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봉사는 비 맞고 있을 사람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다.”
29일 별세한 배우 최불암은 2015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 취임 30주년을 맞아 연합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선을 긋기보다, 어려움을 함께 견디는 관계를 강조한 말이다. ‘국민 아버지’로 불린 그가 남긴 어록에는 연기의 기술을 넘어 이웃을 대하는 태도와 사회를 향한 책임이 담겨 있다.
◆“함께 비를 맞는 것”… 화면 밖에서도 이어간 나눔
고인의 나눔은 ‘전원일기’에서 고아 금동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연기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후원 활동을 돌아보며 “내가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저절로 내 앞으로 왔고, 난 그걸 사명처럼 받아들였을 뿐”이라고 했다. 화면 속 선행에 쏟아진 사랑을 자신의 삶에서도 감당하려 했던 셈이다.
유명인으로서 누리는 관심 역시 개인의 몫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2011년 KBS2 ‘여유만만’에서는 “대중 앞에 얼굴을 내놓고 산 사람이니, 얼굴값이 된다면 무슨 일이든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얼굴값’은 명성에 어울리는 대우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나서는 일이었다.
◆“빌딩이 높아지면 그림자도 길어진다”
성장하는 사회의 이면을 돌아보라는 당부도 남겼다. 2022년 KBS울산 토크쇼 ‘남희석의 울산시대’에서는 ‘수사반장’ 마지막 회에서 박영한 반장이 했던 말을 빌렸다. “빌딩이 높아지면 그만큼 그림자도 길어지듯, 눈부시게 성장한 사회의 그늘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물질에 대한 욕심을 바라지 말고 자기 임무에 충실한 뒤 그에 맞는 보상을 받고, 부족한 사람에게 나누기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취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성취 이후 무엇을 바라보고 누구와 나눌 것인지를 물었다.
2024년 MBC 다큐멘터리 ‘돌아온 레전드 수사반장’에서 후배 배우들에게 건넨 말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이 가야 할 길 위에 가시덤불이 있으면 그걸 치우는 게 광대 정신.” 그는 배우가 대중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데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나 역시 그러지 못한 여한이 남아 여러분이 대신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좋은 배우 되려면 자신이 먼저 사람이 돼야”
그가 말한 직업의 출발점은 결국 사람이었다. 2001년 ‘전원일기’ 1000회를 맞아 진행한 인터뷰에서 “좋은 배우가 되려면 사람을 연구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신이 먼저 사람이 돼야 합니다”라고 했다. 기술과 인기를 앞세우기 전에 타인의 삶을 이해할 바탕부터 갖춰야 한다는 뜻이었다.
2008년에는 “이 역할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투영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본대로 움직이더라도 배우 자신의 사회의식까지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방송은 시대를 이끄는 문화 버팀목이어야”
방송을 향해서도 공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2013년 에세이에서는 “방송은 현실적 이익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공익의 책무도 함께 지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라며 “묵묵히 시대를 이끄는 ‘문화 버팀목’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2005년에는 자극적인 소재에 기댄 드라마 풍토를 두고 “드라마가 재미만 추구하면 안 된다. 드라마로 쓴맛도 봐야지, 단맛만 봐서야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재미와 이익을 좇는 동안 놓치기 쉬운 삶의 무게를 잊지 말라는 말이었다.
고인이 남긴 당부는 배우와 방송을 향했지만, 그 울림은 더 넓다.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고, 성장의 그늘에 선 사람 곁에 머무는 일. 그가 말한 어른의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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