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짜장면을 맛보러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았다면 발걸음을 조금 더 넓혀 볼 만하다. 수도권 전철 1호선 인천역에서 걸어서 닿는 거리에 한국식 짜장면이 처음 탄생한 중국식 벽돌 건물과 일본 은행이 세운 근대 석조 건축물, 국내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 한데 모여 있다. 붉은 패루 너머 짜장면 한 그릇이 탄생한 배경을 살피고 돌계단 하나를 사이에 둔 일본풍 거리의 형성 과정을 따라가면 반나절 도보 여행의 밀도가 한층 깊어진다.
14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인천 제물포구 선린동의 옛 공화춘 건물은 개항 이후 인천항으로 들어온 산둥성 출신 화교가 세운 중화요릿집이다. 근대 건축과 생활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6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현재는 짜장면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일대에는 1883년 일본 조계와 1884년 청국 조계가 차례로 들어섰다. 당시 두 나라의 거주 구역을 가르던 돌계단은 140여년이 흐른 지금도 원형 그대로 남아 여행객을 맞이한다.
◆ 1905년과 1910년대 사이, 짜장면 첫 그릇의 기록
짜장면의 원조로 꼽히는 공간은 단연 옛 공화춘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장면’ 항목을 보면 공화춘은 1905년 최초의 청나라 요릿집으로 문을 열어 자장면을 처음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인천 화교 사회의 대표 연회장으로 번성하다가 1984년 폐업했다.
다만 첫 그릇이 팔린 정확한 시점은 기록마다 차이를 보인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은 해당 문화유산의 시대 항목에 1905년을 기재했으나 상세 설명문에는 1908년 무렵 건립된 것으로 적었다.
인천시가 지난해 짜장면을 ‘인천지역유산’으로 선정하며 남긴 공식 기록에는 1910년대 전후에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명시돼 있다. 인천 개항장이 짜장면의 발상지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지만 구체적인 탄생 연도는 여전히 사료마다 엇갈린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옛 공화춘은 중국 산둥 지방의 장인이 직접 참여해 지은 중정형 중국식 건물이다. 건립 초기에는 인천항을 오가던 무역상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객주 형태였다.
이후 중화요리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자 식사 공간을 대폭 넓혔고 대형 연회장까지 갖춘 고급 요릿집으로 탈바꿈해 1980년대까지 명성을 이어갔다.
제물포문화재단에 따르면 폐업 후 방치됐던 이 건물은 관할 지자체가 매입해 보수 공사를 거친 뒤 2012년 짜장면박물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박물관 2층 전시실은 개항기 화교와 짜장면의 탄생 배경을 시작으로 1930년대 공화춘 접객실 재현 공간과 짜장면의 전성기, 현대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짜장면과 짜장라면의 변천사를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1층에는 공화춘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 주방 풍경을 조리 도구와 함께 재현해 현장감을 살렸다.
◆ 산둥식 볶은 장에서 7083원 국민 외식 메뉴가 되기까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짜장면의 원형은 중국 산둥반도 지역의 일상식인 차오장멘(炒醬麵)이다. 기름에 볶은 텐멘장(첨면장)을 삶은 국수 위에 얹어 비벼 먹는 음식이다.
중국 본토의 국수가 한국식 짜장면으로 갈라진 결정적 계기는 춘장의 개량이다. 원래 텐멘장은 밀가루에 소금을 넣어 발효시킨 갈색의 짠맛 및 단맛 장이다.
이를 1948년 화교 왕송산 씨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캐러멜을 혼합한 검은색 춘장으로 개발하면서 오늘날의 달콤하고 윤기 나는 짜장 소스가 완성됐다.
여기에 1960∼1970년대 정부의 분식장려운동이 맞물렸다. 미국산 밀가루 공급 확대와 맞물려 조리 시간이 짧고 열량이 높은 짜장면은 산업화 시기 대표적인 서민 외식 메뉴로 뿌리내렸다.
개항기 부두 노동자의 간편식에서 출발한 짜장면의 확산 과정은 근현대 식량 정책 및 유통 구조 변화와 직결돼 있다. 1883년 인천항 개항 직후 부두 하역 작업에 투입된 산둥성 출신 화교 노동자들에게는 값싸고 빠르게 열량을 보충할 수 있는 국수 요리가 필수적이었다.
