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훈 기자] 시계를 약 11개월 전인 지난해 11월말로 돌려보자. KBO리그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KT는 연이어 영입전에서 패배했다.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강백호는 한화로 4년 최대 100억원으로 이적했다. KT가 가장 공들였던 유격수 박찬호(두산)와 중견수 박해민(LG) 영입도 실패했다. 4년 최대 80억원에 두산으로 이적한 박찬호에게는 비슷한 금액을 오퍼했으나 박찬호의 선택은 잠실이었다. LG와 4년 최대 65억원 계약을 맺고 잔류한 박해민에게는 더 큰 금액을 제시했음에도 소위 말해 ‘까였다’
결국 KT는 플랜B를 가동해야 했다. 1988년생으로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에이징 커브 우려가 컸던 외야수인 김현수에게 3년 50억원을 안겨 영입했고, 공격이나 수비에서 데뷔 때 받았던 기대나 잠재력에서 터뜨리지 못한 외야수 최원준도 4년 최대 48억원의 계약을 주며 영입했다. 김현수나 최원준이 KT와 맺은 계약을 보고 시장에서는 ‘오버페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강백호를 놓치고, 박찬호, 박해민 영입전에서 실패하다 보니 ‘패닉 바이’를 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강백호를 살 돈 100억으로 김현수-최원준을 산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그땐 누가 알았을까. 김현수와 최원준이 KT가 2021년 이후 5년 만에 정규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 줄. 결과론이지만, 김현수와 최원준의 영입은 오버 페이도, 패닉 바이도 아니었다. 지극히 합리적인 지출이었다.
KT는 5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026 KBO리그 롯데와의 홈 경기에서 9-0 완승을 거뒀다. 시즌 86승 49패 5무, 승률 0.637을 기록한 KT는 이날 두산에 5-7로 패한 2위 삼성(82승 54패 3무, 승률 0.603)에 4.5게임 차로 앞서 남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정규시즌 1위를 확정했다. KT가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21년 이후 5년 만이다. 당시 KT는 삼성과 동률을 이뤄 사상 초유의 타이 브레이커 단판 승부를 치러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지만, 이번엔 정규리그 종료를 일주일 앞두고 여유있게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냈다.
김현수와 최원준은 최고의 ‘이적생’이었다.
김현수는 5일까지 타율 0.285(548타수 156안타) 13홈런 93타점 OPS 0.770을 기록했다. 비율 스탯이 전성기만큼 잘 나오진 않지만, 타점 수에서 알 수 있듯 찬스에서는 여전히 강했다. 여기에 데뷔 후 처음으로 전업 1루수로 나섰고, 준수한 수비력을 뽐냈다.
김현수의 가치는 그라운드 위가 전부는 아니다. 더그아웃과 라커룸에서 더욱 빛난다. MLB 생활을 마치고 LG로 복귀해 LG의 팀 컬러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김현수는 KT 이적 후에도 ‘보컬 리더’, ‘클럽하우스 리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후배들을 때로는 다독이고, 필요할 땐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두산과 LG에서도 통합 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 김현수는 KT에서도 통합 우승에 도전한다. 여전한 기량과 빼어난 리더십을 갖춘 그에게 3년 50억원은 결코 오버페이가 아니었다.
최원준은 기대치를 100% 아니 200%를 뛰어넘는 맹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5일까지 타율 0.352(565타수 199안타) 9홈런 72타점 119득점 27도루 OPS 0.912를 기록 중이다. 타격 3위에 최다안타 공동 1위, 득점 1위, 출루율 3위 등 단숨에 리그 최고의 톱타자로 자리매김했다.
FA를 앞둔 지난 시즌, 최원준은 부진을 면치 못했고 결국 데뷔팀인 KIA에서 NC로 트레이드됐다. 시즌이 끝난 뒤에도 NC는 최원준에게 그리 큰 금액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 최원준에게 KT는 4년 최대 48억원을 안겨 잡았고, 이는 희대의 ‘혜자 계약’이 됐다. 데뷔 때만 해도 리그 최고의 호타준족 잠재력을 가졌지만, 타격도 수비도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에 머무르는 듯 했던 최원준은 KT 이적 후 마인드셋을 완전히 바꿨다. 그러자 타격 생산력은 리그 전체에서 손꼽히는 타자가 됐고, 약점이라던 수비도 크게 개선됐다. 4년 최대 48억원의 계약이 최원준에겐 다소 억울할 정도로 최고의 활약이다.
김현수, 최원준에게 가려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포수 한승택의 영입 역시 ‘신의 한수’였다. 수비를 중시하는 이강철 감독은 30대 후반에 접어든 장성우와 신예 포수 조대현·강현우 사이를 메워줄 포수를 원했고, KT는 올 시즌을 앞두고 한승택과 4년 최대 10억 원에 계약했다. 수비형 포수 한승택은 올 시즌 124경기를 출전해 KT 포수 중 가장 오래 그라운드에 쪼그려 앉았다. 장성우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도, 조대현과 강현우의 성장세가 다소 아쉬울 때도 한승택의 존재 덕분에 KT 포수진은 든든했다. 이강철 감독도 “원팀으로 뭉쳤기에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굳이 선수단에서 수훈갑을 꼽자면 한승택”이라고 할 정도다. 결국 KT는 지난해 스토브리그를 가장 잘 보낸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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