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현장에서 이뤄지는 상담은 어디까지가 ‘심리상담’일까. 정부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심리상담 사업에 임상심리사뿐 아니라 정신건강 분야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등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심리상담의 범위와 수행 자격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직역 구분 없이 ‘정신건강전문요원’이 공공영역에서 이미 수행 중인 상담 업무의 근거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임상심리학계에서는 직역별 교육과 수련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조치라며 전문 수련이 필요한 심리상담이라는 영역을 다른 직역에도 개방하는 법제화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반발한다. 반면 정신건강사회복지학계에서는 각 직역∙학문마다 개별적인 전문성을 갖고 심리상담을 수행하고 있다고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15일 보건복지부와 법제처 등에 따르면 복지부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오는 19일까지 입법 예고하고 있다.
개정안은 정신건강전문요원의 공통업무에 ‘국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시행하는 심리상담 및 재난심리지원 사업의 수행’을 추가하는 게 핵심이다. 대상은 정신건강임상심리사·정신건강간호사·정신건강사회복지사·정신건강작업치료사 등 4개 직역이다.
이번 개정안은 민간 심리상담이 아닌 공공사업의 업무 범위를 명시하는 것이다. 일반 사회복지사나 간호사 자격이 아니라 정신건강사회복지사와 정신건강간호사 등의 자격이 있어야 가능하다. 사회복지사 1급 자격 소지자나 간호사 면허를 가진 자 등이 정신건강전문요원 수련기관에서 별도로 1년의 수련을 마쳐야 부여되는 국가전문자격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정신건강전문요원은 총 2만1751명이다. 이 중 정신건강간호사가 1만431명, 정신건강사회복지사 7141명, 정신건강임상심리사 4040명, 정신건강작업치료사 139명이다.
◆복지부 “기존 업무 근거 마련”…심리학계 “사업 오류 시행령 개정 명분 둔갑”
복지부는 이번 개정안의 취지가 기존 업무의 명문화라고 강조한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지진 등 여러 재난이 겹치며 트라우마 심리 지원의 필요성이 높아졌고,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전문요원들이 관련 상담과 심리지원을 해왔다는 설명이다. 특히 지난 2024년 시작한 ‘심리상담 바우처 사업’에도 직역을 구분하지 않고 핵심 인력으로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신건강간호사나 정신건강사회복지사의 심리상담으로 표현하기보다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수행하는 상담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반면 임상심리학계는 당초 바우처 사업의 시작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반박한다. 이상일 한국임상심리학회 홍보이사는 사업 도입 당시에도 정신건강전문요원 1급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역별 교육·수련의 차이를 따지지 않고 심리상담 제공인력에 포함하고, 심리상담 관련 센터를 개설할 수 있게 하는 것에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이 홍보이사는 “전 국민의 마음 건강에 국가가 사업 투자에 나서는 걸 적극 환영했었다”면서도 “다만 정신건강전문요원이라고 해서 센터 개설까지 가능한 1급 유형을 설정하는 건 반대했다. 충분한 수련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바우처 사업과 관련한 복지부 입장은 다르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시 사업 시작 전 4개 직역이 논의해 직역 구분 없이 정신건강전문요원의 참여를 허용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복지부는 또 정신건강전문요원이 공공 상담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별도의 교육도 받는다고 강조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2급 자격을 위해 1000시간을 수련하고, 1급이 되기 위해서는 3년(3000시간)을 더 투자해야 한다”며 “국가가 하는 심리상담 바우처 사업과 재난 트라우마 심리지원 사업은 지침과 상담 표준 매뉴얼도 있어 이에 따른 추가 교육도 받는다. 당장 수련 과정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제안한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상담 관련 교육을 받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임상심리학회는 이와 관련 “복지부 자신의 법정 수련기준을 보더라도 정신건강간호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건강작업치료사의 수련과정에는 전문 심리상담의 핵심 전제인 ‘심층 심리평가 및 심리치료’ 실습과목이 단 1시간도 배정되어 있지 않다”며 “석사 이상 고등교육과 수천 시간의 혹독한 평가·치료 수련을 거치는 임상심리사와 달리, 평가와 심리치료를 단 1시간도 수련 받지 않은 타 직역에 ‘1년 수련’이라는 껍데기 명칭만 앞세워 상담 권한을 일괄 부여하는 것은 명백한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복지부가 언급한 심리상담 바우처 사업은 정부가 사업 초기 급격한 공급 확대를 핑계로 전문성 검증 없이 타 직역 인력을 하위 지침 수준에서 무리하게 끌어들여 이미 학계와 현장의 심각한 우려와 질타를 받아온 사업이다. 정책 실패와 자격 왜곡의 대표적 사례인 바우처 지침을 이제는 상위 법령인 시행령에 대못을 박아 영구화하려는 복지부의 행태는 본말이 전도된 적반하장”이라고 했다.
◆심리학계 “정신건강상담과 심리상담 달라”…사회복지학계 “심리학만 심리상담하는 국가 없다”
이번 논쟁의 중심에는 ‘심리상담’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과연 규정할 수 있는가’에 있다.
