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에 있는 법보종찰 해인사가 국보이자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새롭게 판각하는 대장정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해인사는 29일 오후 합천군 해인사 탑마당에서 ‘다시 새기는 대장경, 인류를 향하다’를 주제로 ‘대장경 판각 고불식(告佛式)’을 봉행하고 새로운 천년을 향한 역사적인 출발을 알렸다.
고불식(告佛式)이란 ‘부처님께 고한다’는 뜻으로, 새로운 불상이 완공됐거나 큰 법회를 시작할 때 또는 중요한 서원을 세울 때 부처님께 고하는 불교계의 성스러운 의식을 의미한다.
이번 불사는 현존하는 팔만대장경 원본을 대체하거나 단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800년 전 고려 선조들이 몽골 침략이라는 국난 속에서 발휘했던 호국 원력을 오늘날에 되살리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기후위기, 전쟁과 핵 위협,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 등 21세기 복합 위기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생명 가치를 지키는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키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해인총림 방장 학산대원 대종사,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주지 혜일스님을 비롯해 박완수 경남지사, 신도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본행사에 앞서 법보전 앞마당에서는 ‘만일기도 입재식’이 열렸으며, 본행사 후에는 스님과 판각학교 강사진, 교육생 등 30명이 전통 판각 시연을 선보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향후 50년에서 100년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 불사로 추진된다.
고려시대 각수 1700명이 70년에 걸쳐 대장경을 만들었듯 현재 활동 중인 각수 15명 정도가 후진을 길러내며 대업을 이어간다.
이를 위해 해인사는 2023년 전담 기구인 장경도감을 설립했으며, 산하 판각학교에서는 국가·지방무형유산 각자장 등 10여명의 교수진 지도 아래 스님과 재가자 670여명이 전통 판각법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다.
또한 경판 주요 재료인 산벚나무 약 300t을 확보하고 사찰 소유 토지에 돌배나무 2000그루를 심는 등 안정적인 목재 수급 기반을 다지고 있으며, 향후 약 33만㎡(10만평) 규모의 '대장경 타운'을 조성해 전통 판각 교육과 경판 제작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방장 학산대원 대종사는 법어를 통해 “오늘 그대들이 든 판각의 칼끝이 나무에 닿을 때, 나무가 깎이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대들의 번뇌가 깎이는 것입니까”라며 판각의 수행적 의미를 일깨웠다.
이어 주지 혜일스님은 발원문을 통해 “한 글자 한 글자 새김에 세 번 절하는 지극한 정성과 간절한 마음을 한 획 한 획에 담겠다”며 “모두가 갈등보다 화합을, 불안보다 희망을 선택하는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동참해 주시기를 발원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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