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0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維新)을 선포했다. 기존의 국회는 해산되고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도 활동이 금지됐다. 이후 제정된 유신 헌법이 우리 현대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악법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국회의원 정원의 3분의 1(일명 ‘유신정우회’ 의원)을 국민 직선이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단체에 의한 간접 선거로 뽑도록 한 점이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원 후보자들을 추천할 권한은 대통령 1인한테 있었다. 한마디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게 입법부 구성원 3분의 1의 지명권을 부여한 셈이다. 야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일명 ‘기울어진 운동장’을 제도화한 셈이다.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 출범 후 유신정우회는 사라졌다. 그런데 기존 전국구(全國區) 의원 제도를 교묘하게 비트는 방식으로 옛 유정회와 같은 효과를 내는 편법이 동원됐다. 총선 결과 원내 1당이 된 정당에 전국구 의원 정원의 3분의 2를 몰아준 것이다.
당시 5공 정권은 ‘정부의 안정적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들었으나, 속내는 ‘어떠한 경우에도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 출현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임이 명백했다. “힘있는 여당 의원을 뽑아야 지역 개발이 잘 된다”는 단순한 논리로 유권자들을 구워삶던 시대는 이제 끝났음을 군사 정권도 인정한 결과라고 하겠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여소야대 국회의 존재는 치명적이다. 2016년 20대 총선의 결과 탄생한 여소야대 국회는 결국 탄핵소추로 당시 박근혜정부를 무너뜨렸다. 2024년 22대 총선도 비슷했다. 선거에서 참패한 여당 국민의힘이 소수당으로 전락한 순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윤석열은 12·3 비상계엄 선포라는 황당한 카드까지 꺼내 들며 판세를 뒤집으려 했으나 되레 정권 임기만 단축하고 말았다. 우리 군의 최정예 부대를 동원해 국회를 습격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정치인들을 체포하는 엉뚱한 꿈이나 꿀 시간에 차라리 ‘야당 의원들을 포섭해 여대야소 국회로 개편할 순 없을까’ 고민하는 편이 나았을 뻔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기자회견 도중 인위적 정계 개편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런 상상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고 아무 의미도 없다”고 일축했다. 지금은 여대야소 정국으로 이 대통령이 속한 민주당은 원내 299석 중 과반인 161석을 차지하고 있다. 얼핏 무슨 일이든 다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재적의원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한 헌법 개정 등은 불가능하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 대통령이 야당 흡수나 야당 의원 영입 등을 통해 여당 몸집을 불리는 정계 개편을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1990년 민정·민주·공화 3당 합당을 통한 거대 여당 탄생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에 이 대통령은 “저쪽(야권) 국회의원 몇 명 빼 오는 것은 ‘쌍팔(88)년도’ 정계 개편”이라며 “그런다고 해서 오히려 반감만 늘어난다”고 손사래를 쳤다. 1988년 당시 정국을 주도했던 이른바 ‘1노3김’(노태우·김대중·김영삼·김종필)이 살아 있다면 지금의 이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할 것인지 못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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