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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리뷰]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는 몸짓…‘네이처 오브 포겟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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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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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면이 객석으로 둘러싸인 무대에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남자가 앉아 있다. 딸은 그의 신발 끈을 매어주고 남색 재킷 주머니에 든 빨간 넥타이를 매라고 일러준다. 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뒤 남자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지만 방금 들은 말조차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빨간색’이 머리에 맴돌면서 시선은 옷걸이에 걸린 빨간 드레스로 향한다. 누구의 옷이었을까. 이윽고 교복 재킷을 걸치자 오래전 시간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극은 주인공 톰이 이처럼 기억의 파도에 휩쓸리며 시작된다.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연극열전 제공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연극열전 제공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연극이 무대 위에서 펼치는 상상력의 밀도가 얼마나 높아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옷걸이와 책상·의자 몇 개가 놓인 작은 무대에서 네 배우의 몸짓과 정교하게 설계된 음악이 한 남자 삶의 희로애락을 펼쳐낸다. 기억이 되살아나는 기쁨과 그것을 붙잡을 수 없는 절박함이 생생한 무대다.

 

톰의 생애가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기억의 공간은 무대 중앙에 놓인 가로·세로 5m 남짓한 사각 단상. 이 위에서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학교로 향하던 톰은 빨간 드레스 주인인 이자벨라와 친구 마이크까지 자전거 한 대에 태운다. 친구들과 쉴 새 없이 웃고 떠들고 시험 시간에는 작당해 커닝도 한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첫사랑 이자벨라와는 극장에서 첫키스를 한다. 결혼식 피로연과 1980년대풍 웨딩댄스에 이어 임신과 육아의 기억이 강렬하게 펼쳐진다. 첫사랑의 아련함은 고통스러운 상실과 교차하며 관객도 인생 애환을 함께 겪는다.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연극열전 제공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연극열전 제공

딸 소피와 아내 이자벨라를 한 배우가 맡고 다른 배우들도 친구와 엄마 등으로 모습을 바꾼다. 같은 얼굴과 몸이 서로 다른 시절과 관계를 잇는 방식은 현재와 과거가 포개지는 기억의 세계와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네 배우의 호흡은 이 작은 세계를 지탱하는 힘이다. 함께 움직이다 시간이 멎은 듯 멈추고 다시 속도를 높이며 장면을 이어간다. 배우들은 인물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톰의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는 기억의 조각이 된다. 전기 스파크가 튀듯 어느 순간이 번쩍 살아났다가 끊기고 다른 순간이 끼어든다. 관객은 기억을 더듬다가 놓쳐버리는 혼란을 장면의 반복과 단절 속에서 느낀다.

 

음악극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음악이 장면을 이끄는 힘도 크다. 두 연주자가 피아노와 바이올린·퍼커션을 연주하고 루프스테이션으로 소리를 반복해 층을 쌓는다. 흑백이었을 기억에 색을 입히듯 지나간 순간을 생생하게 만든다. 교실 장면에선 퍼커션과 바이올린 피치카토로 시계 소리를 들려준 뒤 음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자전거 장면에서는 7박자 피아노 악구와 반복되는 바이올린 선율이 젊은 날의 활기를 실어 나른다.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연극열전 제공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연극열전 제공

그렇게 되살린 기억이 무너지는 후반부에 이르면 책상을 붙들고 옮기는 동작은 절박한 몸부림이 된다. 톰은 흩어지는 기억을 다시 맞추고 이자벨라와 행복했던 시간을 지키려 애쓴다. 톰이 소중한 기억을 잃어가는 순간을 같이한 관객에게도 안타까운 장면이다. 친구들과 장난치던 기쁨과 사랑에 빠지던 설렘을 함께 느꼈기에 그것을 붙잡으려는 몸부림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격렬한 감정의 파도가 지나간 마지막 장면은 담백한 여운을 남긴다. 작은 무대에 한 사람의 삶을 펼쳐놓고 몸짓과 음악으로 그 무게를 전한다. 형식과 정서가 단단히 맞물린 작품이다. 서울 세종S씨어터에서 11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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