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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와 윤석열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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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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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대륙의 수리남과 브라질 사이에 남한보다 조금 좁은 면적의 땅이 있다. 프랑스령 기아나다. 17세기 후반 프랑스 영토가 된 이래 아직까지도 350년 넘게 프랑스 지배를 받고 있다. ‘우주 강국’을 자처하는 프랑스의 우주 센터가 바로 기아나 북동부 대서양 해안에 위치해 있다. 유럽연합(EU)은 물론 한국의 인공위성 발사도 이곳에서 종종 이뤄진다. 기아나에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장소가 또 하나 있다면 ‘일 뒤 디아블’(악마섬)이다. 1850년대 프랑스 정부는 이 섬에 감옥을 짓고 혐의가 무거운 정치범 등의 수용소로 활용했다. 탈옥을 소재로 한 영화 ‘파피용’(1973)의 무대가 됐다.

 

알프레드 드레퓌스(1859∼1935). 프랑스 육군 장교로 유대인인 드레퓌스는 1894년 ‘독일군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붙잡혀 1899년까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게티이미지
알프레드 드레퓌스(1859∼1935). 프랑스 육군 장교로 유대인인 드레퓌스는 1894년 ‘독일군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붙잡혀 1899년까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게티이미지

악마섬의 형무소를 거쳐 간 이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알프레드 드레퓌스(1859∼1935) 소령일 것이다. 이공계 명문대인 동시에 군사 학교인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한 드레퓌스는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포병 장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데 대위 시절인 1894년 10월 갑자기 방첩 부대에 붙잡혀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 프랑스의 ‘흑역사’로 꼽히는 드레퓌스 사건(1894∼1906)의 시작이었다. 프랑스군의 군사 기밀을 독일에 넘겼다는 누명을 뒤집어 쓴 드레퓌스는 결백을 호소했으나, 귀를 기울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대인이고 독일과의 접경지가 고향인 드레퓌스는 ‘더러운 스파이’로 몰아가기에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진범이 붙잡힌 뒤에도 드레퓌스의 수감 생활은 계속됐다. 1899년 대통령의 명령이 내려진 뒤에야 드레퓌스는 악마섬 감옥에서 풀려나 귀국했다. 다시 기나긴 재판 끝에 대법원은 1906년 마침내 드레퓌스의 무죄를 확정했다. 심신이 모두 지친 그는 이듬해 군복을 벗었다가 1914년 1차대전이 터지며 프랑스 육군에 복귀했다. 드레퓌스는 결국 소령으로 군 생활을 마감했지만, 2025년 프랑스 의회는 그의 별세 90주기를 기려 장군(준장)으로의 특별 진급을 추서했다. 지난 7월에는 파리 대법원 청사 앞에 고인의 동상이 세워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드레퓌스의 기일(忌日)인 매년 7월12일을 국가적 추모일로 지정해 기념하도록 했다.

 

서울 서초동 법원 청사 내 형사 법정 피고인석에 앉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법원 청사 내 형사 법정 피고인석에 앉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5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항소심 결심 공판이 서울고법에서 열렸다. 특별검사에 의해 사형이 구형된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헌법적 결단을 내린 전직 대통령을 사법부가 반역자로 낙인찍었다”며 윤 전 대통령을 드레퓌스와 비교했다.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인 드레퓌스와 권한을 남용해 국가에 해를 입히려 한 윤 전 대통령을 동일 선상에 두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우리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 ‘여소야대로 인한 정국 교착 타계를 위해 계엄령을 발동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이 있다는 말인가. 정치는 어디까지나 정치 논리로 풀어야지 군대를 동원한 것 자체가 레드카드를 받을 만한 ‘반칙’이란 점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듯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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