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레스, 2008년 스페인 최초 논알콜 와인 출시
‘스피닝 콘 칼럼’ 기술로 맛과 향 그대로 살려
술 덜 마시는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 확산
한국 등 전세계 논알콜 와인 시장 ‘쑥쑥’
와인인데 알코올이 없습니다. 하지만 와인의 맛과 향은 그대로입니다. 잔에 코를 대면 꽃향기가 피어오르고, 한 모금 머금으면 과일 풍미가 입안을 꽉 채웁니다. 비밀은 ‘스피닝 콘 칼럼(Spinning Cone Column)’이라는 독특한 탈알코올 기법에 있습니다. 이 기술로 스페인 최초의 논알콜 와인을 빚어낸 주인공은 ‘스페인 와인 산업의 맹주’ 파밀리아 토레스(Familia Torres)입니다. 토레스가 논알콜 와인 나투레오(Natureo)를 들고 한국에 왔습니다.
◆술은 줄이고 즐거움은 그대로…논알콜 와인 시장 ‘쑥쑥’
마시는 문화가 바뀌고 있습니다. 술을 끊지는 않지만 덜 마시고 더 건강하게 즐기려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흐름이 전 세계로 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가 이를 증명합니다. 영국 주류시장 분석기관 IWSR(International Wine and Spirit Research)에 따르면 전 세계 논알콜 주류 판매량은 2025년 약 9% 늘었습니다. 2029년에는 판매량이 2024년보다 36%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일반 주류 판매가 정체된 상황에서 홀로 덩치를 키우는 셈입니다. 논알콜 와인만 떼어 봐도 기세가 뜨겁습니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세계 논알콜 와인 시장이 2025년 약 25억달러에서 2033년 53억달러로 두 배 넘게 커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연평균 성장률은 10%에 이릅니다.
눈여겨볼 곳은 아시아태평양입니다. 연평균 14.9%로 가장 가파르게 성장할 지역으로 꼽혔습니다. 성장을 이끄는 건 젊은 세대입니다. 미국 와인마켓카운슬 조사에서 Z세대 24%, 밀레니얼세대 21%가 기분과 수면, 컨디션을 위해 지난 1년 동안 술의 종류나 양을 바꿨다고 답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논알콜 음료가 술을 몰아내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미국 소비자 조사업체 닐슨IQ(NielsenIQ)에 따르면 미국에서 논알콜 음료를 사는 소비자 92%는 일반 주류도 함께 삽니다. 오늘은 와인, 내일은 논알콜 와인을 고르는 식입니다. 업계도 기대가 큽니다.
매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와인박람회 프로바인(ProWein)의 ‘2026 비즈니스 리포트’에서 와인 생산자 61%가 앞으로 2년 동안 논알콜 와인이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Euromonitor International)에 따르면 국내 논알콜 맥주 시장은 2021년 415억원에서 2023년 644억원으로 2년 만에 55% 넘게 커졌습니다. 2027년에는 946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입니다. 맥주가 먼저 길을 닦았으니 이제 와인 차례입니다.
◆150년 역사…스페인 와인의 맹주 토레스
토레스의 역사는 1870년 시작됩니다. 쿠바에서 돌아온 자우메 토레스(Jaume Torres)가 카탈루냐 빌라프랑카 델 페네데스(Vilafranca del Penedès)에 와이너리를 세운 것이 출발점입니다. 이후 5대째 가족이 와이너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토레스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건 4대 미겔 A. 토레스(Miguel A. Torres)입니다. 1979년 프랑스 고미요(Gault-Millau) 와인 올림피아드에서 토레스의 카베르네 소비뇽이 보르도 명가들을 제치고 정상에 오르며 와인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지금은 페네데스를 비롯해 프리오랏(Priorat), 리오하(Rioja),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등 스페인 주요 산지와 칠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도 와인을 만듭니다. 와인 라벨 위에 작은 황소 장식이 달린 ‘상그레 데 토로(Sangre de Toro)’는 토레스를 상징하는 와인으로 꼽힙니다. 명성도 대단합니다. 영국 주류 전문지 드링크스 인터내셔널(Drinks International)이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와인 브랜드’ 1위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습니다. 2022년에는 이 순위가 생긴 뒤 열두 번 가운데 여섯 번째 1위를 차지했습니다. 현재는 5대 미겔 토레스 마차섹(Miguel Torres Maczassek)이 총괄을 맡고 있습니다.
◆2004년부터 한우물…스피닝 콘 칼럼의 마법
토레스의 논알콜 와인 도전은 2004년 시작됩니다. 5대손 미레이아 토레스 마차세크(Mireia Torres Maczassek)가 연구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토레스의 R&D 디렉터이자 부티크 와이너리 장 레옹(Jean Leon)의 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미레이아는 포도 품종 전문가로, 바르셀로나 소재 라몬 유이 대학교(Universitat Ramon Llull) 산하 사리아 화학연구소(IQS)’에서 화학공학 학위를 취득했고 몽펠리에 국립고등농업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Agronomique)에서 양조학 및 포도 재배학 디플로마를 취득했습니다.
