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反)긴축 시위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24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시위 참가자는 주최 측 추산 약 80만명으로, 파리와 리옹, 마르세유, 보르도 등지에서 방화를 저지르다가 경찰과 충돌해 272명이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시위 참가자들은 생활비 부담 완화와 공공 서비스 유지, 교육 예산 삭감 철회를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앞서 지난 9일 교육 예산 삭감에 반발한 학생 시위부터 일어났었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배경은 재정 긴축과 생활비 문제다. 프랑스의 재정 상황은 위기 수준으로 평가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202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5.8%로, EU 재정 규율 기준인 3%를 크게 웃돈다. 공공부채 비율도 올해 들어 118~120%로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해 9월12일 프랑스 국가신용등급을 ‘A+’로 강등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10월 들어 A+로 내렸다. 두 기관은 강등 사유로 공공부채 증가와 정치 분열을 꼽았다. 2024년 말 이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임명한 미셸 바르니에,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의 내각이 예산안을 둘러싼 갈등에 잇따라 무너졌고, 현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 체제도 불안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예산에서 약 540억유로의 지출 삭감을 추진하면서 시위대 반발을 키웠다.
이런 민생 압력은 프랑스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 전체가 높은 에너지 비용과 산업 경쟁력의 저하라는 구조적 부담을 안고 있는 탓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마리오 드라기 전 총재 시절인 2024년 9월9일 발표한 유럽 경쟁력 보고서는 EU 기업의 전기요금이 미국과 중국의 2~3배, 가스요금은 미국의 3~5배라고 각각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경쟁력 격차를 좁히려면 연 7500억~8000억유로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진단했었다. EU 집행위도 2024년 9월 발표한 ‘에너지 동맹 현황 보고서’에서 역내 산업용 에너지 가격이 미국보다 크게 높다고 인정한 바 있다.
고에너지 비용의 타격은 독일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독일 경제는 2023년 0.3%, 2024년 0.2% 각각 뒷걸음질해 2년 연속 역성장했다. 독일 연방통계청은 높은 에너지 비용을 마이너스 경제성장의 구조적 원인의 하나로 지목했다.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화학기업 바스프(BASF)는 2023년 2월 루트비히스하펜 공장의 암모니아 등 에너지 집약 생산 라인을 줄여 약 2600명을 감원한 바 있다. 이 회사의 2022년 추가 에너지 비용은 32억유로로 집계됐다.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은 2024년 12월 노사 합의를 통해 2030년까지 독일 내 일자리 3만5000여개를 줄이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철강업체 아르셀로미탈은 13억유로의 보조금 지원에도 작년 6월 독일 내 그린 수소 기반 제철사업 2건을 취소한다고 밝혔었다.
탈원자력발전을 기치로 한 에너지 믹스(전원 구성)의 변화가 경제 부담을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은 2023년 4월15일 마지막 원전 3기의 가동을 멈춘 바 있다. 2022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천연가스 공급 차질과 에너지 위기가 겹치면서 독일의 석탄 화력발전량이 전년 대비 2021년 15.2TWh(약 9.2%)로 늘어 179.9TWh로 증가했다. 독일 환경청(UBA)에 따르면 같은 기간 에너지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도 석탄 사용 증가 등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약 1100만t(4.5%) 늘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2022년 전력 가격 급등의 주된 원인을 가스 공급 충격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독일 도매 전기요금은 ㎿h당 239.5유로에서 가스 가격이 안정된 2023~2024년 92.2유로로 다시 내렸다.
올해 여름 프랑스에서도 원전 출력이 일시 감소했지만, 이는 반원전 정책 탓이 아니라 폭염에 따른 냉각수 제약 때문이며, 여름철 원전 발전량은 예년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여름 유럽은 기록적인 폭염을 겪었다. EU의 기후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는 이번 여름이 서유럽 관측 사상 가장 더웠다고 밝혔다. 최근 폭염은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등 연구진은 지난해 여름 유럽 854개 도시에서 폭염으로 2만4404명이 숨졌으며, 이 가운데 약 68%가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프랑스 공중보건청은 작년 초여름 폭염으로 최소 480명의 초과 사망(통상적으로 예상되는 수를 넘어선 사망)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했다.
폭염 피해의 배경에는 낮은 냉방 접근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은 EU 전체가 약 20%, 독일이 3~6%, 영국이 약 4%에 각각 머문다. 약 86%인 한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낮은 보급의 주된 이유로는 과거의 온화한 기후와 오래된 건물 구조, 높은 전기요금과 설치 비용이 꼽힌다. 여기에 정책적 요인도 더해졌다. 스페인은 2022년 8월 에너지 절약을 이유로 공공·상업건물의 냉방 온도를 27도 밑으로 낮추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냉방 확대는 전력 수요를 늘리는 만큼 단열과 차양, 취약계층 지원, 전력망 확충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주목되는 대목은 이러한 사태의 영향으로 EU가 스스로 지속가능성 규제의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집행위는 지난해 2월26일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과 공급망실사지침(CSDDD),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의 복잡성을 줄이는 옴니버스 간소화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연 60억유로 이상의 행정 부담 완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CSRD를 통해 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를 의무 공개하도록 했으며, CSDDD로 기업이 노동·환경과 관련해 실사 책임을 지도록 했다. EU 이사회는 지난 2월24일 이들 법안을 최종 승인했다. 공시 의무 적용 범위를 종업원 1000명 초과 기업 등으로 전보다 축소했는데, EU는 개정의 공식 이유로 ‘기업 경쟁력 확보’를 들었다. 지속가능성 정책 자체의 실패로 보기는 어렵지만, 제도의 부담이 경쟁력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EU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로 평가된다.
‘녹색전환’을 비용만으로 볼 수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폭염 자체가 기후변화의 결과인 만큼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IEA는 작년 EU가 화석연료 수입을 줄여 약 514억유로를 절감한 것으로 추정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에너지 안보에 기여했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쟁점은 녹색전환 여부가 아니라 그 속도와 설계가 국민의 생활비와 산업 경쟁력, 기후 적응능력을 충분히 고려했는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의 최근 상황은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탄소 감축이라는 목표가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국민의 냉방 접근성과 생활비를 함께 끌어안았는가 하는 것이다. 프랑스 시위와 재정위기는 환경정책의 직접적인 산물은 아니다. 그러나 높은 에너지 가격과 산업 이탈, 폭염 적응에 따른 공백은 녹색전환의 설계와 시행을 재점검할 근거로 꼽힌다. EU가 규제를 스스로 손질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탄소 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산업 경쟁력, 국민 부담을 함께 적절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속가능성 정책이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목표의 당위만큼 이행의 균형이 중요하다. 유럽이 치르고 있는 비용은 그 균형이 무너졌을 때 무엇이 뒤따르는지 보여준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 협력연구위원, 한국거래소(KRX)-뉴욕증권거래소(NYSE) 공동협력협의회 공동 대표, 거래소 공익대표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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