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칼 로즈/ 오숙은 옮김/ 여문책/ 2만2000원
“이제 불평등은 정치적 발언권이 작은 사람들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불평등은 지구까지 죽음으로 내몬다. (…) 죽은 행성에서는 경제가 ‘성장’하지 않을 것이며, 시장은 누구에게도, 아무리 강력한 사람에게도 ‘번영’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68∼69쪽)
부의 축적이 인류의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에 저자는 이처럼 날카로운 문장으로 맞선다. 사람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전략은 불공정할 뿐 아니라 삶의 터전까지 위협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부자들의 성공 비결을 묻는 대신, 막대한 재산을 가진 소수가 어떻게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권한까지 거머쥐는지, 무엇이 그 권력을 정당화하는지 추적한다.
그 중심에는 부의 집중과 민주주의의 충돌이 있다.
저자가 말하는 ‘신봉건주의’는 초부유층이 국경을 넘나들며 다수의 운명을 결정하는 체제다. 시민들은 이들을 지도자로 선출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선택이 초래한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저자는 “억만장자들의 집단적인 정치력은 민주주의의 사회적 약속을 제멋대로 무시하는 행태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중세의 영주를 닮은 신흥 글로벌 귀족이 평등의 기반을 흔든다는 진단이다.
이 권력을 떠받치는 것은 재산만이 아니다. 스스로 부를 일궜으니 누릴 자격도 있다는 도덕적 확신이 작동한다. 저자는 이를 ‘자기영속적 신화’라고 부른다. 성공한 개인의 자격을 강조하는 이야기는 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분배됐는지 묻는 말을 밀어낸다.
불평등을 제도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성취와 실패에 따른 결과로 받아들이게 하는 셈이다.
자선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저자는 억만장자의 거액 기부를 곧바로 공익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시선에 제동을 건다. “이런 자선 활동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상호 연결된 세계의 정치적·경제적 시스템이 대다수의 사람에게 얼마나 제 기능을 못하는지 보여주는 징표”라는 것이다.
도움을 주는 행위에 주목하기보다 그 뒤에서 누가 의제를 정하고 자원을 배분하는지 살피라는 주문이다.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소수의 선의에 의존할수록 시민의 운명은 공적 책임을 지지 않는 부자들에게 맡겨진다.
능력주의를 향한 비판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능력주의는 연대나 공동체 의식을 알지 못한다. 오직 각자도생뿐”이라고 단언한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에게 보상을 집중하는 원칙과 모두의 생존·번영을 약속하는 민주주의를 대비한 것이다. 부를 능력의 증명으로만 여기는 순간, 불평등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정당한 결과로 둔갑한다.
저자가 경계하는 것은 결국 구원자를 기다리는 태도다.
“진보는 완벽한 세계의 청사진을 그리는 어느 한 인물을 따라서 오지 않을 것이다. 만약 평등을 향한 진전이 있다면 그리고 번영의 더욱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부하며 세계를 구할 마스터플랜을 짜는 어느 한 명의 개혁가를 통해 달성되지는 않을 것이다.”(251쪽)
더 나은 미래를 소수의 통찰과 호의에 맡기지 말라는 당부다.
책은 부자를 향한 찬탄에서 시선을 돌려, 공동의 미래를 결정할 시민의 권한을 되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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