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개 키보드를 ‘12개’ 버튼 속에…피처폰이 바꾼 한글 입력의 역사
자음과 모음이 적절한 위치에 조합돼야 하는 ‘모아쓰기’ 문자 한글이 오늘날 기계를 통해 완벽한 글자로 출력되기까지는 수많은 고민의 과정이 있었다. 타자기 시절 세벌식과 다섯벌식의 경쟁부터 피처폰을 지나 스마트폰까지 한글 자판은 매체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했다. 시대별 자판의 탄생 배경과 변화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자판의 역사를 살펴봤다.
◆ 초성·중성·종성 결합… ‘모아쓰기’ 한글, 기계와 만나다
기계로 한글을 입력하는 일은 알파벳보다 까다로운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한글은 한 글자에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모아쓰기’ 문자이기 때문이다. ‘한글’이라는 글자를 쓰려면 자음과 모음 ‘ㅎㅏㄴㄱㅡㄹ’을 각각 적절한 위치에 조합해야 한다. 이에 몇몇 한글학자들 사이에서 한글을 서양 문자 표기처럼 ‘풀어쓰기’를 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한글 타자기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커진 것은 광복 이후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어나면서부터다. 특히 기존 ‘세로쓰기’ 대신 ‘가로쓰기’가 장려되면서 새로운 타자기 개발이 시급해졌다.
◆ 속도의 세벌식 vs 미형의 다섯벌식…한글 자판에 담긴 고민
이에 1949년 3월 ‘조선발명장려회’는 한글 타자기 현상 공모를 개최했다. 당시 1등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2등을 차지한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훗날 ‘한글 기계화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는 공병우다.
공병우는 오늘날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의 원리를 이용해 한글 자판을 만든 세벌식 타자기를 선보였다. 기존 네모꼴 형태에서 벗어나 ‘빨랫줄 글꼴’이라는 지적도 받았지만, 타자 속도가 비교적 빠르고 업무 효율성이 뛰어나다는 강점을 갖췄다. 특히 공병우 타자기는 ‘6·25전쟁 정전 협정문’ 국문본을 작성할 때 쓰이기도 했다.
같은 공모전 3등 수상자 중 한 명인 김동훈은 초성자 두벌, 중성자 두벌, 종성자 한벌로 이루어진 다섯벌식 타자기를 선보였다. 공병우 타자기보다 복잡해 타자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글씨가 기존 네모꼴 글자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 반발 샀던 ‘네벌식’ 거쳐…컴퓨터 시대가 연 ‘두벌식’ 전성시대
1968년 7월28일 국무총리 훈령 제81호로 ‘네벌식’이 한글 표준 자판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이는 당시 널리 쓰이던 공병우 타자기나 김동훈 타자기도 아니란 점에서 기존 제작자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자판의 표준도 달라졌다. 오늘날 보편화된 두벌식 자판이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와 워드프로세서가 보급되면서부터다. 내장 프로그램을 통해 초성과 종성을 자동으로 구분·입력해 주는 컴퓨터 환경 덕분에 자판을 자음과 모음 딱 두 벌로 대폭 단순화할 수 있었다.
두벌식 자판은 시프트(Shift) 키를 자주 눌러야 해 왼손 새끼손가락에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단점은 있다. 하지만 다른 방식의 자판보다 상대적으로 익히기 쉽다는 장점이 있고 자음과 모음이 알파벳 영역에만 배열돼 숫자 및 특수문자가 쿼티(Qwerty) 자판과 대체로 동일하다는 이점이 있다.
◆ 천지인·나랏글·스카이… 피처폰의 한글 자판
피처폰 등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하며 새로운 한글 입력 과제가 생겼다. 컴퓨터 키보드처럼 수십 개의 키를 넣기 어려운 작은 기기에 12개의 버튼만으로 한글을 입력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에 따라 여러가지 방식의 한글 자판이 나왔다.
삼성전자에 많이 쓰이던 ‘천지인’은 한글 창제 원리에서 이름을 따온 방식이다. 3개의 모음 키 천(·), 지(ㅡ), 인(ㅣ)과 자음 키 7개를 조합해 입력하도록 설계됐다. 주로 LG전자 피처폰에 적용된 ‘KT 나랏글(EZ 한글)’은 모음 키 4개와 자음 키 6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방식은 ‘획 추가’ 및 '쌍자음' 키를 이용해 자판에 없는 일부 자음들을 구현한다. 팬택의 ‘스카이(SKY)’ 피처폰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쓰던 방식인 ‘스카이’는 자음 키 8개와 모음 키 5개로 구성됐다. 키를 반복 입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천지인과 비슷하고 모음 키가 다양하다는 점에서 KT 나랏글과 닮았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한글 입력 방식은 다시 달라졌다. 터치스크린이 생겨 화면 내 컴퓨터식 키보드 구현이 가능해졌고 천지인 등 기존 피쳐폰 때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어 사용자 선택 폭이 넓어졌다. 나아가 전자펜을 통한 손글씨 입력과 음성 입력까지 지원하는 등 한글 입력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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