미레이라는 3년 넘는 연구 끝에 2008년 스페인 최초의 논알코올 와인 ‘나투레오 무스캇’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알코올이 0.5% 남아 있었지만 기술을 꾸준히 다듬어 2016년부터 알코올을 완전히 덜어낸 0.0% 와인을 생산합니다. 레이블에도 ‘0.0’을 넣어 완벽한 논알콜 와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토레스는 현재 60여 개국에 수출하는 세계 논알콜 와인 시장의 리더로 자리 잡았습니다.
투자도 과감합니다. 토레스는 2024~2026년 600만유로를 들여 바르셀로나 인근 파크스 델 페네데스(Pacs del Penedès) 본사에 논알콜 와인만 만드는 전용 와이너리를 짓고 있습니다. 2025년에만 절반을 쏟아부었는데 이는 그해 예산에서 가장 큰 항목이었습니다.
성적표도 화려합니다. 독일 국제 와인 품평회 문두스 비니(Mundus Vini)는 논알콜 와인만 겨루는 전문 대회 ‘문두스 비니 논알콜(Mundus Vini Non-Alcoholic)’을 따로 엽니다. 토레스는 이 대회에서 2024년과 2025년 2년 연속 ‘최고 인터내셔널 생산자(Best International Producer)’로 뽑혔고 2026년에는 ‘스페인 최고 생산자(Best Producer Spain)’에 올랐습니다. 2023년에는 영국 국제 와인·주류 품평회 IWSC(International Wine & Spirit Competition)에서 ‘저알코올·논알콜 와인 생산자 트로피(Low & No Wine Producer Trophy)’를 받았고 나투레오 스파클링 로제는 94점을 기록했습니다. 2025년 영국 월드 알코올 프리 어워즈(WAFA)에서는 출품한 6개 제품이 모두 메달을 받아 ‘최고의 음료 라인업(Best Drinks Range)’ 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스피닝 콘 칼럼의 마법
나투레오는 ‘포도 주스’가 아닙니다. 진짜 와인을 먼저 만든 뒤 알코올만 쏙 빼냅니다. 포도를 수확해 압착하고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약 2주 동안 저온 발효합니다. 포도의 당분이 자연스럽게 알코올로 바뀌면서 완성된 와인이 됩니다. 이 와인을 정제하고 걸러낸 뒤 높다란 스테인리스 원통, 스피닝 콘 칼럼으로 옮깁니다. 안에는 고정된 원뿔과 빙글빙글 도는 원뿔이 번갈아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와인을 위에서 흘려보내면 회전하는 원뿔의 원심력이 와인을 종잇장처럼 얇은 막으로 펼칩니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이 얇은 막을 스치며 휘발 성분을 낚아챕니다. 핵심은 진공입니다. 원통 안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 끓는점을 50도 아래로 확 낮춥니다. 실제 공정은 30도대 후반의 낮은 온도에서 이뤄집니다. 와인을 펄펄 끓이지 않으니 향이 상하지 않습니다.
과정은 3단계입니다. 먼저 날아가기 쉬운 아로마를 뽑아내 따로 보관합니다. 원래 아로마의 약 95%를 붙잡아 둡니다. 다음으로 와인을 다시 통과시켜 알코올만 분리해 제거합니다. 마지막으로 따로 떼어둔 아로마를 와인에 다시 돌려줍니다. 당분이나 인공 감미료는 넣지 않습니다. 포도가 가진 산도와 천연 잔당만으로 균형을 맞춥니다. 품종 선택도 중요합니다.
한국을 찾은 토레스 수출 담당 질 세라(Gil Serra)는 “초기 연구에서는 일부 품종에서 타닌이 두드러지거나 풍미의 균형을 맞추기 어려웠다”며 “알코올을 덜어낸 뒤에도 향과 구조감이 살아나는 품종을 골라내는 데 오랜 시간을 들였다”고 설명합니다. 향이 풍부한 무스캇이 나투레오의 첫 주자가 된 이유입니다. 그는 “논알콜 와인은 와인을 대신하는 음료가 아니라 새로운 음용 상황과 소비층을 만드는 카테고리”라며 “음식 페어링은 물론 논알콜 칵테일로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한국 젊은 소비자들에게 큰 매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알코올은 없이, 즐거움은 그대로…나투레오 3종
나투레오는 11월 화이트와 레드를 먼저 한국에 선보이고 스파클링은 내년에 본격 출시합니다. 나투레오 와인은 금양인터내셔날에서 수입합니다.
