신경질환의 일종인 ALS, 일명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색경화증)에 걸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21세기 인간 승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티븐 호킹의 전기다. 마커스 초운을 필두로 한 집필진의 간결한 설명은 특이점, 블랙홀, 무경계 우주와 같은 호킹의 학문적 성과뿐만 아니라 컴퓨터 음성합성기를 이용한 호킹 특유의 목소리, 그리고 루게릭병 환자의 삶에 대해서도 쉽게 알려준다. 가장 많이 팔렸으면서도 가장 읽히지 않은 그의 대표작 ‘시간의 역사’ 출간을 둘러싼 이야기와 외계인 및 인공 지능에 관한 호킹의 견해를 전해주는 책이다.
상속의 역사/백승종/사우 |
임금이나 사회적 불평등보다도 편법 증여가 양극화의 주요인으로 지적된다. 속된말로 ‘부모가 열심히 일해 모은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준다’는 데 누구도 이의를 달 수는 없다. 그러나 편법 증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백승종 코리아텍 대우교수는 상속에 관한 동서고금 얘기를 지루하지 않게 전해준다. 저자는 “상속제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신분이 바뀌었다”고 풀이했다. 상속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이다. 사회경제적인 여건이 변하면 상속제도도 달라졌다. 상속제도에 따라 누군가는 권력을 얻거나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신분이 추락하거나 가난으로 내몰렸다. 한 가문에서 상속으로 인해 벌어진 싸움으로 인해 국제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국경이 달라지기도 했다. 상속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인 셈이다.
위대한 대통령의 위트/밥 돌/김병찬/아테네 |
밥 돌 전 상원의원이 엄선한 미국 대통령들의 유쾌한 발언과 위트를 망라한 책을 냈다. 밥 돌은 미국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이다. 미 상원 역사상 최장수 공화당 원내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밥 돌은 ‘가장 재미있는 대통령’에 에이브러햄 링컨을, 농담거리로 전락한 밀러드 필모어를 선별하고, 다른 대통령들을 그 사이에 배열하는 식으로 풀어썼다. 밥 돌은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유머 감각은 통치력에 버금가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유머 순위에서 상위 그룹에 속한 대통령들이 일반적인 기준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지도자로 평가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미국 정치지도자들의 면모를 살피면서 지도자의 길이 무엇인지 은연중 시사해 주는 책이다.
정승욱·박태해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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