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설비의 핵심 부품인 ‘SiC(탄화규소) 전력반도체’의 품질을 검사하는 글로벌 기준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15년 만에 새롭게 쓰였다.
오랫동안 전 세계 산업계에서 잘못 알려져 있던 반도체 내부 결함의 ‘진짜 빛깔’을 원자 단위에서 정밀하게 밝혀낸 세계 최초의 성과다.
25일 한국전기연구원(KERI)에 따르면 KERI 차세대반도체연구센터 나문경 박사팀이 충남대 홍순구 교수팀, 호리바에스텍코리아, SK실트론 등과의 산학연 공동연구를 통해 SiC 반도체 내부 결함의 특성 발광 파장을 바로잡는 데 성공했다.
흔히 ‘전기차의 근육’으로 불리는 SiC 전력반도체는 고온·고압의 가혹한 환경을 견디며 전류의 방향과 전력 변환을 제어하는 첨단 산업의 필수 품목이다.
하지만 제조 과정에서 원자들이 겹겹이 쌓이다가 미세하게 어긋나는 ‘적층결함’이 생기면 제 성능을 내지 못해 꼼꼼한 품질 관리가 필수적이다.
산업계에서는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깨지 않고 불량을 찾기 위해 빛을 쏘아 결함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을 확인하는 ‘광발광(PL) 검사’를 쓴다.
마치 범인의 지문을 확인하듯 결함마다 고유의 빛깔을 대조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대표적인 ‘프랭크형 적층결함’ 중 하나는 약 15년간 ‘424nm(나노미터)’의 빛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공식 표준에까지 반영돼 있었다.
그러나 이는 빛의 신호와 실제 원자 구조를 일대일로 정밀하게 대조한 결과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었다.
이 오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나문경 박사팀은 극한의 고난도 분석을 펼쳤다.
우선 빛으로 결함의 위치(지문)를 찾은 뒤, 그 위치를 나노(10억분의 1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깎아내어 원자 하나하나의 배열을 볼 수 있는 초정밀 전자현미경으로 ‘지문의 주인(실제 원자 배열)’을 직접 확인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나노 시편만 176개를 만들어 관찰했으며,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첨단 이론 계산(밀도범함수이론)까지 더해 교차 검증을 마쳤다.
그 결과 해당 결함의 진짜 지문은 424nm가 아닌 ‘459nm’라는 사실이 완벽하게 증명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반도체 소재 품질 검사의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궁극적으로 전기차와 전력 변환 시스템의 연비와 안전성을 크게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연구팀의 압도적인 역량은 국제 무대에서도 연이어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번 성과는 금속·무기재료 분야 세계 최고 학술지인 ‘악타 머티리얼리아(Acta Materialia, JCR 상위 5% 이내)’에 게재됐다.
특히 심사가 매우 까다로운 이 학술지에서 이례적으로 심사위원의 수정 요구 없이 투고 원고 그대로 게재 승인(Publication as is)을 받으며 완벽성을 입증했다.
또한 나문경 박사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분석·계측 전문기업 호리바가 주관하는 국제 연구상 ‘2026 호리바 마사오상’에서 Honorable Mention을 수상했다.
2004년 시상 시작 이후 국내 연구기관 소속 연구자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문경 박사는 “오랫동안 굳어져 있던 글로벌 판별 기준의 오류를 원자 수준에서 바로잡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국내 전력반도체 산업의 품질 경쟁력을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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