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국감 출석한 5대 은행장, AI 해킹·정보 유출에 일제히 고개 숙여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정부의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졸속 도입이 집중 난타당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레버리지 ETF 상장 일정을 맞추기 위해 심사를 빨리 진행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최근 코스피 지수가 급락한 가운데 미국발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의 돈줄이 마르고 있는 징후가 연이어 자산시장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레버리지 ETF 난타한 국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19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졸속 심사를 꼬집자 “4월 중순에 금융위원회에서 상장 일정을 발표했고, 그 일정을 맞추기 위해 심사를 빨리 한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심사 신청도 하기 전에 상장부터 사실상 결정됐고, 3단계로 진행되는 절차를 2단계로 줄인 병행 심사를 사상 처음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ETF 평균 상장 기간이 62일, 대표 지수형도 43일인데 이번 ‘단종레’는 29일로 짧다”며 “더 위험한 상품을 더 짧은 기간에 심사했다”고 비판했다. 금감원이 한국거래소 상장 예비심사가 끝나기 전에 심사에 나선 점도 졸속 절차의 근거로 지적됐다. 다만 금감원은 “거래소 예비심사는 금감원 심사 착수를 위한 필수적 사전절차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앞서 이 원장은 지난 6월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품 출시와 관련해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나 개인적으로 반성하고 후회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를 두고도 질의가 쏟아졌다.
같은 당 김재섭 의원이 “왜 드러누워 막지 않았나”며 국민에게 사죄할 생각이 없느냐고 지적하자 이 원장은 “정책이 이미 발표돼 확정된 상태였다”면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해당 발언을 한 이유에 대해선 “투자자들의 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라 경보를 울리기 위해 메시지를 세게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스피 급락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때문 아니냐는 질문에는 “일정 부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인정했다.
◆도입 과정에 외압은 없었다 재차 강조
다만 이 원장은 상품 도입 과정에서 청와대 외압은 없었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의 핵심 역할을 한 사람이 누구냐’는 같은 당 박성훈 의원 질의에 “정부·당국 협의로 결정된 사안이었지, 특정인이 했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드러누워 막았어야 했다’는 자신의 발언 역시 이재명 대통령과 김용범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 원장 아들이 미래에셋자산운용에 근무하는 것을 두고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원장은 “시행세칙과 관련해 사적 이해관계자도 아니고 직무 관련성도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이 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지적도 나왔다. 같은 당 신동욱 의원은 앞서 이 대통령이 레버리지 ETF 도입을 ‘누군가는 결정을 했겠죠’라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누군가’가 대통령 본인이기 때문에 아무도 말을 못 하는 것”이라며 이 원장을 향해 “사퇴할 생각 없나”라고 물었다. 이 원장은 “인사권자가 정할 사안”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5대 은행장, 해킹 피해에 일제히 고개 숙여
이날 국감에는 최근 AI 해킹과 관련해 이환주 KB국민·정상혁 신한·이호성 하나·정진완 우리·강태영 NH농협은행장이 일반 증인으로 나왔다. 5대 은행장이 모두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것은 2022년 10월11일 국감 이후 4년 만이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해킹 사고로 굉장히 많은 수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는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의 지적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피해는 1등인데 보안 예산 규모는 꼴찌’라는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의 비판에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미흡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며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정보보호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환주 국민은행장은 “신뢰를 기본으로 해야 할 금융기관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며 “고객과 국민 여러분께 염려를 끼쳐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재발 방지를 위해 예산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인공지능(AI) 해킹에 AI 보안 시스템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호성 하나은행장은 “고객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하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더욱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확충해 AI 시스템을 갖추고, AI 해킹에 대비해 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 보상과 관련, “수수료 면제 등은 이미 했고, 금융안심보험 등을 통해 2차 피해를 예방하겠다”며 “현재까지는 (정보 유출과 관련한) 피해가 없지만, 피해가 발생한다면 전체를 반드시 배상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해킹 공격을 당했지만, 정보 유출은 없었던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 행장들도 더 철저한 보안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강조했다.
연말 임기 종료를 앞둔 5대 은행장을 상대로 지배구조 개선 주문도 이어졌다. 민주당 박홍배 의원은 금감원의 지배구조 특별점검 보고서를 언급하며 “한마디로 셀프연임, 셀프보상, 이너서클, 참호구축, 그들만의 리그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이강일 의원이 ‘은행장 연임에 가장 중요한 게 실적이라 생각하는 분 있나’라고 묻자 5대 은행장 중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홀로 손을 들었다. 이어 ‘내부 관리인가’라고 하자 이호성 하나·정진완 우리은행장이 나란히 손을 들었다.
이 의원은 “시중에서는 (금융지주) 회장 의중이 가장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며 “행장 인사는 회장 입김이 아니라 실적이나 내부통제 같은 능력을 종합적으로 점검해서 이사회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상혁 행장은 ‘고객 정보조차 지키지 못한 행장은 연임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의 추궁에 “지금 당장은 제가 그 부분은 생각을 안 해봤다”고 답했다. 정 행장은 “피해 구제라든지 재발 방지 대책에 전념하고 있다”며 “지금은 그 부분이 굉장히 급하다”고 덧붙였다.
◆AI 투자 우려에 자산시장 ‘근심’
레버리지 ETF의 여진이 가시지 않은 자산시장에는 다시 먹구름이 드리웠다. 미국에서 AI 기업의 채권 금리는 두 자릿수로 치솟았고 데이터센터 공사는 곳곳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AI 개발업체 앤트로픽은 구글 칩 구매 자금 600억달러(약 80조원)를 조달하면서 후순위채 180억달러에 10%가 넘는 금리를 제시했다. 넉 달 전 자체 발행 때 금리(8.5%)보다 높다.
데이터센터 임대·운영업체인 네오클라우드 업체들의 사정은 더 나쁘다. 엔비디아가 밀어준 코어위브는 신규 조달 금리가 15% 수준까지 치솟았고, 주가는 한 주 새 24% 떨어졌다. 블룸버그는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 투자자들이 AI 스타트업의 자금줄을 조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올해 발행된 데이터센터 관련 채권의 절반 가까이가 투기등급이었다.
공사 현장도 삐걱댄다. FT는 올해 대형 데이터센터 건설 47건이 지연·철회·불허됐다고 보도했다. 전력·용수 부담을 이유로 건설을 막으려 나선 지역사회도 1000곳을 넘는다고 덧붙였다. 오러클의 뉴멕시코 사업은 소송으로 7개월 늦어져 관련 대출 180억달러가 액면가의 90% 수준에서 거래된다. JP모건 등은 오러클 데이터센터 대출 380억달러를 반년 넘게 팔지 못해 할인 매각을 검토 중이다.
이는 최근 시장에 번지는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우려를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제임스 매킨토시 증시 칼럼니스트는 19세기 철도 거품과 닷컴 열풍 때 과잉 투자와 비교하며 “지금의 AI 투자 붐이 그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주가가 지난주 11% 떨어지는 동안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그 두 배 가까이 빠졌다며 “AI 투자가 계획대로 진행되더라도 충분한 이익을 거두지 못하면 막대한 투자금이 낭비될 수 있고, 투자가 위축되면 반도체 등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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