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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이 지식사회에 던지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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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0-08 15:25:22 수정 : 2008-10-08 15: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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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과 학연의 동종교배로 다양성이 사라지는 대학사회

하나뿐인 자녀에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라면 원어민 영어교육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중고등학교부터는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돈을 써야하고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환율이 아무리 올라도 유학은 보내야 한다. 

이런 기사가 뜰 때마다, 전문가는 나서서 경쟁과 평준화 또는 전교조 더러는 국민성까지 들먹이며 문제의 본질을 회피한다.

신자본주의 시대에 자식을 내세운 경쟁은 비용대비 효용이라는 선택에 내몰린 부모가 낳은 사회구조적 병폐이다. 그 중심에는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제한된 자리와 결과적으로 특정 자리를 독식하는 특정 학연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9250356235&code=920100 의 기사에서 표 인용


위 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책기관에을 장악한 지식인의 편향적 내용을 보여준다.

표의 내용만을 가지고 논한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책기관에 응모한 공정경쟁에서 유독 미국박사를 마친 사람들이 경쟁력이 있었다는 반증이 된다. 동시에 만약 누군가 국책 연구원에 입사하고 싶다면 미국 박사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거나, 54명 중 51명이 미국 박사인 연구원(KDI)에 도전하는 생각자체를 접는 것이 수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표를 보고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국책기관에 미국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절대적으로 차지할 때 미국중심적 학풍, 사고,  인맥이 형성되고 그들만의 세계가 구축되어 좋은 것은 자기들끼리 나누어 먹는 독식 체제가 갖추어질 것이라는 염려도 가져봄직 하다.

경쟁사회이니 '위너테이크올'을 왜 나무랄 것인가? 문제는 맘마 미아!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meryl streep)가 애절하게 부른 'The Winner takes it all'처럼 낭만적일 수가 없다는 것에 있다.

승자가 모두를 독식하는 경쟁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미국은 승자가 모두를 독식해도 기회의 균등이 살아 있다. 더러는 비인간적인 차별이 승자라는 약육강식의 논리로 합리화되지도 합법화하지도 않는다. 왜 '대안없는 선택'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창의력에 집중해보면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웹 2.0의 다양한 도전과 꿈을 이룬 세계적 사이트들을 만날 수 있다.


굳이 이 글을 빌어 불편한 심기를 건들거나 해결책도 없는 사회불만을 토로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지극한 자식 사랑 앞에 세상 물정을 깨닫는 부모의 마음이 되면, 'SKY대학 진입', '미국 아이비리그 유학'이 그 어떤 투자보다 가치가 크다는 사실이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다보면 똑똑한 학생인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주변 친구들로 부터 수소문을 들으면 '편입학'을 준비한다거나 다시 수능을 본다는 것이다. 아니 내가 열심히 가르치고 기를 것인데 왜 속칭 더 좋은 학벌로 가야하는가? 몇몇 수능을 다시 준비하는 대학생 또는 편입학을 준비하는 학생을 도시락싸들고 뜯어말릴 수 없었던 것도 뼈아픈 현실인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자식이라면 지방대라면 인서울로, 인서울이라면 외국으로 나가라고 하지 않을까? 우리가 우리를 부정하는 이런 사회 시스템 정말 합리적인 사회일까? 지극한 이기심으로 그냥 과외만 열심히 시키고 돈만 벌어 주구장창 자식들의 유학자금으로 쏟아내는 방법밖에 생각할 수 없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책 연구원에 미국박사의 수가 평균 52%부터 94.4%에 이른다면, 대학교의 교수사회는 두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SKY대학을 나오고 미국유학 일편의 사회 구조가 가지는 학문과 정책 연구의 편향성이다. 

미국에서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학교에서 석사와 박사를 공부하도록 장려한다. 하버드대학에서 박사를 마치면 다른 학교에서 교수직을 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왜 일까? 지식인의 패거리 문화가 문제가 아니라, 전문가 집단은 다양한 학문적 전통과 바탕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지식을 수혈받을 때 효율성과 다양성을 통한 창의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디시인사이드에 방문하여 갤러리 중 여러 대학 등을 방문해보면, 치열하게 학교를 홍보하는 훌리건이 등장한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속앳말들이야 말로 이땅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학연에 멍들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현실을 인정하는 젊은이, 낙담하여 광분하거나 포기하는 대학생, 그 모습은 천차만별이지만 지금 기성세대만큼이나 사회구조에서 학벌은 천벌같은 것으로 낙인되는가보다. 그 젊은 패기를 발견하기 어려워 안타깝다.
http://gall.dcinside.com/list.php?id=4year_university 화면 캡쳐




다소 심한 예를 들어 말한다면, 어미소가 죽으면 그것을 갉아서 새끼소에게 먹이는 방식이 가축을 병들게 했다. 즉 자기 종을 수혈받아 성장하는 짓거리는 생태계를 교란시켜 재앙을 불러온다. 학문과 지식인의 세계는 두말할 것이 없다. 다양한 학문적 풍토(우리나라, 미국, 유럽, 동남아 등 유학)와 다양한 학벌(전국의 대학교의 우수한 인재)이 발탁되고 성장할 수 있는 사회, 문화적 배경을 만들지 않고서는 국가의 성장 동력을 찾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은 문제인식에서 사교육비, 사회균형발전 등을 고찰해야한다. 눈가리고 아웅식인 것은 이 땅에 이미 뿌리깊은 학연과 혈연이 지배 계층의 허브로 자리를 잡은 탓이다. 만나보면 놀랍게도 같은 학벌로 연결되니 자연스럽게 선,후배로 끈끈한 전우애를 나눌 수 있어 일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지는 듯도 하다. 

그러나 다양한 인재를 발탁해낼 수 없는 사회시스템은 분명 잘못이다. 인재발탁의 기준을 아무리 공정하게 잡았다고 하여도 국책기관에 90%이상이 미국을 유학다녀온 박사였다는 결론은 인습과 관습 속에 인재를 판별해내는 기준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고려해야 한다.

다소 비약하자면, 결과적으로 1급 이상의 공무원, 국회의원, 교수 및 전문가, 국책연구원 등 사회 주요 자리에  특정 대학과 특정 유학 출신이 독식하였다면 바람직한 일인가?

선뜻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특정 대학, 특정 지역 유학 외에 더 나은 투자의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사회비용을 늘리는 폐단을 바로잡기 위한 어렵지만 힘든 고민과 노력을 해야할 때이다. 특히 네트워크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새롭게 형성되는 네트워크 사회의 구조를 제시한다면 후손들에게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제공하지 않는 선생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강장묵 mookn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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