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가입 연령 인구 32.4%인 954만명이 연금 사각지대
결혼과 동시에 소득이 끊겼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연금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던 전업주부 등 무소득 배우자를 지역가입자로 편입하는 가입구조 개편이 추진된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 설계된 ‘1가구 1연금’의 낡은 틀을 깨고 ‘1인 1연금’ 체계로 전환하려는 조치다.
22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보고한 ‘주요 업무 현황’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가입제도 개선의 핵심 과제로 소득이 없는 배우자 등을 국민연금에 포함하기 위한 가입구조 개편을 공식화했다.
현재 지역가입 대상에서 빠져 있는 무소득 배우자와 18세 이상 27세 미만의 소득이 없는 청년을 지역가입자 안의 ‘납부예외자’로 편입하는 것이 골자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당시 국감 업무보고에서 “국민연금에서 제외되는 무소득 배우자 등을 연금제도에 포함하고, 추납제도를 본래 취지에 맞게 보완하는 등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연금 사각지대, 가장 큰 덩어리는 ‘가입 대상 밖’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기준 18세부터 59세까지 총인구 2940만명 가운데 공적연금 가입자는 국민연금 2093만명과 특수직역연금(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180만명을 합쳐 2273만명이다.
반면 무소득 배우자와 27세 미만 무소득 청년 등 법적 가입 대상에서 원천 배제된 ‘적용제외자’는 667만명에 달한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직전 집계인 지난해 6월 말 663만명보다 4만명 늘었다.
여기에 실직 등으로 납부를 멈춘 지역가입자 납부예외자 242만명과 13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못한 장기체납자 45만명을 더하면 모두 954만명으로, 의무가입 연령 인구의 32.4%가 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 가운데 적용제외자가 10명 중 7명꼴로, 보험료를 내다 멈춘 사람보다 처음부터 제도 밖에 놓인 사람이 훨씬 많다.
◆ 같은 무소득자인데 결혼하면 ‘대상 아님’
현행 국민연금법은 똑같이 소득이 없더라도 미혼자는 납부예외자로 분류해 가입자 자격을 유지해 주지만, 소득이 있는 배우자를 둔 기혼 무소득자는 적용제외자로 분류해 제도 밖으로 밀어낸다.
법 제9조는 18세 이상 60세 미만이면 당연히 지역가입자가 된다고 정하면서도 국민연금이나 다른 공적연금 대상자의 배우자로서 별도 소득이 없는 사람, 18세 이상 27세 미만으로 학생이거나 군 복무 등의 이유로 소득이 없는 사람은 예외로 둔다. 청년은 보험료를 한 번이라도 낸 적이 있으면 예외에서 빠진다.
차이는 노후 연금에서 갈린다. 미혼 무소득자는 납부예외 기간에 대해 최대 119개월까지 추후 납부(추납)하거나 저소득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과거 납부 이력이 없는 전업주부는 추납과 보험료 지원 대상에서 모두 배제된다.
적용제외 기간도 2016년 말부터 추납할 수 있게 됐지만, 국민연금법 제92조는 그 대상을 ‘연금보험료를 최초로 납부한 이후’의 기간으로 한정하고 있다.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기준 27∼59세 적용제외자는 385만7798명이었다. 자료에 담긴 사례를 보면 26세에 결혼해 전업주부로 지낸 A씨는 적용제외 기간을 추납할 수 없다. 반면 37세에 결혼한 B씨는 27세부터 결혼 전까지의 납부예외 기간을 추납해 연금을 받을 수 있다.
허 의원은 “같은 무소득자인데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연금 가입 대상에서 빠지는 것은 ‘전 국민 연금’이라는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공단은 무소득 배우자와 18세 이상 27세 미만 무소득자를 지역가입자 납부예외자로 편입하고, 추납 제도를 소수 계층이 아닌 국민 누구나 본래 취지에 맞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 전반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무소득 배우자를 지역가입자로 바꾸려면 적용제외 대상을 정한 국민연금법 제9조를 고쳐야 하는 만큼 실제 시행은 국회 입법을 거쳐야 한다.
◆ 18세 첫 보험료는 나라가…저소득 지원 문턱 완화도 추진
사각지대 축소를 위한 재정 지원도 확대된다. 2027년 1월 1일부터 만 18세에 도달하는 2009년생 청년에게는 생애 최초 1개월분 연금보험료 4만1000원을 지원한다. 이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지난 4월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이 확정됐다. 자동 지원이 아니라 신청제로, 26세가 될 때까지 공단 지사나 모바일 앱 등으로 신청하면 된다. 이미 납부 이력이 있으면 보험료 대신 가입기간 1개월을 더 인정한다.
첫 보험료로 납부 이력이 생기면 이후 학업과 군 복무 등으로 보험료를 내지 못한 기간도 추납할 수 있다. 결혼 뒤 적용제외자가 되더라도 그 기간을 나중에 채워 넣을 길이 열리는 셈이다.
저소득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기준도 현행 월 소득 80만원 미만에서 100만원 미만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지금은 보험료의 50%를 최대 12개월 동안 지원하며, 올해부터 납부를 다시 시작했는지와 상관없이 소득 기준만 맞으면 신청할 수 있다. 공단은 기준 상향을 내년 정부 예산에 반영하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혀, 국회 예산 심의 결과에 따라 확정 여부가 갈린다.
농어업인 연금보험료 월 최대 지원금액은 지난해 4만6350원에서 올해 5만350원으로 이미 올랐다. 지원 기준소득금액도 월 103만원에서 106만원으로 높아졌다.
◆ 지금 전업주부라면…임의가입과 추납 조건 확인
개편이 시행되기 전까지 무소득 배우자가 연금 가입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은 임의가입이다. 국민연금법 제10조에 따라 18세 이상 60세 미만이면 공단에 신청해 임의가입자가 될 수 있다. 다만 보험료는 전액 본인이 내야 하고, 법적으로 지역가입자가 아니어서 저소득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은 받지 못한다.
무소득 배우자의 임의가입이 늘면서 부부가 함께 노령연금을 받는 사례도 늘었다. 지난 5월 기준 노령연금 부부 수급자는 93만853쌍으로 전체 노령연금 수급자의 28.5%를 차지했다.
결혼 전에 한 번이라도 보험료를 낸 적이 있다면 그 뒤 적용제외 기간을 최대 119개월까지 추납할 수 있다. 추납은 임의가입 등으로 가입자 자격을 갖춘 뒤 신청할 수 있고, 가능한 기간과 금액은 공단 지사나 고객센터(1355)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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