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 보험금 2년 새 32% 급증
태풍 줄고 집중호우·폭염 피해 늘어
기온·강수량 기준 충족 땐 정액 지급
별도 손해 입증 없이 신속 보상 가능
전통시장 상인 대상 날씨보험 등장
130원 보험료 기후질환 미니보험도
제주는 일용직 폭염 휴업보험 도입
전문가 “데이터 공유·예방 연계 필수”
폭염과 집중호우에 따른 자연재해 피해가 매년 늘어나면서 이상기후 위험을 보장하는 ‘기후보험’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 태풍 중심이던 재해 양상이 극한 호우와 폭염으로 옮겨가자 보험업계와 정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기후위험을 반영한 신상품 개발과 안전망 확충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실제 피해액을 일일이 산정하던 실손 보상 방식에서 벗어나, 기온이나 강수량 같은 기상 지표가 특정 기준에 도달하면 즉시 보험금을 지급하는 ‘지수형 기후보험’으로 보장 체계가 진화하는 추세다.
◆손해 입증 없는 ‘지수형’·초소액 상품 등장
18일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풍수해·지진재해보험과 농작물재해보험, 가축재해보험 등 자연재해 보험 3종의 지난해 지급 보험금은 1조5701억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1조1891억원, 2024년 1조3476억원에서 2년 만에 32% 늘었다. 농작물재해보험이 1조3357억원으로 전년보다 30.8% 늘며 증가세를 주도했다. 풍수해보험 사고 중 태풍 비중은 2023년 9.8%에서 지난해 0.3%로 줄어든 반면 호우·홍수는 14.9%에서 20.4%로 늘었고, 가축재해보험 내 폭염 사고 비중은 66.9%에서 80.3%로 치솟았다.
기후변화가 주요 위험 변수로 떠오르자 민간 보험사들은 복잡한 손해 산정 절차를 없앤 지수형 날씨보험과 생활밀착형 기후질환 상품을 속속 선보이며 보장 공백 해소에 나서고 있다. KB손해보험의 ‘KB 전통시장 날씨피해 보상보험’이 대표적이다.
이 상품은 기상청 데이터와 매출 빅데이터를 결합해 강수량·기온 등 기상지수가 기준치에 도달하면 보험금을 정액 지급하는 업계 최초의 지수형 날씨보험이다. 일 누적 강수량(10~80mm 이상) 조건 충족 시 최대 5만원, 최고기온(33~38도 이상)은 최대 1만5000원, 최저기온(-8~-13도 이하)은 최대 3만5000원을 지급한다. 상인회나 지자체가 점포 3분의 1 이상을 묶어 가입하는 형태의 단체보험이다.
특히 별도 손해 증빙 없이 신속히 보상받는 혁신성을 인정받아 손해보험협회로부터 업계 최장인 1년6개월 배타적 사용권을 얻었다.
◆지자체·당국도 기후 취약계층 안전망 확충
기후질환을 겨냥한 미니보험과 특약도 다양해졌다. 동양생명의 ‘우리WON하는mini기후질환보장보험’은 온열·한랭질환 진단 시 10만원을 지급한다. 만 20~70세가 가입할 수 있는 1년 만기 일시납 상품으로 보험료는 40세 기준 남성 130원, 여성 150원이다. KB손보는 여행보험에 온열·한랭질환 특약을 추가했고, NH농협손해보험은 ‘폭염재해보험추가특약’으로 가축 피해를 보상 중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소액으로 간편하게 대비하려는 소비자 수요와 맞물려 관련 특약이나 미니보험 출시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와 지자체도 기후 취약계층 보호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보험업권이 출연한 300억원 규모의 상생기금으로 전북·제주 등 7개 지자체와 협약을 맺고 소상공인 풍수해보험료 등을 무상 지원한다. 제주도는 지난 7월 말 손보협회 상생기금 9억원과 도비 1억원을 투입해 전국 최초의 지수형 기후보험인 건설 일용직 ‘폭염 휴업보험’을 도입했다. 공공 발주 공사현장의 일용직 노동자 약 5000명이 대상이고, 오후 1시 이전 폭염경보 발령으로 작업이 중단되면 시간당 1만7210원씩 최대 4시간(6만8840원)의 소득 감소분을 보전한다. 경기도는 전 도민이 자동 가입돼 온열·한랭질환 진단비와 취약계층 통원비 등을 보장받는 ‘경기기후보험’을 운영 중이다.
정부는 내년에 50억원을 투입해 전국 공공 건설근로자 1만3000명에게 폭염 작업 중단 시 평균 일당의 절반인 8만원을 지급하는 시범사업도 추진한다. 정부·지자체가 보험료의 55~92%를 지원하는 풍수해보험과 전국 228개 지자체의 시민안전보험도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공백 메우려면 데이터 공유·예방 연계 필수”
지수형·정책성 기후보험이 확산하는 배경에는 기존 실손형 보험의 보장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보험연구원의 ‘재난적 기후현상과 지수형 기후보험’ 보고서 분석 결과 지난해 재난적 기후현상에 따른 글로벌 경제적 손실 중 보험이 담보한 비중은 49%에 그쳤다. 작업 중단이나 유동인구 감소 같은 간접 손실은 실손 체계로 입증하기 까다롭고, 국내 풍수해보험도 올해 5월 말 기준 소상공인 상가·공장 가입률이 4.6%에 머무는 등 ‘보장 공백’이 크다. 이에 손보협회와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최근 협약을 맺고 기상청 데이터와 보험사 시스템을 연동해 지수형 기후보험의 보상 여부를 자동 판정하는 ‘기후보험 종합 포털’ 구축에 착수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기후보험 안착을 위해 민관 데이터 공유와 단계적 위험 분담, 사전 예방과 보험료의 연계가 필수적이라고 제언한다. 권순일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재난적 기후현상과 지수형 기후보험’ 보고서에서 “지수형 보험이 실손형 기후보험의 보완 수단으로 정착하려면 공공데이터 개방 확대와 위성·사물인터넷(IoT) 센서 기반의 정교한 위험 측정 인프라 구축이 지속돼야 한다”고 짚었다.
사후 복구 중심의 재해 대응에서 벗어나 사전 예방 효과를 보험료에 반영하고 민관이 위험을 분담하는 체계도 요구된다. 남경훈 한국화재보험협회 박사는 이달 13일 열린 ‘기후위기 시대, 자연재해 위험관리와 기후보험’ 세미나에서 “보전되지 않은 자연재해 손실은 정부 복구비(83%)와 가계·기업 자부담(17%)으로 전가된다”며 “위험을 사전에 파악해 예방하는 방식이 비용 대비 효과적인 만큼 예방 투자 효과를 보험료 할인 등에 반영하는 ‘예방의 가격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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