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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길 위에서 삶이 소비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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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민은 인생의 20%를 지하철에서 보낸다.”

현실감 있는 인물 묘사와 감성 넘치는 대사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염창희의 말이다. 극 중에서 그는 매일 서너 시간을 이동에 투자하느라 삶과 영혼을 갉아먹히고, 바로 그 ‘여유 없음’ 때문에 여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는다.

박성수 세종특별자치시 경제부시장
박성수 세종특별자치시 경제부시장

‘서울에 살지 못해서 연애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삶’이라니, 설정이 조금 과하다 싶지만 막상 현실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숨 쉴 틈 없는 출퇴근길을 버텨내는 우리네 일상과 비교하면 현실이란 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일터나 학교가 있는 서울로 향하는 수도권 주민들이 하루하루 마주하는 고단한 삶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부인할 수 없는 일상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서울로, 경기도로, 인천으로 몰려드는 인구는 여전히 줄지 않는다. 교육, 일자리, 문화, 주거, 건강 등 청년 정주의 5대 필수조건 중 주거만 빼고 모든 것이 충족되는 수도권 대신 주거만 겨우 해결되는 지방에 살라고 그들을 붙잡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매년 청년인구 5만명이 수도권에 새로 편입되고 비좁은 땅에 인구가 몰려 버스 하나를 타려고 해도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수도권의 연간 교통혼잡비용 41조원’이라는 이 무미건조한 수치 뒤에 지금 당장의 행복을 저당 잡힌 수많은 염창희와 그들의 비정한 현실이 있다.

그런데 길 위에서 삶이 소비되는 잔혹사는 비단 수도권 시민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책의 중심지인 세종시의 공직자들 역시 같은 비극을 겪고 있다. 세종 관가에는 ‘길국장’, ‘길과장’이라는 씁쓸한 은어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정부 부처의 상당수가 세종으로 이전했음에도 입법부인 국회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서울에 남아 있는 탓이다. 국회 상임위 출석과 법안 심사, 예산안 설명, 각종 당정 협의를 위해 세종의 공직자는 매일같이 서울행 KTX에 오르고, 오송역과 여의도를 전전하며 왕복 4~5시간 이상을 길 위에서 낭비한다.

이로 인한 국가적 행정력 낭비와 비효율도 심각하다. 한국행정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행정부와 입법부의 물리적 이격에 따른 사회적 손실은 연간 최대 4조8800억원에 달한다. 실국장급 공무원의 출장비와 시간 등을 고려한 직접 비용에 대면보고 부재로 인한 정책 품질 저하, 의사결정 지연, 국정 정시 대응력 악화 등 사회적 손실을 간접 비용으로 더해 나온 수치다.

이 두 가지 현상은 대한민국 전체가 기형적인 ‘서울 일극주의’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일자리와 인프라가 쏠리다 보니 행정수도 건설 논의도 지지부진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나도록 국정의 중심이 완벽히 세종으로 이전하지 못하는 사이 국가정책의 품질이 저하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언제까지 국민 삶의 상당 부분이 도로와 지하철 위에서 허망하게 소비되어야 하나. 수십년간 고착한 서울 일극주의와 비대해진 수도권 문제를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나. 염창희와 같은 우리 청년들이 짊어진 이 무거운 이동의 짐을 줄여줄 수는 없나.

그 근본적인 열쇠는 바로 국가 균형 성장에 있고, 그 출발점은 행정수도 완성에 있다. 행정수도 세종 완성의 법적 근거이자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집무실의 제대로 된 건설을 위해 올가을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행정수도특별법이 제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성수 세종특별자치시 경제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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