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연극家 사람들] ‘연극 풀코스’ 맛있게 먹는 법

입력 : 2011-12-26 17:53:29 수정 : 2011-12-26 17:53:2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뮤지컬의 ‘홍수’ 속에 깊이 있는 연극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상업적인 뮤지컬보다 홍보를 많이 하지 않아 연극에 대한 정보는 어두운 게 사실. 그래서 준비했다. 관객과 즉석에서 호흡을 나누는 연극 특유 매력이 물씬 묻어나는 연극, 극장을 나와서도 연극의 대사와 분위기에 취하게 만드는 값진 연극들을 소개한다. 

연극 '대학살의 신'

◇ 첫번째 코스, 웃음과 만난 연극
‘밀당의 탄생’ ‘리턴 투 햄릿’ ‘대학살의 신’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연극’과 안면을 트고 싶다면, 아무래도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연극이 제격이다. 그렇다고 대학로 삐끼들의 손에 이끌려 극장을 나서자마자 공중으로 흩어지는 말뿐인 코믹감동연극을 만나고 싶지 않은 관객들이라면 다음 연극에 눈을 돌릴 것. 

연애를 해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남녀의 심리전을 연극으로 풀어낸 ‘밀당의 탄생’은 본격적인 연인단계로 진입하지 못한 애매한 커플들에게 안성마춤이다. ‘밀고 당기기’라는 연애비법을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에 속 시원히 질러주는 고수(추정화)의 한마디가 결정적 웃음을 유발. 극의 코미디 요소를 최고조로 이끌어가는 역은 바로 해명도령 역 배우 김대종. 대사 없이도 관객을 웃길 수 있는 대단한 배우다. 2012년 1월 29일까지 PMC대학로 자유극장.

 ‘연극열전’ 시리즈의 네 번째 시즌 첫 작품, 장진 연출의 ‘리턴 투 햄릿’은 대놓고 ‘연극을 찾지 않는 건 관객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동안 재미없어서 연극을 보러 오지 않은 관객들이라면 진짜 재미있는 연극이 뭔지 구경하기 위해서라도 ‘리턴 투 햄릿’을 한번쯤 관람해보는 것도 좋겠다. 연극쟁이들의 애환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고전의 정수로만 알고 있을 뿐, 정작 무슨 내용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웠던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유쾌한 마당극으로 변신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장진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도 살아있다. 2012년 4월 8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발전해 결국 부르주아 계층의 허례허식을 잘 보여주는 한태숙 연출의 ‘대학살의 신’이 2010년에 이어 다시 돌아왔다. 연극 ‘아트’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작품. 30대 이상 관객들의 웃음보를 은밀히 자극하는 점도 매력. 핑퐁처럼 통통 튀는 대사를 천천히 듣고 있다 보면 웃음이 가히 개운하지만은 않다. 이렇듯 블랙코미디가 뭔지 알려준다. 한번 보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배우 서주희의 ‘결정적 구토장면’외에도 배우 박지일, 이대연, 이연규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등, 퇴장도 무대전환도 없는 90분간의 러닝타임이 채워진다. 말싸움이 감정싸움이 되고 이내 육탄전으로 마무리되는 변신도 볼거리 제공. 마지막 커튼콜의 짜릿한 무대도 놓치기 아쉽다. 2012년 2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명동예술극장 연극 '아마데우스'

◇ 두 번째 코스, 음악과 만난 연극
 ‘아마데우스’ ‘우리 동네 굿 뉴스’

눈과 귀가 동시에 즐거운 고품격 연극을 만나고 싶다면, 명동예술극장의 2011년 마지막 작품 ‘아마데우스’가 제격이다.

