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아한 성음을 지닌 명창으로 박유전과 정재근을 거쳐 정응민으로 이어지는 강산제 심청가를 기품 있게 다듬어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광주 출신인 성 명창은 고수였던 부친 성원목(1912~1969) 선생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리 인생으로 들어섰다. 1948년 15세 때 김연수(1907-1974) 문하에서 창극단 생활을 하면서 단가와 '심청가'를 학습했다.
공기남 등 당대 명창을 사사한 고인은 1968년 전국명창경연대회 1등을 시작으로 남원 춘향제 명창대회 장원, 전주대사습 장원, KBS 국악대상 수상 등을 통해 실력을 인정 받았다.
1977년 '심청가' 완창을 시작으로 '춘향가' '흥보가' 등을 완창했다.
임춘앵여성국극단, 동일창극단 등에서 단원으로 활동했다. 스승 김소희를 따라 간 일본 교포 위문공연에서 '춘향가'와 남도민요 음반을 취입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특히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기능보유자로 지정, 인간문화재가 돼 국악의 세계화에 앞장서 왔다. 일본은 물론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등지에서 순회 공연을 열었다. 미국 카네기홀에서 '심청가'와 '춘향가'를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7개국에서 320회 가량 공연했다.
1994년에는 국악합창단을 조직했다. 앞서 1985년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 무대를 연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공연은 판소리 완창 무대로서는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지며 최장·최다 공연을 자랑하고 있다.
2010년에는 전남 보성에 판소리 예술관이자 전수관을 건립, 판소리 보급과 후학 양성에 힘썼다.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받았다. 자서전 '넌 소리 도둑년이여'를 출간했다.
지난해 9월 성 명창을 비롯해 한국을 대표하는 명창들이 참여한 '대한민국 판소리 축제'를 개최한 정회천 전북대 한국음악학과 교수는 "명창의 표본이었고 지난해 12월까지 무대에 오르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소리를 놓지 않은 최고의 여류 명창"이라고 말했다.
이어 "온화한 성품으로 수많은 제자가 따랐는데 소리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흐트러짐 없이 원칙을 고수하셨다"며 "세계 곳곳에서 공연하시며 미래 지향적인 판소리 가창법을 집대성하셨다"고 덧붙였다.
발인 당일인 9일 오후 보성 판소리공원에서 영결식과 추모 공연 등이 진행된다. 빈소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02-2227-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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