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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유산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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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관광지를 오래 지켜보면서 최근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여행지 선택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에펠탑이나 빅벤 등 랜드마크가 관광객을 불러들였다면, 이제는 그 도시에서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는지가 여행 만족도를 좌우한다.

최근 글로벌 관광 트렌드에서도 여행지의 유명세보다 새롭고 의미 있는 경험을 추구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익스피디아의 ‘2025 여행 트렌드’ 조사에서 응답자 63%가 다음 여행에서 ‘덜 알려진 여행지’를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마스터카드의 보고서 역시 여행객들이 단순히 어디를 갈지보다 음식과 자연, 웰니스 등 ‘의미 있는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백현 롯데관광개발 대표이사
백현 롯데관광개발 대표이사

관광객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있느냐’에서 ‘무엇을 경험하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문화유산도 마찬가지다. ‘세계유산’ 타이틀은 도시의 역사성과 문화를 알리는 자산이지만, 그 명칭만으로 관광객이 다시 찾는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종묘와 세운지구를 둘러싼 논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종묘는 600년 조선왕조 역사를 대표하는 역사문화자산으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그 역사적 가치와 경관은 무엇보다 우선해 보존돼야 한다. 하지만 관광의 관점에서는 종묘를 주변의 역사·문화·자연 자산과 어떻게 연결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서울 도심에는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 청계천, 남산 등 서로 다른 시대와 성격의 공간이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 공간들이 하나의 관광 경험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운지구 재정비가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시는 세운상가군의 공원화와 민간 부지 내 개방형 녹지 조성 등을 통해 13.6만㎡ 규모의 녹지를 확보해 북악산에서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를 지나 남산으로 이어지는 도심 녹지축 연결을 추진하고 있다. 이 녹지축이 완성되면 관광객의 서울 경험도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궁궐의 숲을 걸어 나온 관광객이 종묘의 고요한 공간을 지나, 녹지와 문화·상업공간이 결합된 세운지구를 거쳐 남산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궁궐과 제례 공간, 청계천과 현대적 도심, 남산의 자연경관까지 한 번의 보행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새로운 랜드마크 하나를 추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최근 관광 경쟁력이 높은 곳들의 공통점도 특정 명소에 관광객을 집중시키기보다 역사와 자연, 문화와 일상을 연결해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든다는 데 있다. 서울은 이미 궁궐에 산과 하천, 골목과 시장, 현대적 콘텐츠까지 충분한 관광자산을 갖고 있다. 다음 과제는 흩어져 있는 자산을 연결해 서울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만드는 것이다. 창덕궁·창경궁에서 종묘와 남산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은 서울의 역사와 자연, 현대 도시를 걸어서 경험하는 하나의 거대한 관광 콘텐츠가 될 것이다.

물론 도시 재정비 과정에서 종묘의 가치와 경관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논의와 기준은 필요하다. 그러나 문화유산 보호 명분으로 주변 공간의 변화 가능성까지 닫아놓는 것이 관광 경쟁력 측면에서 최선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 도시관광의 경쟁력은 랜드마크를 얼마나 보유했느냐보다 도시 자산을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와 공간으로 연결하느냐에 있다. 종묘와 세운지구를 둘러싼 논의를 세계유산이냐, 개발이냐의 선택으로 봐선 안 되는 이유다. 역사문화유산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관광객이 더 깊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인가. 이것이 서울의 관광 경쟁력을 결정지을 질문이다.

 

백현 롯데관광개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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