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시간 조절하며 돼지고기 굽는 법 익혀
고기 외식 문화 달라져…소스·부위도 다양
190도, 200도, 210도 그리고 220도….
고기 불판 온도 측정 기기의 숫자가 불과 몇 초 만에 빠르게 올라갔다. 불을 켜자마자 불판 표면 온도는 180도를 찍더니 190도를 넘어섰고 곧바로 220도까지 치솟았다. 측정 기기로 불판 온도를 확인하고 화력을 직접 조절하니 평소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울 때와는 느낌부터 달랐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음식점에서 14일 선진 식육문화연구원이 진행한 ‘그릴링 마이스터(Grilling Meister·구이 명장)’ 시험 현장. 참가자들의 시험을 지켜본 뒤 직접 불판 앞에 섰다. 고깃집 의자에 앉아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던 때와 달리 앞치마와 장갑을 착용하고 가위와 집게를 양손에 나눠 잡았다.
‘그릴링 마이스터’는 선진 식육문화연구원이 운영하는 등록 민간자격이다. 돼지고기의 생산과 품질 등 이론을 배우고 조리 실습과 평가를 거쳐 고기를 맛있게 굽는 능력을 기르는 데 목적이 있다. 2021년부터 시험이 열려 지금까지 약 400명이 자격을 취득했다.
냉장 상태의 고기를 올리면 불판과 맞닿는 부분의 온도가 빠르게 떨어질 수 있다는 차호명 식품솔루션팀장 설명에 따라 불판부터 충분히 달궜다.
차 팀장은 ‘마이야르 반응’이 잘 일어나는 온도 구간을 설명했다. 마이야르 반응은 아미노산과 당이 열에 의해 반응해 음식 표면을 갈색으로 만들고 특유의 풍미를 형성하는 현상이다. 불판을 210도 정도로 맞추면 냉장육을 올렸을 때 접촉면 온도가 180도 안팎까지 떨어지면서 고기를 익히기에 적합하다고 그는 말했다. 돼지고기의 발연점은 189도다.
삼겹살과 목살을 한 덩어리씩 키친타월로 닦아 물기를 제거한 뒤 삼겹살부터 불판에 올렸다. 정해진 시간 동안 고기를 건드리지 않고 기다리는 일부터 낯설었다. 평소라면 겉면이 익었는지 궁금해 고기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겠지만, 기다리는 2분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불판과 닿은 면에서 투명한 기름이 한두 방울씩 흘러나온 후 고기를 뒤집자 갈색으로 고르게 익은 표면이 눈에 띄었다.
다시 2분을 기다려 반대쪽을 익힌 뒤 가위로 고기를 잘랐다. 힘을 주지 않아도 비교적 쉽게 잘렸다. 이후 옆면을 세워 1분가량 더 익혔다. 평소 서너 번씩 뒤집으며 감각에 의존하던 방식과 달리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익히면서 고기의 색과 상태를 살폈다.
목살은 지방이 붙은 부분을 따로 잘라 구웠다. 현장에서는 이 부위를 ‘꼬들목심’이라고 불렀다. 따로 구운 부분을 먹자 바삭한 식감 뒤로 고소한 기름 맛이 입안에 퍼졌다. 익숙한 삼겹살과 목살도 부위를 나눠 굽는 방식에 따라 식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차 팀장은 조리의 핵심으로 온도 관리를 꼽았다. 가정에서 프라이팬을 사용할 때는 삼중 구조의 팬을 활용하고 중약불에서 연기가 나지 않도록 굽는 방법을 권했다.
이날 실기시험에 응시한 8명은 지난 1~4일 온라인 필기시험을 통과한 이들로 대부분 고깃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였다.
충북 음성에서 3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강재명(27)씨는 오전 1시에 영업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피곤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피곤하지 않다”며 배우는 입장으로 현장에 왔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차 팀장은 강씨가 구운 삼겹살의 지방 익힘이 적절해 참가자 중에서도 잘 구운 편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불판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아 고기 표면의 색이 고르지 않게 나온 점은 아쉽다고 언급했다.
현대백화점 정육 부문 바이어라고 소개한 참가자는 “한 번도 이렇게 고기를 구워본 적이 없어 잘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웃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맛있게 드실 수 있을지 나름대로 해석해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기를 직접 구워 먹는 문화는 조리도구의 변화와 맞물려 확산했다.
1970년대 후반 삼겹살구이 전문점이 등장했고, 1980년대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널리 보급되면서 가정과 식당,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가 한결 편리해졌다. 이후 삼겹살은 직장 회식과 가족 외식의 익숙한 메뉴로 자리 잡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 2026’ 자료에 따르면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2023년 29.6㎏, 2024년 30.1㎏, 2025년 29.2㎏으로 나타났다. 2025년 수치는 추정치다. 닭고기 소비량은 같은 기간 15.7㎏, 14.9㎏, 15.6㎏으로 돼지고기보다 적었다.
돼지고기가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육류인 만큼, 외식업계에서도 고기 조리 방식에 관한 소비자 관심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다양한 부위와 두께를 내세우고, 직원이 직접 고기를 구워주는 서비스도 자리 잡았다. 일부 업체는 고기와 함께 먹기 좋은 채소나 소스를 제안하는 ‘페어링’ 마케팅도 펼친다.
고기를 곁들이는 음식과 소스의 선택지도 달라지고 있다. 차 팀장은 “(이제) 고추냉이는 지나갔다고 본다”며 “최근에는 젓갈 등을 활용한 소스가 인기가 많다”고 짚었다. 이어 “우엉이나 더덕 등도 고기와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 팀장은 과거와 달라진 구이 문화를 떠올리며 소비자의 변화에도 주목했다. 그는 “과거에는 가족들과 모여 신문지를 깔아놓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고기를 구워 먹던 일이 많았다”며 “이제는 소비자들이 원육 두께를 선택하는 등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들의 다양한 선택 기준과 기호에 대응하는 산업 기반도 점점 갖춰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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