이후 1948년 캐러멜을 첨가한 사자표 춘장의 상업적 대량 생산이 시작되면서 개별 식당마다 달랐던 장맛이 표준화됐다. 1960년대 이후에는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에 따라 밀가루 가격이 안정화되면서 중식당 창업이 전국적으로 급증했고, 졸업식이나 이사 날 먹는 상징적 외식 문화로 고착됐다.
◆ 중국 국수에 일본어 이름이 붙은 개항장 음식 ‘짬뽕’
중화요릿집의 또 다른 주역인 짬뽕의 탄생사에는 중국과 일본의 식문화가 동시에 얽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짬뽕의 기원을 한국유래설과 일본유래설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한국유래설은 19세기 말 인천에 정착한 산둥성 출신 화교들이 고향 음식인 차오마멘(炒碼麵)을 한국인의 기호에 맞춰 얼큰하고 매운 국물 국수로 변형했다는 시각이다.
당시 개항장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해산물과 채소를 한데 섞어 조리하면서 ‘서로 다른 것을 뒤섞는다’는 뜻의 일본어 ‘짬뽕’이 음식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반면 일본유래설은 19세기 말 일본 나가사키의 중식당 시카이로(四海樓) 창업자인 화교 천핑순(陳平順)이 유학생과 노동자들을 위해 고안한 하얀 국물의 국수에서 출발한다.
백과사전은 한일 두 나라의 개항장에서 각각 발전한 서로 다른 맛의 중국식 국수가 ‘짬뽕’이라는 동일한 명칭을 공유하게 된 것으로 정리한다.
중국에 뿌리를 둔 음식에 일본어 유래 명칭이 붙고 한국식 고춧가루 조리법이 결합한 과정은 청국 조계와 일본 조계가 맞닿아 있던 인천 개항장의 지정학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짜장면과 짬뽕 외에도 차이나타운 골목에는 걸으며 맛볼 수 있는 주전부리가 풍부하다. 이 일대의 대표 별미로 캐러멜을 넣지 않은 황장으로 볶아낸 하얀 짜장과 양꼬치, 속이 텅 빈 공갈빵, 고온의 화덕 벽면에 붙여 구워내는 화덕만두, 바구니에 담아 파는 중국식 과자 월병을 꼽는다.
◆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형성된 한국 최초의 화교 거리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 개항 이듬해인 1884년 선린동 일대가 청나라 조계지로 지정되면서 형성됐다. 제물포문화재단에 따르면 2015년 6월11일 개관한 인천화교역사관은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군대와 함께 들어와 인천에 정착한 초기 화교들의 정착사와 생활상을 다룬 국내 최초의 화교 전문 전시관이다.
전시관 2층 상설전시실에는 인천화교협회와 화교 교육기관인 화교중산학교, 지역 화교 개인들이 기증한 생활 유물과 문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인천화교역사관은 2005년 개관한 한중문화관의 별관으로 운영된다. 붉은 기둥이 돋보이는 중국풍 본관 건물과 ‘인화문’ 패루, 전통 중국식 정자가 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어 개항기 화교 공동체의 건축 양식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다.
◆ 돌계단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라선 청국과 일본의 건축
차이나타운의 붉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응봉산 자락 언덕으로 곧장 이어지는 가파른 돌계단과 마주한다. 2002년 인천시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된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이다.
이 계단이 자리한 언덕길은 1883년 설정된 일본 조계와 1884년 설정된 청국 조계가 맞닿던 실제 행정 경계선이다. 당시 두 조계지 주민들이 언덕 위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으로 오갈 수 있도록 계단과 조경을 조성했다.
국가유산청은 이 계단을 기점으로 “청국과 일본의 건물들이 확연하게 서로 다른 양식들로” 들어서 있다고 평가한다. 석조 계단 자체의 조형적 화려함보다는 근대 개항기 열강의 세력 분할을 보여주는 역사성과 장소적 가치가 높은 유산이다.
인천시 지명유래(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기록을 보면 개항기 당시 일본지계의 면적은 약 7000평, 청국지계는 약 5000평 규모였다. 반면 서양 각국 외교관과 상인들이 거주하던 각국지계(만국지계)는 약 14만평에 달했다.