피터 셰퍼 작, 김미혜 역 및 드라마 투르기, 전훈 연출의 ‘아마데우스’는 한 시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음악가이자 천재와 범재 두 인간형을 대표하는 인물로 익숙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에게 예술은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인간이란, 신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모차르트의 선율로 인해 3시간의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간다. 살리에리의 좌절과 음모가 그려지는 가운데 드러나는 오페라<피가로의 결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뒷이야기, 모차르트 자신을 위한 진혼곡이 되어버린 최후의 대작 <레퀴엠>에 얽힌 이야기등이 피아노 4중주의 라이브 연주에 실려 극 곳곳에 소개된다. 고희선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무대장치에 영상을 투영하여 오페라 극장, 궁정 등을 고풍스런 느낌으로 표현한 점 역시 탄성을 자아낸다. 뮤지컬 ‘셜록홈즈’의 고급스러운 복식스타일로 호평을 받았던 이수원 의상디자이너가 만들어낸 세련된 의상도 연극의 질을 한층 높힌다. 배우 이호재(살리에리)·김준호(모차르트)·장지아(콘스탄체)·오승명(본노)·김재건(판 슈비텐 남작)등 출연. 2012년 1월 1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그간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등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 화해를 연극 안에 담아냈던 극단 이루의 신작 ‘우리 동네 굿뉴스’(작 연출 손기호) 막이 올랐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은둔의 삶을 살고 있는 여자(우미화)를 아파트 문 밖으로 나오게 하라는 특명이 떨어진 가운데, 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이 기본 골격. 노래하다 미친 여자(박희원)의 노래와 배우 백지원, 염혜란등의 유머 및 DJ김보경의 차분하고 맛깔스런 멘트가 적절히 섞어져 밝고 건강한 연극으로 탄생했다. 죽음보다 힘든 ‘진정한 용서’에 대해서도 화두를 던진다. 2012년 1월 15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연극 '그류? 그류!'


◇ 세 번째 코스, 미스테리한 긴장감이 연극적 재미를 유발한 연극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류? 그류’

세계 3대 추리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는 수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서울시극단 '청소년을 위한 연극 시리즈’로 무대에 올랐다. 초면의 남녀 10인이 절해고도 병정섬에 모이면서 시작된 극은 점점 한 명씩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높혀간다. 살인마의 정체는 누구인지에 대한 추리게임이 관객들의 머리를 조여온다. 신호 연출가는 소극장 특유의 호흡을 객석으로 끌고가며, 단순한 추리극을 넘어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배우 권지숙, 김선화, 서현철, 주성환, 이요성, 윤상화 등의 흡인력 있는 연기가 좋다.3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추리극은 아니지만, 관객의 의식을 조정하는 연극 ‘그류? 그류!’가 12월 공연에 이어 2012 정보소극장 신진연출가 지원작에 선정 돼 내년 1월 다시 한번 관객들을 찾아온다. 한 가족의 모순된 사연을 접한 이웃이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 루이기 피란델로의 <뜻대로 하세요(It is so, if you think it is)>를 1972년 충청도의 한 마을로 치환하여 재구성 했다.

작품의 제목인 ‘그류’는 ‘그래요’의 충청도 사투리. 새로 이사온 사위와 장모가 충청도 대추리 이장네에 번갈아 가며 등장한 채 각자의 사연을 전하면 객석은 ‘맞아.맞고 말고’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하지만 곧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진실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등장인물 뿐 아니라 관객들의 얼굴을 벌겋게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춰진 욕망, 악한 본성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연극의 ‘통찰력 있는 유머’에 한방 맞은 것이다. 배우 이경성, 임진순, 정은경, 김성일, 이형주, 한경희, 한보람, 김관장, 김민태, 박시내 등의 조화로운 앙상블이 웃음유발의 일등공신이다. 2012년 1월 12일부터 29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

◇ 네 번째 코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연극
‘굴레방 다리의 소극’ ‘겨울 선인장’

