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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진의 선견지명] 해방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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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아래쪽 보광동 언저리를 해방촌이라 부른다. 언제부터 해방촌이라는 지명이 있었을까. 기록에 따라서는 1947년경부터 이름이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동아일보 1948년 9월30일자 2면 사회기사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보인다.

“전 護國神社터이었든 龍山洞 二가 일대에 있는 전재동포집단촌 속칭 ‘해방촌’에서는 해방이후 이북에서 남하한 전재동포들이 무허가로 주택을 건설하여….” 광복 이후, 이른바 해방촌이라는 마을이 생겼는데 ‘1945년 해방 이후’라는 정보와 ‘이북에서 남하한 전재동포’라는 정보가 중첩되어 있다.

전국적으로 ‘해방촌’이라는 이름의 마을은 14군데나 존재하는데 이 가운데 정식 행정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서울 보광동의 해방촌과 전남 무안군 무안읍의 해방촌밖에는 없다.

특이한 것은 강원도와 제주도에는 이런 이름의 지명이 없다는 점이다. 이들 해방촌은 대부분 산자락 깊은 골짜기나 강의 안쪽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화전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특징도 있고 이제는 해방촌의 연원이 된 사람들을 찾을 수도 없게 되어버린 곳도 많다.

해방촌 중에는 1945년 해방 뒤에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지명 유래가 남겨진 곳도 있지만 그런저런 유래 없이 막연히 해방촌이라 불리는 지역이 태반인데 아마도 이때의 해방이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이북에서 남하할 때, 북한의 체제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취지의 이름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해방촌에는 본적을 북한에 두고 있는 사람이 많다.

또 기독교인이 많은 것도 이와 관련된다. 이런 이유로 해방촌의 다른 이름 중에는 복음촌도 있고 신앙촌도 있다. 복음촌은 경기 평택에 두 군데가 알려져 있는데 고덕면 궁리와 방축리 일대가 그곳이다. 한편, 해방 후에 북에서 내려온 기독교인들이 자리 잡은 곳은 해방촌이라는 이름 이외에 신앙촌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부천 소사동 신앙촌이 대표적이다.

이와 같이 우리네 지명 가운데에는 머지않은 최근의 아픈 역사가 담긴 지명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지명들이 언중들의 기억 속에 정당한 이름으로 남아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해방이 된 지 80주년이 넘은 아직 대부분 해방촌의 기억들은 봉인된 채 불분명한 파편으로만 남겨져 있다. 이들이 복음촌, 신앙촌을 넘어 문화촌, 유신촌으로 변신하는 동안 우리의 관심은 이들로부터 먼 곳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땅 이름 속에 남겨진 ‘사람들 이야기’를 찾으려면 이런 이야기들도 하나씩 붙잡아 두어야 할 것이다.

김양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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