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도 불러 실력 직접 확인
형 문광겸도 천문학에 조예
문광겸 부자는 학술을 악용
미래를 ‘예언’하며 반란 계획
1769년(영조 45) 5월 2일 아침 영조는 경희궁 집경당에서 진찰받고, 같이 온 영의정 홍봉한과 함께 전날 저녁에 있었던 일식 구식례에 관해 이야기한다.
구식례는 일식이나 월식이 있을 때 임금이 행하던 의식이다. 홍봉한과 대화를 이어가던 영조는 “일식을 계산해 낸 것이 참으로 묘하다”며 감탄한다. 홍봉한은 문광도(文光道)라는 자가 계산에 뛰어나 ‘신산(神算)’이라 불린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다음 날 아침, 영조는 그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자 문광도를 부른다. 신산으로 불리던 문광도는 선배 관원 김태서와 함께 집경당에 든다. 영조는 여러 문제를 내고 문광도는 막힘없이 답한다. 문광도를 두고 영조의 짧지만 분명하게 평한다. “과연!” 홍봉한의 이야기 그대로라는 의미다. 이후 영조는 문광도를 불러 천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문광도의 신분은 중인이다. 그는 18세기 천문, 지리, 명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관상감 소속 관원이었다. 신산 문광도의 전공은 천문학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한국천문연구원의 연구원쯤 될 터였다.
문광도는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선 후기의 중인은 대개 가학을 세습했다. 역관 집안 후손은 역관의 길을 걷는 게 자연스러웠다. 전공을 바꾸는 ‘전과’는 매우 드물었다. 기록은 없지만, 장인 전덕윤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광도의 처가는 장인 전덕윤을 비롯해 다수가 관상감 관원이었다.
문광도는 18세에 관상감 생도가 되어 9년간의 수련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27세에 음양과(陰陽科)에 장원급제해 관상감의 정식 관원이 되었다. 천체를 관측해 역서(曆書)를 만들고 일식, 월식을 예측하는 일이 문광도의 업무였다. 문광도는 한 줌의 산가지만으로, 천체의 운행과 일식, 월식을 정확히 계산했다. ‘신산’이라는 명성은 허투루 얻은 게 아니었다.
문광도는 명석한 두뇌와 계산 실력을 바탕으로, 참상관에 올랐다. 참상관에 오르면 지방관으로 파견되었는데, 문광도는 1771년 함경도 함흥의 감목관(監牧官)으로 부임해 말 목장을 관리했다. 임금에게 인정받은 천재였으니, 큰 족적을 남겼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문광도는 1775년 모친상을 치르며 지나치게 상심해 49세의 일기로 소천했다.
문광도가 천문학 관료였다면, 형 문광겸, 조카 문양해는 ‘민간 천문학자’였다. 문광겸 부자는 점성학과 풍수학에 능했다. 문광도가 ‘신산’이라 불리는 동안 문광겸 부자는 점성학과 풍수학으로 명성을 날렸다. 문광도와 문광겸 부자의 학문 연원은 같았다. 세 사람 모두 천문학자였지만, 활약하던 장소만 달랐다.
달랐던 장소가 세 사람의 운명을 갈랐다. 문광겸 부자는 1783년(정조 7) 홍복영ㆍ이율 등과 반란을 계획했다. 근거지는 경남 하동이었다. 문광겸 부자는 ‘정감록(鄭鑑錄)’을 들먹이며, 새로운 나라를 세울 영웅을 예언했다. 세가 불자 이들은 무기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1785년 봄 내부의 밀고로 이들의 행각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조정은 문광겸 부자가 점성학과 풍수학으로 사람을 현혹해,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고 판단했다. 문양해는 사형되었고, 문광겸은 형의 집행을 위해 압송 중 죽었다.
조선의 천문학은 과학일까? 답은 학술의 내용에만 달린 게 아니다. 문광도는 천문에 관한 학술을 일식, 월식을 계산하고 역서를 편찬하는 데 썼다. 반면, 형 문광겸과 조카 문양해는 반란을 일으키고자 미래를 읽는 데 썼다. 조선의 천문학이 과학인지 묻는다면, 쓰임에 따라 다르다고 답할 수 있겠다.
인공지능(AI) 연구 역시 모두에게 이로운 이기의 제작, 혹은 감당 못 할 흉기의 탄생으로 귀결될 수 있다. 결국, 학술적 의의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렸다. 250년 전 같은 하늘을 연구했던 문광도・문광겸 형제의 서로 다른 선택은 현재 우리에게 묻는다. 과학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이냐고.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총서 38)
경석현 국립대구과학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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