극단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연극 ‘굴레방 다리의 소극’(작 엔다 월시, 연출 임도완)을 간단히 설명하면, 온종일 집안에 틀어박힌 채 2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극을 펼치는 삼부자 이야기다. 중국 연변에서 죄를 짓고 서울로 도망온 가족사를 소재로 연극놀이를 하는 가족, 뭔가 심상치 않다. 배우들 간 쉴 새 없이 주고받는 대사. 1인다역의 빠른 연기변신 안에 드라마가 들어있어 관객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코미디이면서 참혹하고, 침묵하다가 거대한 충돌을 몰고 오는 무대 위의 희열이 그대로 담겨있다. 후반으로 갈수록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는 연극적 파워가 작품을 절대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31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어느 지방 야구장의 락커룸을 배경으로 4명 게이들의 이야기를 오밀조밀 하게 풀어낸 ‘겨울선인장’이 막바지 공연 중이다. 청춘 작가라 불리는 ‘홍영은’이 김제훈 연출에 이어 새롭게 손을 봤다. ‘경계’에 놓인 삶을 그리면서 동시에 이를 넘어서는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야끼니꾸드래곤의’ 작가 정의신 작품 냄새가 물씬난다. 얼른 보면, 일상적으로 하는 말이지만 작품 전체 적으로 볼 때 대사 하나하나가 치밀한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세세한 감정과 감성을 끄집어내어 리얼리즘을 완성하는 식이다. 12월 31일까지 대학로 키작은 소나무극장.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 다섯 번째 코스, 조용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잠 못 드는 밤은 없다’  ‘꽃상여’

다른 얼굴과 다른 목소리, 다른 영혼을 지닌 3인의 배우(김여진 정애연(더블), 이지하, 정영주)가 묻어두었던 성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통해서다. 작품은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를 다룸으로써 여성性의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여성이 자신들의 신체와 의식적인 관계를 가짐으로써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있다. 7살 난 어린 아이부터 70세의 할머니까지의 시시각각 변하는 출연자들을 보며 때론 폭소하고, 때론 가슴 저미는 아픔을 함께 하게 된다. 자유로운 신음소리가 충무아트홀 극장을 가득 매울 때, 출연자 뿐 아니라 관객 스스로 연극을 통해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을 선사한다.

‘생명과 출산’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하는 김여진의 ‘나 거기 있었다’ 장면, 각 나라 버전 신음소리에 이어 오페라 가수 버전을 맛깔스럽게 선보인 정영주의 파워가 객석을 요동쳤다. 몰래 숨어서 빨간 딱지 붙은 책이나 말초신경만 흥분시키는 비디오를 볼 시간이 있다면, 오히려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보는 게 좋겠다.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보지의 독백)는 1월29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트라이얼로그(3인극)버전으로 공연된다.

박근형 연출의 ‘잠 못 드는 밤은 없다’는 일본에서 살지 못하는 일본인들의 이야기, 더 나아가 현대인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잔잔하게 담아냈다. 연극은 인물들의 숨겨진 고독과 외로움을 하나 하나 자연스럽게 풀어내면서 말레이시아에 몸은 담그고 있지만 일본인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히라타 오리자 희곡 특유의 동시다발적 대화 장면도 만날 수 있다. 치즈코(이영숙)와 미쓰루(박완규)의 풍선껌 장면은 다시 봐도 명장면이다. 질겅질겅 그들의 어두운 과거를 씹는 듯 하더니 곧 각각의 풍선이 잠시 접촉하면서 터진다. 미쓰루와 치즈코의 외로움이 공명하는 순간 관객들의 마음에도 공감의 불빛이 깜빡였다. 히키고모리 미쓰루의 발가락 연기에도 한층 물이 올랐다. 12월3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2011 한팩, 우리시대의 연극’에 선정된 극단 서울공장의 ‘꽃상여’(하유상 원작, 임형택 연출)가 올해 <더한팩 스테이지> 무대에 오른다. 지난 25일 막을 내린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가 “해외 고전의 한국적 수용”이라는 주제를 내세웠다면, ‘꽃상여’는 “한국 고전의 현대적 수용”이라는 주제를 담아낸다. 1974년 신성일, 윤정희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하유상의 동명 희곡이 원작.

‘한국 여인들’의 삶과 때 묻지 않은 사랑을 비춘 드라마, 연극 ‘꽃상여’는 우리 옛 여인들이 갈망했던 일생 두 번의 호강, ‘꽃가마’를 타고 시집가는 꿈과 ‘꽃상여’를 타고 저승길로 떠나는 소박한 꿈을 가진 한국여인의 애환을 그린 작품. 여기에 극의 주인공 18세 동갑내기 숙희와 만득이의 순수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사랑 이야기가 더해진다. 풍성한 음악과 화려한 축제의식을 선보이는 음악극 ‘꽃상여’는 12월 29일부터 내년 1월 8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