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해방한다면서 왜 믿을 자유를 빼앗는가
인간을 해방한다는 사상이 무엇을 믿을지까지 명령할 수 있을까. 공산주의는 노동자가 착취와 계급적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난과 억압을 끝내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공산주의는 종교를 인간을 억누르고 기존 지배질서를 지탱하는 힘으로 파악했고, 하나님도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소련과 중국 등 공산권 국가에서는 이러한 종교 배척이 국가권력에 의한 신앙 탄압으로 이어졌다. 인간해방을 내세운 권력이 종교를 억압하고 인간의 내면을 통제한 것이다.
이러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 비판은 당과 국가 앞에서도 멈춰서는 안 된다. 국가 역시 인간이 만든 조직이다. 인간을 위해 세운 국가가 신앙과 양심을 지배한다면, 인간은 또 다른 소외에 빠진다. 이것이 이상헌의 관점에서 공산주의 종교관의 오류를 짚는 출발점이다.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다는 주장
마르크스는 1844년 발표한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에서 종교 비판을 모든 비판의 전제로 삼고, 종교 비판이 법과 정치에 대한 비판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썼다. 『공산당 선언』이 나온 1848년보다 4년 앞선 시기였다. 마르크스의 사상 전개로 보면 종교 비판에서 정치·사회 비판으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종교의 근원을 인간과 사회에서 찾았다. 현실에서 고통받고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교에서 위안과 구원을 구한다면, 그 고통을 낳는 사회부터 바꿔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종교 비판이 사회 비판으로 이어진 배경이다.
그러나 종교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신앙을 억압할 수는 없다. 종교의 사회적 기원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하나님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기독교는 신앙의 출발점을 하나님의 계시에서 찾는다.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드러내고 인간이 그 부름에 응답했다고 믿는 것이다. 교회를 조직하고 의례를 발전시키는 데 인간이 참여했다는 사실과 신앙의 근원까지 인간의 창작이라는 주장은 구별해야 한다. 인간이 하나님에 관한 관념을 형성했다는 것과 하나님이 그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은 다른 주장이다. 자연에 관한 지식이 인간의 머릿속에서 형성됐다고 해서 자연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종교가 형성된 사회적 과정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입증할 수는 없다.
믿음은 인간이 무엇을 참되다고 여기고, 어떤 뜻으로 살아갈지 판단할 수 있다는 면에서 양심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국가권력이 무엇을 믿거나 버리라고 명령한다면, 사람은 자기 내면의 주인으로 살 수 없다. 인간해방은 외부의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고 믿거나 믿지 않을 자유까지 보장돼야 한다.
종교에서 풀어주고 국가에 묶었는가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무신론적 유물론에 기초해 종교를 배척하고, 궁극적으로 소멸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레닌은 노동자를 종교적 믿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을 당의 사상적 과제로 정했다. 실제로 소련과 중국에서는 공산당 집권 이후 종교에 대한 대대적 억압이 이루어졌다.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성직자와 신자들을 탄압했다. 소련에서는 구체제와 밀접했던 러시아정교회가 주요 공격 대상이 됐다. 스탈린 시대의 반종교 정책 속에서 소련 당국은 소비에트 궁전을 짓기 위해 1931년 12월 5일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을 폭파하기도 했다. 다른 종교들도 이 탄압에서 피해가지 못했다.
권력을 독점하려는 공산정권에 교회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교회는 당 밖에서 사람을 결속시키는 공동체였다. 자체의 지도자와 조직이 있었고, 신자들은 국가의 명령도 신앙과 양심에 비추어 판단할 수 있었다. 종교 탄압에는 세계관의 충돌과 함께 이러한 독립적인 공동체를 통제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겹쳐 있었다.