▶나투레오 스파클링 세미 세코 0.0(Natureo Sparkling Semi Seco 0.0)
잔에 따르면 골든 옐로 빛 위로 섬세하고 촘촘한 버블이 부드럽게 피어오릅니다. 열대 과일과 청사과, 살구의 싱그러운 향이 먼저 반기고 은은한 바닐라가 뒤를 받칩니다. 입에서는 ‘세미 세코(Semi Seco)’라는 이름처럼 살짝 달콤한 맛과 시트러스의 상큼한 산미가 시소처럼 균형을 이룹니다.
생굴이나 해산물 플래터와 짝을 이루면 시트러스 여운과 버블이 비린 맛을 말끔히 씻어줍니다. 브리나 카망베르처럼 부드러운 치즈와도 잘 어울립니다. 은은한 단맛 덕분에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웰컴 드링크나 과일 타르트, 마카롱 같은 디저트와도 찰떡입니다. 카탈루냐 페네데스에서 자란 알렉산드리아 무스캇(Muscat of Alexandria)을 베이스로 만드는 논빈티지(NV) 와인입니다. 알코올은 0.0%이고 6~8도로 차갑게 마시면 가장 맛있습니다. 문두스 비니 논알콜 2026에서 은메달을 받았습니다.
▶나투레오 무스캇(Natureo Muscat)
옅은 노란색을 띠며 황금사과를 떠올리게 하는 과일 향이 돋보입니다. 시트러스와 흰 꽃, 청사과, 잘 익은 복숭아, 서양배 향이 화사하게 펼쳐집니다. 향만 맡으면 달콤한 와인 같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입에서는 달지 않고 산뜻합니다. 부드러운 질감에 신선한 산미가 어우러지고 모과잼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식전주로 제격이고 흰살생선회, 새우구이, 조개찜 같은 해산물과 닭 요리, 파에야와 훌륭한 조화를 이룹니다. 올리브유를 듬뿍 두른 지중해식 샐러드나 향신료가 가볍게 들어간 태국 커리와도 잘 맞습니다. ‘모히토 0.0’으로 즐겨도 좋습니다. 잔에 라임 주스 30ml와 민트 잎 8장을 넣고 가볍게 으깬 뒤 라임 슬라이스와 얼음을 채웁니다. 여기에 탄산수 120ml와 나투레오 무스캇 120ml를 부어 섞으면 완성입니다.
카탈루냐 페네데스에서 자란 알렉산드리아 무스캇 100%로 만듭니다. 선별한 포도를 저온 발효한 뒤 정제와 탈알코올 공정을 거쳐 향과 맛은 살리고 알코올만 덜어냅니다. 국내 출시 빈티지는 2025년이고 알코올은 0.0%입니다. 2025년 카탈루냐는 온화하고 비가 많은 겨울과 강수량이 넉넉한 봄 덕분에 포도가 활력과 균형을 잘 갖췄습니다. 2008년 스페인 최초의 논알코올 와인으로 이름을 올린 나투레오의 맏형이자 세계 시장의 베스트셀러입니다. 문두스 비니 논알콜에서 부문 최고 와인에 주는 ‘베스트 오브 쇼(Best of Show)’를 받았고 2026년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받았습니다.
▶나투레오 가르나차 시라(Natureo Garnacha Syrah)
잔을 가득 채우는 짙은 체리 빛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딸기와 라즈베리, 블랙베리 같은 붉고 검은 베리 향이 순수하게 피어오르고 정향의 은은한 스파이스와 부드러운 바닐라가 복합미를 더합니다. 논알콜 레드는 밍밍하다는 편견을 깹니다. 부드럽고 섬세한 타닌과 균형 잡힌 산미가 입안에 즙이 많은 듯한 구조감을 만들어냅니다.
스테이크와 로스트 비프, 숯불갈비처럼 육즙 많은 고기와 만나면 부드러운 타닌이 기름진 맛을 깔끔하게 정리합니다. 볼로네제 파스타, 버섯 리소토, 하몬을 올린 핀초스와도 잘 어울립니다. 이 와인으로 만드는 알콜 없는 칵테일, 목테일(Mocktail) ‘샌프란시스코 0.0’도 추천합니다. 잘게 부순 얼음을 채운 잔에 오렌지 주스 10ml와 파인애플 주스 10ml를 넣고 나투레오 가르나차 시라 100ml를 붓습니다. 그레나딘 시럽을 약간 더하고 오렌지 슬라이스로 장식하면 끝입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가르나차와 시라를 블렌딩하며 카탈루냐 페네데스에서 수확한 포도를 사용합니다. 문두스 비니 논알콜 2026에서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부르고뉴와인 마스터 프로그램,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한국소믈리에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독일 ProWein, 이탈리아 Vinitaly 등 다양한 와인 엑스포를 취재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아르메니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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