임상심리학계는 우선 ‘정신건강 상담’과 ‘심리상담’을 엄격히 구분한다. 이상일 임상심리학회 홍보이사는 “정신건강상담이 선별검사와 심리사회적 사정을 통해 지원 욕구를 파악하고 적절한 자원으로 연결하는 ‘사례관리적 관문’ 역할을 수행한다면, 심리상담은 정밀 심리평가를 통해 정신병리와 성격 구조를 다각도로 규명한 뒤 치료적 기법을 통해 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전문 치료 영역’이라는 점에서 두 개념은 명확히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이유로 임상심리계는 이번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공통 업무화가 불가피하다면 ‘심리상담’이 아닌 ‘정신건강상담’이라는 별도 명칭을 사용하고 그 범위를 ‘정신건강문제의 예방·조기발견 및 정신건강증진을 위한 초기 면담, 동기강화, 정신건강정보 제공, 위기상황의 초기대응, 서비스 안내·연계 및 사례관리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상담’으로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리평가·정신병리 감별·근거기반 치료로 이어지는 훈련 체계 위에서 이루어지는 심리상담의 경우 그 훈련 체계를 갖추지 못한 인력에게 동일한 명칭 아래 수행이 허용될 경우 서비스 수혜자인 국민에게 그 위험이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 임상심리계의 근거다.
하지만 이런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4개 직역 모두가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임상심리학계를 제외한 타 직역의 반대로 개정안에는 공통업무화의 명칭으로 ‘심리상담’이 쓰이게 됐다. 임상심리학 측을 제외한 3개 직역에서 심리상담을 공통업무에 포함하되, 전문적인 심리상담 업무를 정신건강임상심리사의 개별 업무에 포함하자고 제안했으나, 이 역시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직역에서는 저마다 전문성을 갖고 심리상담에 임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학화∙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는 본지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 적극 찬성한다면서 “해외에서는 심리상담에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다양한 학문 분야가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정신건강전문가 중에서는 임상사회복지사(LCSW)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대학교육과정에서 심리상담에 필요한 교과목을 배우고, 국가고시를 통해 사회복지사 1급 자격을 소지한 사람이 최소 1000시간의 수련과정을 거쳐 취득한 자격이다. 자격 취득 후에도 근거기반 심리상담에 필요한 교육과 훈련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현장에서 심리상담을 수행하는 주요 인력”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미국의 LCSW의 경우 사회복지학 석사학위 취득 후 임상적 진단·사정, 치료 및 심리치료 경험에 대해 수천 시간의 수련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건강사회복지계는 이어 “이제는 자신(임상심리학계)을 제외한 타 직역의 정신건강전문요원을 비전문인력이라고 하면서 반대하고 있다. 타 직역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근거가 없으며, 전문직으로서 타 전문직에 대한 보통의 태도를 넘어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정신건강전문요원의 ‘공통업무’, ‘개별업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판단된다”며 “자격 취득은 수련기준이나 승급기준에 맞게 이루어지고 있다.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수련과정이 다른 직역의 수련과정, 정신건강전문요원이나 심리상담 역량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신건강사회복지학회에 속한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심리학만 심리상담을 하는 나라는 없다”며 “각 직역과 학문마다 용어가 다르고, 교육 과정이 다를 뿐이다. 이를 두고 전문성이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사회복지학에서도 정신건강론, 인간행동과사회환경, 사회복지실천론·실천기술론, 정신건강복지론 등을 통해 상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익힌다”고 주장했다.
◆심리상담 개념·역량∙기준 이견…“사회적 논의 필요”
이같은 논란의 배경에는 심리상담 전반의 자격과 업무 범위를 규율할 법적 기준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신건강전문요원이라는 국가자격과 직역별 업무 규정은 있지만, 심리상담을 누가 어떤 교육과 수련을 거쳐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사업법’, 간호사는 ‘간호법’에 따라 자격 기준을 규정하고 있지만, ‘임상심리전문가’는 학회 자격으로 국가가 아닌 민간자격증에 머물러있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심리상담체계를 마련한다는 취지로 ‘마음건강심리사 및 마음건강상담사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의료계와 사회복지학계 등 다른 직역의 반대로 인해 여전히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전진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심리상담의 개념에 대한 합의 부족을 지적했다. 그는 “관련 연구를 진행했던 2022년에도 심리상담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부족했고, 지금도 각 분야가 필요한 전문성과 역량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직역만 심리상담을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과 다른 직역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계속 맞서고 있는 셈이다.
결국 향후 논의에서는 정신건강전문요원의 공통업무와 각 직역의 수련∙교육 체계를 재정비하고, 심리상담의 범위와 필수 수련, 역량 확인 기준 등을 구체화하는 게 과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임상심리학계는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한 공통업무를 명시하기에 앞서 이를 뒷받침할 교육과 수련 체계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상심리학계는 16일 청와대에서 개정안 규탄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같은 날 복지부 세종청사와 부산, 대구, 광주 등에서도 릴레이 집회도 열릴 예정이다. 아울러 ‘비전문가 심리상담 피해 신고 및 모니터링 창구’를 개설하고, 오는 19일 입법예고 종료 즉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및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에 돌입할 방침이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 개정안에 따라 수련 체계 보완도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시행령 개정에 대해서도 현재 입법예고 기간인 만큼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결정될 사안이라고 했다.
직역의 경계보다 국민 정신건강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장인 김용진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논의의 중심을 직역 간 갈등에서 ‘국민이 어떻게 더 안전하고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공공의 과제로 옮겨야 한다”며 “각자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것, 그것이 국민의 정신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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