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이 산업 끌고 갈 시대 아냐
공단 플랫폼, 거래 어렵게 만들 뿐
정책 두뇌는 ‘유틸리티 브레인’
신용보증기금 같은 체계 필요”
함일한 에이치에너지 대표는 지난 8일 서울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에너지공단의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 중개 플랫폼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공단은 지난 8월 말 중개 플랫폼 정식 운영을 시작하면서 여기서 맺은 PPA에 계량설비, 송·배전망 이용요금, 보증보험료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PPA 중개 사업을 해온 민간기업들 사이에서 반발이 나왔다. 공단 플랫폼과 민간 플랫폼이 사실상 동일한 기능을 하는데도 재정 지원이 공단 플랫폼 이용 거래에만 적용되는 건 불합리하다는 이유에서다. 에이치에너지가 회원사로 있는 기후테크·에너지 신산업 혁신기업 단체인 한국기후에너지산업협회는 지난달 말 기후에너지환경부에 이와 관련해 건의서를 냈다. 정부 측은 민간 플랫폼에서 맺은 계약도 공단 플랫폼에 등록하면 똑같이 지원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함 대표는 이번 문제가 ‘플랫폼 하나’에 그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정책을 단순히 ‘전기 공급’ 차원에서만 볼 게 아니라 ‘산업’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PPA가 “전형적인 상거래”라며 정부는 거래에 따른 신용 위험을 분산하고 자금 조달을 뒷받침할 금융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전사업자는 장기 판매계약이 있어야 자금을 조달하기 쉽지만 수요기업은 필요한 기간만큼 전력을 구매하길 원한다. 거래 당사자의 계약기간과 신용 조건이 맞지 않아 거래가 성사되지 못하는 문제를 정부가 ‘생산적 금융’과 위험 분담 체계로 해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에이치에너지는 2018년 설립된 재생에너지 플랫폼 기업이다. 인공지능(AI) 기반 발전소 자산운용 플랫폼 ‘솔라온케어’ 등을 운영한다. 회사 측에 따르면 솔라온케어로 운용하는 태양광발전소는 전국 약 8500곳, 1.1GW(기가와트) 규모다. LG CNS 출신인 함 대표는 창업 당시 “에너지 자본의 소유와 분배 구조를 바꾼다”는 사업 목표를 내걸었다. 다음은 함 대표와의 일문일답.
—업계가 공단 플랫폼에 우려를 제기하는 이유는.
“한국 RE100 협의체, 기업재생에너지재단 같은 수요처 쪽, 혁신기업협의회와 한국기후에너지산업협회 같은 기업 쪽 우려가 단체는 다 달라도 맥을 같이 합니다. 공공이 혁신 사업을 직접 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공공은 첨단 전력산업의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민간은 기술혁신으로 뻗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에너지 쪽은 정부가 ‘이걸 한다’, ‘저걸 한다’면서 치고 나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주인공이 돼야만 뭔가가 돌아간다고 보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이번 중개 플랫폼은 그 대표 사례로 나온 겁니다.”
—공단은 민간 플랫폼에서 맺은 계약도 공단 플랫폼에 올리면 지원은 똑같다고 한다.
“민간 플랫폼에서 모집한 발전소까지 공단 플랫폼에 다시 게시해야 지원받을 수 있다면, 그 절차가 왜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RE100 활성화가 목적이라면 어느 플랫폼에서 계약했든 동일한 지원 기준을 적용하면 됩니다. 기업들이 필요한 재생에너지를 쉽게 찾고 합리적인 조건으로 구매하려면 거래 절차는 간단해야 하고, 플랫폼 간 경쟁도 이뤄져야 합니다.”
—기후부는 민간 거래 정보가 필요해 플랫폼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민간 거래 정보가 필요하다는 설명만으로는 별도 중개 플랫폼의 필요성이 충분히 납득되지 않습니다. 직접 PPA 계약은 관련 고시에 따라 전력거래소를 거쳐 신고되고, 재생에너지 사용실적도 별도 확인 절차를 거칩니다. 그렇다면 기존 신고체계로 확보할 수 없는 정보가 무엇인지, 왜 별도의 공단 플랫폼을 이용해야 하는지 정확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특히 거래 정보 확보를 이유로 공단 플랫폼 이용을 정부 지원의 조건으로 삼는다면 민간과 공공이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기 어렵습니다.”
—공단은 민간과 달리 수수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더 낫다는 입장이다.
“더 좋은지는 시장 경쟁을 통해 결정될 문제입니다. 경쟁을 붙이고 지원은 똑같이 하면 됩니다. 수수료를 안 받는다지만 개발하고, 인원을 늘리고, 조직과 센터를 만드는 데 예산이 안 들어갑니까. 공공 예산으로 시스템과 인원을 갖추는 게 맞다는 건 RE100 시장을 공공 사업으로 가져가겠다는 주장입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혁신에 투자할 테니 조건만이라도 똑같이 해 달라는 겁니다.”
—한국기후에너지산업협회 건의서에는 민간 사업자가 퇴출될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지금은 너무 초창기라 퇴출보다는 신생 기업 진입을 어렵게 만든다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민간은 매칭을 쉽게 하려고 기술에 투자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공단 플랫폼을 써야 지원금을 준다고 하면 민간에서 기술 투자가 쉽게 일어나겠습니까. 시장을 만들어도 결국 공단 플랫폼에 가서 지원받아야 하는 형국입니다. 민간 혁신기업은 자기 돈을 들여 투자하는 겁니다. 정부 예산이 아닙니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인식의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전력정책은 오랫동안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국가 기간망 관리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석유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 산업이고, 수많은 혁신 기업이 나와야 한다는 게 글로벌 기조입니다. 물론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산업정책에는 상거래와 금융의 관점도 필요합니다. 공급 중심의 유틸리티(공공 서비스) 관점에서 시장이 설계되다 보니 계약과 신용, 위험을 다루는 금융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겁니다. 이제는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PPA를 산업으로 봐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PPA는 전기를 사고파는 전형적인 상거래입니다. 전기는 전력망을 통해 공급되지만, 거래를 통해 물량과 가격, 계약기간을 정하고 그에 따른 위험을 계산해야 합니다. 석유처럼 전기를 원자재로 바라보고 다양한 수요와 공급이 각자의 조건에 맞춰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럼 공공은 무엇을 해야 하나.
“공공은 시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신용과 금융 시스템을 설계해야 합니다. 발전사업자가 장기 자금을 조달하려면 안정적인 전력 판매계약과 구매기업의 신용이 중요한데, 많은 중소기업이 20년간 전력 구매를 약속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들은 필요한 전기를 1~3년씩 사고 싶어 합니다. 이런 단기 거래가 가능하려면 계약이 끝난 뒤 판매 위험과 거래 상대방의 신용 위험을 분산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공이 이런 금융체계를 마련하면 민간 플랫폼이 다양한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고 거래를 늘릴 수 있습니다. 거래가 활발해지고 공급자 간 경쟁이 치열해져야 가격도 내려갑니다.”
—에이치에너지는 어떤 시장을 그리나.
“창업할 때 ‘전기공학자가 아닌 수학자와 개발자가 모여 폐쇄적인 전력시장을 모두가 참여 가능한 플랫폼 경제로 만든다’고 선언했습니다. 전기는 실물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와 생산, 소비와 거래의 문제입니다. 지역 소상공인이 직접 투자하고, 삼성전자만이 아니라 중소기업도 RE100 전기를 살 수 있는 상거래 시장을 만드는 게 저희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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