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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되는 ‘증세 포비아’…위협받는 중장기 재정의 지속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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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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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투세 폐지 이어 가상자산 2년 유예
조세 원칙 허물고 자산형평성도 악화
초고령사회 대비 세원 확충에도 역행
“자산과세 공백, 근로소득세 저항 유도
전체 조세측면에서 쓰나미 몰고 올 수도”

증세 ‘포비아’(공포증)가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에 이어 가상자산 과세 역시 유예를 거듭하면서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정의가 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세원 확충에도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반도체 호황에 따른 법인세 증가가 일시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잇단 과세 유예는 중장기적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인구 고령화로 향후 의무지출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여론을 의식해 증세를 회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금투세 폐지에 이어 정부가 가상자산 과세도 2년 유예하기로 한 상황을 풍자한 캐리커처. 인공지능(AI) 플랫폼 ‘세계온(SEGYE.On)’으로 생성
금투세 폐지에 이어 정부가 가상자산 과세도 2년 유예하기로 한 상황을 풍자한 캐리커처. 인공지능(AI) 플랫폼 ‘세계온(SEGYE.On)’으로 생성

8일 재정경제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가상자산 과세를 2년 더 유예하기로 방침을 정한 데는 제도적으로 시기상조라는 분석과 함께 청년층 등의 반발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윤석열정부 당시 도입이 유예됐다가 여야 합의로 2024년 끝내 폐지된 금투세 도입 과정과도 겹친다. 금투세는 주식·채권 등 금융·투자 상품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 국내 상장주식 등은 연간 5000만원, 그 밖의 금융투자소득은 250만원을 기본공제한 뒤 22~27.5%의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다. 이익뿐 아니라 손실까지 합산해 선진적이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국내 투자자의 반발이 거세게 일자 끝내 도입이 무산됐다.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세제 당국은 주식 양도 차익의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10억원’으로 강화하려 했지만 주식시장이 출렁인다는 이유로 여당이 반대 의견을 전달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가 이처럼 후퇴하면서 조세 원칙은 물론 자산 형평성 역시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지난 9월 인사청문회에서 △가상자산 투자자의 85%가 보유자산 500만원 미만인 점 △기본공제가 250만원인 점 등을 들어 대부분의 가상자산 투자자의 세 부담은 미미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실제 과세 부담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8~2023년 시장소득 불평등에서 재산소득의 기여도는 15.5%로, 재산소득이 전체 시장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약 5%)을 크게 웃돌았다. 금융 등 재산소득이 고자산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더 큰 문제는 초고령사회에 발맞춰 세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반도체 호황에 따른 법인세수 급등으로 내년 국세수입(584조4000억원)이 올해 재추계치(478조6000억원) 대비 105조8000억원 늘어나는 등 재정수지가 크게 개선된다. 하지만 법인세는 경기 변동에 민감해 안정적인 세입 기반으로 삼기엔 한계가 있다. 세계적인 반도체 사이클에 따라 크게 출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법인세 신고분은 2020년 42조3000억원에서 2021년과 2022년 각각 55조5000억원, 87조원으로 늘다가 2023년 60조4000억원, 2024년 39조4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후 지난해 60조9000억원, 올해 110조9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반도체 대기업 실적 개선으로 향후 2~3년 세수 호조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지만, 대외 불안과 반도체 사이클 하락 등이 겹칠 경우 세수 증가세를 장담할 수 없는 셈이다.

 

고령화로 의무지출이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세원을 넓혀야 하는 배경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을 보면, 의무지출은 2025년 368조원에서 2050년 712조원으로 344조원(93.5%)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의무지출 중 복지 분야는 같은 기간 185조3000억원에서 391조5000억원으로 206조2000억원(111.3%) 늘어 증가 속도가 더 빠를 전망이다. 고령화에 따라 공적연금 등 수급자 수가 늘고, 복지지출이 증가하면서 재정 압박이 커지는 것이다.

 

세입 기반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면 정부의 중장기 발전전략 역시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노무현 정부가 2006년 발표한 ‘비전2030’은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등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위한 장기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2030년까지 약 1100조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면서도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국민적 합의에 맡겼다는 한계가 있었다.

 

김현동 배재대 교수(경영학)는 “금융투자나 가상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 공백이 발생하면, 향후 근로소득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자신들의 세 부담을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등 조세저항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근로소득에 대한 과세가 약화될 경우 국가 전체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 가상자산 유예를 단편적으로만 볼 게 아니다. 조세 전체 측면에서 쓰나미로 몰려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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