나라 안의 작은 치외법권 구역이던 조계 제도는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제의 압력으로 1913년 4월 만국조계가 먼저 폐지됐고, 같은 해 11월 청국조계가 마저 철폐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일본에서 건너온 자재로 지은 석조 은행과 목조 2층 거리
경계계단 왼쪽의 차이나타운을 벗어나 오른쪽 옛 일본 조계 구역으로 들어서면 거리의 색채가 단숨에 바뀐다. 화려한 원색 간판 대신 차분한 회백색 석조 건물과 짙은 기와 차양을 단 일본식 목조 2층 건물이 가로수를 따라 이어진다.
한국관광공사 관광정보는 이 일대를 ‘일본풍거리’로 안내한다. 개항 초기에는 1층에 점포를 두고 2층에 살림집을 배치한 일본 전통 상가주택 ‘마치야’와 여러 가구가 벽을 맞대고 이어진 연립주택 ‘나가야’가 주를 이뤘고, 이후 서양식 공간 구성을 일부 절충한 문화주택 양식이 들어섰다.
거리의 중심에는 근대 금융 침탈의 현장이던 은행 건축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인천시 유형문화유산 제7호인 옛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은 1899년 완공된 단층 석조 건물이다.
일본인 건축가 니이노이에 다카마사가 설계를 맡았으며, 현지에서 조달한 모래와 자갈, 석회를 제외한 모든 건축 자재를 일본에서 직접 배로 실어와 지었다. 건물 중앙 현관 상부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작은 돔을 올려 권위를 강조했다. 현재는 2010년부터 인천개항박물관으로 활용되며 근대 개항기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같은 도로변에 나란히 선 옛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인천시 유형문화유산 제50호)은 이보다 앞선 1890년 준공돼 같은 해 10월 영업을 시작했다.
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상인들이 한국 내 면직물 무역과 금융을 장악하기 위해 세운 지점이다. 2006년부터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130여년 전 시공된 벽체와 지붕 목구조, 육중한 은행 금고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 경계계단 끝에서 만나는 국내 최초 서구식 공원과 140년 플라타너스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이며 자유공원 광장으로 연결된다. 인천시 지명유래에 따르면 이 공원은 1888년 조성된 대한민국 최초의 서구식 근대 공원이다. 조성 당시에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서양인 거주 구역인 만국지계 내부에 위치해 만국공원 또는 각국공원으로 불렸다.
공원의 명칭은 근현대사의 굴곡을 따라 수차례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인천신사를 세운 맞은편 언덕을 동공원이라 부르면서 기존 만국공원을 서공원으로 격하해 불렀다.
1945년 광복 직후 만국공원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으나, 1957년 10월3일 개천절에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 동상 제막식이 열리면서 오늘날의 자유공원으로 개칭됐다.
공원 산책로에는 개항의 역사를 함께 견뎌온 거목이 서 있다. 공원 내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는 2015년 국립산림과학원의 수령 측정 결과 나이가 130년을 훌쩍 넘긴 1884년생으로 추정돼 국내 최고령 플라타너스로 확인됐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인천시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공원 언덕 아래쪽 자락에 자리한 제물포구락부는 1901년 개항기 인천에 체류하던 서양 외교관과 상인들의 사교 클럽으로 지어진 2층 벽돌 건물이다.
1953년부터 1990년까지는 인천시립박물관 건물로도 쓰였다. 역 앞 평지의 차이나타운과 일본 조계지부터 언덕 위 서양인 거주지까지 한나절 걸음으로 세 나라의 근대 흔적을 모두 밟아볼 수 있는 동선이다.
◆ 인천역 도보 4분 거리…5개 박물관 주소 정보
한편 개항장 일대는 대중교통 접근성이 뛰어나 도보 여행에 최적화돼 있다. 제물포문화재단 안내에 따르면 수도권 전철 1호선과 수인분당선 종점인 인천역 1번 출구에서 길을 건너면 짜장면박물관까지 걸어서 약 4분, 인천화교역사관까지는 약 5분이 소요된다.
야외 공간인 차이나타운 거리와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 자유공원은 연중무휴 상시 개방된다.
실내 전시시설인 짜장면박물관과 한중문화관(인천화교역사관 포함),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대불호텔전시관 등 5개 박물관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6시에 닫는다.
매표 및 입장 마감 시각은 오후 5시30분이다.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다음 날)과 1월1일, 설날 및 추석 당일은 휴관한다.
자가용 이용객은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한중문화관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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