이상헌은 『공산주의의 종언』에서 공산국가들이 약속한 이상사회를 실현하지 못했으며, 자유와 인권에서도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그에게 인간해방은 선언이나 구호만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었다. 그 체제에서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아가는지를 물어야 했다. 이 기준은 신앙의 자유에도 적용된다. 종교가 인간의 자유를 빼앗기 때문에 잘못이라면, 신앙을 억압하는 국가권력은 왜 정당한가. 성직자에게 양심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당의 지시에 양심을 맡기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국가는 인간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국가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부정할지까지 결정한다면, 양심의 자유는 권력의 허락에 매이게 된다. 종교로부터 인간을 해방한다면서 국가에 종속시킨다면 소외를 없앤 것이 아니라, 지배하는 주체만 바꿨을 뿐이다.
이상헌은 마르크스주의가 인간해방을 지향해 출발했으나 결국 “인간 구속의 사상”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가 지적한 역설은 신앙 탄압에서도 드러난다. 종교를 따르던 사람에게 스스로 판단할 자유를 돌려주는 대신 당과 국가에 복종하도록 강요한다면, 인간을 구속하는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
그 문제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중국과 북한 등에서는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에 대한 통제와 박해가 이어지고 있다. 독립적인 신앙활동을 국가의 위협으로 취급하는 현실이다.
모든 공산당이 동일한 정책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공산당처럼 공식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고 기독교인의 입당을 허용하는 정당도 있다. 종교에 대한 사상적 비판이 반드시 신앙 탄압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종교 비판을 신앙 탄압으로 바꾼 권력은 인간해방의 약속을 스스로 배반한 것이다.
인간해방은 양심의 자유에서 시작된다
종교가 인간을 억압하는지는 구체적인 행위로 판단해야 한다. 신앙의 이름으로 재산을 빼앗거나 폭력을 행사하고 복종을 강요한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신앙이 절망 속에서도 삶을 일으켜 세우고, 원수를 용서하며,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아 타인을 살릴 힘을 준다면 어떤가. 그런 신앙까지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해방이라는 목적과 충돌한다.
국가는 종교인의 행동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했는지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어떤 믿음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지까지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 종교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조차도 인간의 자유를 넓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강제는 믿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처벌이 두려워 신앙을 버렸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말이 마음속의 납득까지 뜻하지는 않는다. 이때 권력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복종과 침묵일 뿐이다.
중국의 경우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종교도 독립적인 활동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하물며 그 틀에서조차 제외된 종교공동체는 어떠하랴. 신앙의 자유는 소수종교에도 똑같이 보장돼야 한다. 신자가 적거나 사회에 낯선 종교도 동등하게 보호받아야 하며, 차별과 배제에 노출되지 않도록 더욱 세심히 살펴야 한다. 다수의 신앙만 보호한다면, 소수에게 신앙의 자유는 없는 셈이다. 소수종교의 믿음까지 지킬 때 종교의 자유는 온전해진다.
교회를 폐쇄하고 종교 조직을 약화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삶의 의미와 궁극적 근원을 묻는 질문은 남는다. 탄압으로 신앙을 숨게 할 수는 있어도 자유로운 인간을 세울 수는 없다. 이는 공산주의가 내세운 인간해방의 약속에도 어긋난다.
이상헌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인간성 회복’이라는 출발점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했다. 특히 『공산주의의 종언』에서 공산주의자들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진정한 해방을 바란다고 보았다. 상대가 처음 품었던 인간해방의 열망에 말을 건 것이다. 인간해방이 목적이라면 신앙을 가진 사람 역시 그 해방에서 제외할 수 없다. 신앙을 통제 대상으로 삼는 순간, 인간해방을 내세운 사상은 또 하나의 굴레가 된다.
공산주의의 오류를 비판하는 일은 오늘을 사는 인간의 자유를 지키는 일로 이어진다. 공산주의가 인간해방이라는 약속에 충실하려면 종교에 들이댄 비판의 기준을 자신이 세운 권력에도 적용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면서 하나님을 믿을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다. 신앙의 자유를 짓밟는 권력은 스스로 인간해방을 말할 자격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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