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말기 연합국의 핵심인 미국·영국을 대하는 프랑스의 태도는 냉랭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서방 문명의 핵심이었던 프랑스가 소위 ‘앵글로색슨’ 세력에 의해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다는 불만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는 2차대전 초반인 1940년 6월 나치 독일의 공략에 쉽게 무너졌다. 프랑스 해방은 1944년 6월 미·영이 주도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의해 겨우 이뤄졌다. 샤를 드골 장군이 이끈 저항군, 일명 ‘자유프랑스’가 나치 독일 타도에 기여한 공로는 미미했다. 미·영은 전후 국제 질서 재건을 논의할 연합국 정상회의에서 프랑스 대표를 배제했다. 드골의 격노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력의 한계 탓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2차대전 초반만 해도 미국 등 연합국들의 관심 밖에 있던 중국은 1941년 12월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 이후 비로소 주목의 대상이 됐다. 1937년부터 일본과 싸워 온 중국은 순식간에 연합국 일원으로 편입됐다. 중국의 잠재적 국력을 높이 평가한 미국과 달리 영국은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소련(현 러시아)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전쟁이 막판으로 치달으며 미국은 연합국 정상회의에 중국 국민당 정부 장제스(蔣介石) 주석을 끌어들이려 했다. 영국은 마지못해 동의했으나 소련은 거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결국 장제스는 1943년 11월 소련은 빼고 미·영·중 정상들이 함께한 카이로 회의에만 겨우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연합국들의 전시 외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1945년 2월의 얄타 회의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 그리고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이 참석했다. 세계 언론은 이들을 “3거두(巨頭)”라고 부르며 무한한 존경심을 표했다. 프랑스의 드골, 중국의 장제스도 회의 참가를 강력히 희망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 당했다. 당장 영국만 해도 회의 참여가 보장되긴 했으나 미·소 양국보다 현저히 약해진 국력 탓에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벌써부터 호사가(好事家)들은 “두 거두 그리고 반(半)”이란 표현을 즐겨 쓰기 시작했다. 회의 내내 처칠의 존재감은 루스벨트, 스탈린과 비교해 턱없이 줄어들었다.
오는 11월 중국 선전(深圳)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주최국인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참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를 계기로 사상 초유의 미·중·러 3국 정상회의가 열릴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성사만 된다면 21세기판 얄타 회의로 기록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20세기 얄타 회의와 비교하면 영국이 탈락하고 그 빈자리를 중국이 채우는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국제 질서란 3∼5개 극소수 강대국이 좌지우지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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