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다시, 한 팀을 생각하다 [사진기자 이제원의 30년 된 외장하드]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사진기자 이제원의 30년 된 외장하드 , 세계뉴스룸

입력 :
사진·글=이제원 기자

인쇄 메일 url 공유 - +

구글 선호 매체 등록

Kodak 필름 한 롤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며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메라에 표시된 필름 카운터가 25 정도가 되면 고민이 시작됐다. 필름을 새걸로 갈아야 하나 남은 거로 찍어도 될까? 제한된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긴장감, 설렘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사진기자는 본인이 취재했던 사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관한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사진의 중요도를 떠나 보관을 많이 하는 사진기자이다.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상황이 기억도 없는 시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있고 취재와 출장 중에 보이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열어본 나의 외장하드를 독자들과 같이 꺼내보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짙은 정장에 붉은 넥타이를 맨 선수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이도,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는 이도 있다. 가운데 선 거스 히딩크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2002년 1월 8일 인천국제공항. 북중미 골드컵 출전과 전지훈련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박지성, 황선홍, 이영표, 송종국, 차두리, 이천수, 유상철 등 대한민국 축구 월드컵 4강 신화의 전설들이 월드컵을 기대하며 모여 있다.

 

2002년 1월 8일 히딩크 감독과 국가대표 축구대표팀이 미국에서 열린 골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2002년 1월 8일 히딩크 감독과 국가대표 축구대표팀이 미국에서 열린 골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지금 이 사진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해 여름을 떠올리게 된다. 골이 터질 때마다 뒤엉키던 선수들, 광장을 붉게 물들인 응원 인파, 월드컵 4강이라는 믿기 어려운 성적. 하지만 셔터가 눌리던 순간에는 어느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은 아직 월드컵 본선 첫 승과 16강 진출이라는 숙제를 안고 출국장에 선 도전자들이었다.

 

당시 대표팀을 향한 시선에도 기대와 불안이 섞여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체력과 전술 훈련에 공을 들이며 선수들을 시험했다. 고참에게도 자리가 보장되지 않았고, 젊은 선수들에게도 기회가 열렸다. 명성보다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능력이 선발의 기준이었다. 경쟁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찾고, 서로의 움직임을 하나로 맞춰가는 과정이었다.

 

그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표팀은 월드컵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골드컵에서 2002 월드컵 본선 상대인 미국과의 첫 경기 1대 2 패를 시작으로 2무 3패에 그쳤고, 이어진 우루과이 평가전에서도 패했다. 경기력을 둘러싼 우려와 히딩크 감독을 향한 비판이 이어졌다. 훗날 영광의 밑거름으로 기억될 시간이지만, 당시에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24년이 지난 지금, 축구 대표팀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일부 선수들이 주장 손흥민을 이름 대신 등번호 등으로 부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민재·황인범·황희찬 등 1996년생 선수들의 동반 은퇴설도 퍼졌다. 경기력에 대한 아쉬움에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더해지며 팬들의 혼란이 커졌다.

 

그러나 의혹이 곧 사실은 아니다. 손흥민을 둘러싼 집단 따돌림이나 파벌 형성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황인범은 은퇴설을 부인했고, 대한축구협회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이용수 협회 회장 직무대행은 일부 선수들의 운영상 어려움 호소를 인정하면서도 내부 이야기가 외부로 전해지며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다.

 

2002년의 대표팀을 갈등도 흔들림도 없던 완벽한 집단으로 기억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경쟁과 시행착오를 거쳐 함께 뛰는 팀으로 완성됐다는 점이다. 오늘의 대표팀에도 필요한 것은 확인된 문제를 풀어갈 소통과 서로를 향한 신뢰일 것이다.

 

외장하드 속 선수들은 아직 출국장에 서 있다. 사진에는 그해 여름의 환호 대신 출발을 앞둔 얼굴들이 남아 있다. 같은 옷을 입은 이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까지, 사진 밖에서 쌓아야 했던 시간들을 생각한다. 오래된 한 장이 오늘의 한국 축구에 다시 ‘한 팀’의 의미를 묻는다.


오피니언

포토

장원영 '사랑스럽게'
  • 장원영 '사랑스럽게'
  • 아일릿 원희 '완벽 그 자체'
  • 안은진, 우아한 미모
  • 나나, 고혹적인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