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20조·SK하이닉스 5조 선납 제안 불발…25조원 조달 무산
2038년까지 전력망에 72조8000억원 투자…전기요금 인상론 부상
한국전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제안한 25조원 규모의 전기요금 선납이 무산되면서 자금 조달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 내년 말 사채 발행 한도 특례까지 종료되면 한전의 사채 잔액이 법정 한도를 19조원 넘게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산업단지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까지 앞둔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24일 한전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사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까지 허용하는 특례가 2027년 말 종료된다. 별도 법 개정이 없다면 2028년부터 발행 한도는 다시 2배로 줄어든다.
국회예산정책처가 한전의 ‘2026∼2030년 중장기재무관리계획’을 토대로 추산한 2027년 말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는 28조4177억원이다. 여기에 2배 기준을 적용하면 사채 발행 한도는 56조8354억원이다.
반면 같은 시점 사채 발행 잔액은 76조489억원으로 예상됐다. 특례 종료 후 적용될 법정 한도보다 19조2135억원 많은 규모다. 올해 상반기 기준 사채 발행 잔액도 71조5000억원에 달한다.
19조원은 한전이 당장 갚아야 할 금액이 아니라 특례 종료 후 예상되는 한도 초과분이다. 발행 한도를 낮추지 못하면 신규 투자에 필요한 채권 발행뿐 아니라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새 채권으로 갚는 차환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
한전은 사채 발행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형 전력 수요기업으로부터 전기요금을 미리 받는 방안을 추진했다.
삼성전자에 약 20조원, SK하이닉스에 약 5조원 등 총 25조원의 전기요금 선납을 제안했다. 지난해 납부액을 기준으로 향후 5년 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한전은 선납금에 국고채 2년물보다 높은 수준의 이자를 적용하고, 향후 납부할 전기요금에서 차감하는 조건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리 확보한 자금으로 사채 발행 부담을 줄이고 전력망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두 회사는 대규모 자금을 한꺼번에 집행하는 데 부담을 느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전이 구상했던 25조원 규모의 자금 조달 방안도 성사되지 못했다.
지난 1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재군 한전 전력계통부사장은 전기요금 선납 제안과 관련해 사채 발행 비율을 낮추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자금 확보는 어려워졌지만 전력망 투자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한전이 수립한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필요한 투자액은 72조8000억원이다. 기존 계획보다 16조3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와 AI 데이터센터 등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려면 송전선로와 변전소를 확충해야 한다. 문제는 한전의 재무 여건이다.
최근 한 달간 보고서를 낸 증권사 전망치를 집계한 결과, 올해 3분기 한전의 영업이익은 2조696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29%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4분기에는 영업이익 823억원, 당기순손실 493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영업흑자를 유지하더라도 이자 비용 등을 반영한 최종 손익은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뜻이다.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지난 19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력망 투자 확대를 이유로 정부와 최소한의 전기요금 인상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전력망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외부 차입에만 의존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내놨다. 정부와 전기요금 인상에 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인상 필요성을 제기한 단계일 뿐 가정용이나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한전은 사채 발행 한도 축소에 대응하기 위해 자구 노력과 일반 차입 등도 검토하고 있다. 사채 발행 한도 특례를 연장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신한투자증권 김상인·차주희 연구원은 대규모 사채 상환이나 자본 확충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정 한도가 2배로 돌아가는 시점을 늦추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관건은 전력망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사채 한도 특례 연장과 정부 지원, 전기요금 조정 가운데 어떤 방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전의 재무 부담과 국민·기업의 전기요금 부담이 달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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