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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금화도감, 미완의 국가직 소방관 [김세희의 역사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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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기자 saehee012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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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현재를 관통합니다. 문명은 발전했지만 수천·수백 년 전 벌어진 사건과 문제는 오늘날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됩니다. 특히 사회·정치·경제 분야에서 빚어지는 고질적 병폐는 시대를 달리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김세희의 역사ON’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삼국사기’ 등 사료에 기록된 사건·인물·제도를 오늘의 현안과 연결해 살펴보고 논평하고자 합니다. 과거를 성찰의 거울로 삼아 오늘의 현실을 이해할 단서를 찾겠습니다.

 

“한양과 지방 각처의 창고에서 여러 번 화재가 나 불길이 번지는 폐단이 있습니다. 창고 사이 5∼6칸 정도 간격을 두고 담을 쌓아 불길이 번지지 않게 하고 지붕에는 흙을 두껍게 바른 뒤 기와를 덮도록 하소서.”

 

1423년 6월23일 호조가 세종에게 건의한 창고 화재 방지책이다. 조선 세종시기 화재 대응 제도가 정비되는 과정은 꽤 흥미롭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가 2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앞에서 화재 현장에서 숨진 김진석 소방위의 사망 경위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수원=뉴시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가 2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앞에서 화재 현장에서 숨진 김진석 소방위의 사망 경위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수원=뉴시스

불과 나흘 뒤 병조는 한 걸음 더 나아간 대책을 내놨다. 화재 예방과 진압을 위한 소방세칙인 금화조건(禁火條件)이다. 사다리와 저수기, 급수구 등 소방기구를 갖추고, 불이 나면 종을 울려 알리도록 했다. 관원과 군사의 역할, 출동과 대기 명령도 세세하게 정했다. 모두 13개 조항이다.

 

그래도 화재는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1426년 2월15일 한양에서 ‘대화재’가 발생했다. 경시서와 행랑 116칸, 중부 인가 1630호, 남부 350호, 동부 190호가 타버렸다. 인명 피해도 적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남자 9명, 여자 23명인데 어린아이와 늙고 병든 사람으로 타죽어 재로 화해버린 사람은 그 수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나와 있다. 이튿날에도 전옥서와 행랑 8칸, 종루 동쪽 민가 200여호가 불탔다. 말 그대로 대참사였다.

 

세종의 대응은 빨랐다. 대화재 닷새 뒤인 2월20일 행랑에 방화벽을 쌓고 도로를 넓히도록 했다. 일정한 간격마다 우물을 파 소화용수를 확보하고, 궁궐과 관청에는 소화기구를 갖추게 했다. 그리고 2월26일 화재 예방과 진압을 전담하는 소방기관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했다. 대화재 발생 11일 만이었다. 부분적인 방화대책에서 세칙으로, 다시 시설 정비와 전담조직 설치로 제도를 끊임없이 보완한 것이다.

 

당시 소방 대책 정비과정은 오늘날 소방공무원이 처한 문제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소방공무원은 국가직으로 전환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처우와 지원수준은 여전히 지역에 따라 크게 갈린다. 1인당 피복비는 지역별로 크게 3배, 위탁교육비는 10배, 건강검진비는 2.5배가량 차이 난다. 개인보호장비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국 소방관이 사용하는 방화 헬멧·방화복·공기호흡기 등 개인보호장비의 38.9%가 사용기한을 넘겼다. 특히 공기호흡기는 55.1%, 방화복은 절반(50%)이 사용기한을 초과했다. 

 

재정 구조 문제는 더 뚜렷하다. 2025년 전체 소방예산에서 국비가 차지한 비중은 10.7%에 그쳤다. 소방공무원 인건비 가운데 국비 지원 비중도 8.6%에 불과하다. ‘무늬만 국가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9일 부천 원미구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김진석 소방위 영결식’에서 고인 영정에 헌화를 마친 뒤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부천=연합뉴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9일 부천 원미구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김진석 소방위 영결식’에서 고인 영정에 헌화를 마친 뒤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부천=연합뉴스

이 구조적 모순은 최근 추미애 경기지사의 이른바 ‘재정 빨대’ 발언을 계기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추 지사는 국정감사에서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후 여러 차례 사과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소방 재정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현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표현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어떤 화재·재난현장이든 즉각 출동하고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는 소방공무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도 경기 부천 화재로 순직한 김진석 소방위를 비롯해 4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5년부터 올해 9월까지 재난·사고 현장에 투입된 뒤 트라우마를 겪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방관도 154명에 이른다. 

 

국가직 전환은 소방관의 신분만 바꾸자는 취지가 아니다. 지역에 따른 소방서비스 격차를 줄이고 국가의 재난 대응책임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호장비와 건강관리, 인건비 등 최소한의 지원수준부터 국가가 더 책임지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조선 세종시기에도 소방제도가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대책을 보태고 조직을 만들었다. 금화조건에서 금화도감까지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국가직 소방관은 벌써 6년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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