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향한 폭력, ‘국민 생명 위협’
무관용 처벌·공공 안전망 구축 시급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국민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생명을 지켜야 할 의료기관마저 안전지대가 아니다. 최근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의료진이 크게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의료진은 물론 환자와 보호자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병원 내 폭력의 심각성을 다시 일깨웠다. 더는 방치할 수 없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4일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A씨가 B교수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집에서 사용하던 식칼을 쇼핑백에 넣어 병원에 가져온 뒤 다른 환자를 따라 진료실에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B교수는 얼굴과 손 등을 크게 다쳤다. 흉기를 소지한 외부인이 진료실에 침입해 의료진을 공격할 때까지 누구도 이를 제지하거나 막지 못했다. 병원 내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2018년 12월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임세원 교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를 계기로 의료기관 내 폭행 처벌을 강화하고 보안인력과 비상경보 장비 등을 의무화한 이른바 ‘임세원법’이 2019년 국회를 통과해 2020년 시행됐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도 병원 내 폭력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제도가 선언적 수준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2020년 부산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는 환자가 원장을 살해했고, 2022년에는 부산대병원 응급실에서 보호자가 불을 질렀다. 2024년에도 대구의 한 정신병원에서 환자가 의사에게 호신용 가스총을 발사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의료기관 내 폭력범죄는 9061건으로 연평균 1800건이 넘는다. 응급실 상황도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같은 기간 응급의료 방해 신고는 3381건으로 연평균 676건에 달했다. 폭언과 욕설이 가장 많았고, 가해자의 절반 이상은 음주 상태였다. 응급실 폭력은 진료 지연과 중단을 초래해 다른 환자의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점에서 뿌리뽑아야 마땅하다.
문제는 기존 안전대책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100병상 이상 의료기관도 보안인력 1명과 비상벨 1개 설치가 기본이다. 100병상 미만 의료기관은 의무 설치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세브란스병원처럼 비상벨과 비상문을 설치하고 전담 보안인력을 배치한 곳에서도 흉기 난동을 막지 못했다. 단순한 시설 확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흉기 반입을 차단하는 출입 관리와 보안인력의 전문성, 긴급 상황 대응 체계를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의료진 폭력에 대해서도 영국과 미국 일부 주처럼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엄정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안전 관리 책임을 개별 병원에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의료기관의 규모와 특성에 맞는 안전 기준을 마련하고, 보안인력과 시설 확충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임세원 교수의 희생 이후에도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것은 제도가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과 실행이 절실하다. 의료진 폭력은 개인을 향한 공격을 넘어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중대 범죄임을 망각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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