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남정훈 기자] 1-13. 지난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KBO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5전3승제) 3차전의 점수표다. 전남광주 원정에서 1,2차전을 모두 패하고 잠실로 돌아온 LG는 홈에서 반격을 노렸지만, 12점차 대패를 당하며 올 시즌을 마감했다. 전신인 MBC청룡 시절부터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해온 LG는 잠실구장에서의 프로 첫 경기와 마지막 경기를 모두 치른 팀으로 기록됐다. 1982년 8월1일 롯데와 맞붙어 MBC청룡이 3-6으로 패했고, 2026년 10월20일 KIA와의 맞대결에서 1-13으로 패했다. 패배로 시작해 패배로 마무리. 근데 그 패배가 너무나 처참했다. 그래서 더욱 쓰라리다. 그렇게 LG는 올해를 끝으로 철거되는 잠실구장과 처참하고 쓰라린 마지막 모습으로 이별을 고하게 됐다. 엔딩 자체는 처참하고 쓰라렸지만, LG의 올 시즌을 무조건 ‘실패’로 규정짓기는 어렵다.
2020년대가 절반쯤 지난 시점에서 KBO리그 최강팀을 꼽으라면 단연 LG의 이름이 첫 손에 꼽힐 것이다. 2019년부터 이어져온 가을야구는 2026시즌까지 개근하고 있고, 2023시즌과 2025시즌엔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동시에 집어삼키는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2020년대 들어 한국시리즈 2연패 팀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두 차례 우승을 한 건 LG가 유일하다.
올 시즌 LG의 목표는 뚜렷했다. 2020년대 유일의 통합우승 2연패. 야구계에서도 그 가능성을 높게 봤다. 지난겨울 우승 전력을 고스란히 지켜냈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 리더인 김현수가 FA 자격을 얻어 KT로 이적하긴 했지만, ‘트중박’(트윈스의 중견수는 박해민) 박해민을 경쟁 끝에 지켜냈다. 김현수의 공백은 문성주와 군 복무를 마친 이재원으로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마운드는 한층 강해졌다. 지난 시즌 통합우승 과정에서 기여한 요니 치리노스, 앤더스 톨허스트와 재계약했고, 임찬규, 손주영, 송승기까지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린 토종 선발도 건재했다. 아시아 쿼터 선수 라클란 웰스와 군에서 전역하는 김윤식, 이민호까지 선발 자원이 차고 넘쳤다. 잠실구장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통합우승으로 마무리하는 그림은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토종 좌완 에이스 손주영은 개막 전에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팔꿈치 통증을 안고 팀에 돌아왔고, 4월까지 13경기에서 1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0.75의 특급 성적을 낸 붙박이 마무리 투수 유영찬은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면서 시즌아웃됐다. 4월 말엔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치리노스가 팔꿈치 통증으로 빠졌다.
야수진도 주축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이탈했다. WBC의 영웅 문보경은 WBC에서 다친 허리에 5월 초 경기 중 공을 밟고 왼쪽 발목 인대를 다쳐 이탈했고, 주전 외야수 문성주는 복근 부상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LG의 통합우승 2회를 일궈낸 염경엽 감독은 ‘염갈량’이란 별명대로 이 대신 잇몸 전략으로 버텨냈다. 공석이 된 마무리 자리를 집단 체제로 돌려쓰다 방화가 크게 일자 선발자원인 손주영을 전격 마무리로 전향시켰다. 불펜에서 부진한 장현식을 선발로 돌려쓰고, 치리노스의 부상이 길어지자 우완 강속구 불펜 자원 약셀 리오스를 영입해 불펜진의 구멍을 메웠다. 타선에서도 홍창기, 박동원, 오지환 등 주축 선수들의 부진을 송찬의, 문정빈 등 신예들의 활약으로 채웠다. MVP 포스를 풍긴 오스틴은 LG 타선의 ‘장판파 장비’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염 감독의 절묘한 운영 속에 LG는 선두권을 굳게 지켰고, 전반기를 선두 삼성에 승차 없는 2위로 마쳤다.
‘잇몸 야구’로 버틸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후반기 첫 4연전에서 KT를 만나 4연패를 당하면서 염 감독의 그림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를 패한 채 시작한 후반기 연패는 8연패까지 늘어났다. 후반기 첫 15경기에서 3승1무11패. 어느새 LG는 선두권과 멀어졌고, 3위를 지키는 데 급급해졌다.
물론 추가 전력은 있었다. 빅리그 112승의 베테랑 카를로스 카라스코가 8월1일부터 팀에 합했고, 9월 초에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도전을 마친 고우석이 KBO리그로 돌아와 불펜진 에이스 역할을 든든히 해줬다.
그럼에도 추락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송승기와 통합우승 2회 과정에서 ‘마당쇠’ 같은 필승조의 한 축을 담당했던 김진성이 쓰러졌고, 불펜에는 믿을만한 투수가 마무리 손주영과 고우석, 아시아쿼터 대체 외인 존 케네디만 남았다.
결국 KIA전 연패로 인해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3위마저 지켜내지 못했다. KIA를 상대로만 막판 7연패를 당하면서 데드 크로스 지점까지 도달했다. 지난 12일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승리했다면 준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은 따낼 수 있었지만, KIA 김도영에게 8회 결승 투런포를 얻어맞고 최종 4위로 내려앉았다.
‘한 지붕 두 가족’ 잠실 라이벌 두산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회광반조’의 마지막이었다. 5위 두산이 곽빈-벤자민을 앞세운 선발진의 우위 속에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도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카라스코의 역투와 오스틴의 선제 결승 투런포로 1경기 만에 끝내고 준플레이오프에 다시 올랐다.
염 감독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마친 뒤 “올 시즌 (김)도영이한테 결정적일 때마다 맞았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그를 막아내느냐가 키포인트”라고 했다.
그러나 김도영은 알고도 못 막는 수준의 슈퍼스타였다. 1차전에선 4회 결승 솔로포와 8회 쐐기 투런포 포함 4타점을 얻어맞으며 패했고, 2차전에선 김도영을 2타수 무안타로 봉쇄했지만 선발 임찬규가 0.1이닝 5실점으로 와르르 무너지면서 패했다. 그리고 대망의 3차전에선 0-2로 뒤진 2회 카라스코를 조기강판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케네디가 박재현에게 적시타를 맞은 데 이어 김도영에게 만루포를 얻어맞으며 0-7까지 벌어지며 사실상 백기를 들어야 했다. KIA전 10연패가 LG의 엔딩이었다.
투타에서 부상자 속출 속에서도 가을야구 진출이라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LG는 내년부터는 다시 도전자의 입장으로 돌아간다. 준플레이오프 3차전을 마친 뒤 염 감독은 “팬들이 기대를 많이 하셨는데 성적을 못 올려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올 시즌 부족했던 부분은 마무리 훈련부터 준비 잘해서 내년엔 또 한 번 좋은 시즌을 만들어보겠다”라고 말했다.
2연패 도전을 두 번이나 실패한 염 감독은 “2024년에 우리가 (우승 실패를) 경험해서 올해는 준비했지만, 또 2연패 도전에 실패했다”고 아쉬워하며 “마무리 훈련부터 개개인의 생각을 바꿔서 절실한 야구, 노력이 뒷받침되는 야구를 하도록 방향을 잡고 가볼 생각이다. 생각들을 전체적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절실하게 노력하는 야구로서 선수 개개인 성장이 되어야만 팀이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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