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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누군가를 향한 온기… 접시에 오롯이 담은 진심 [유한나가 만난 셰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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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빈’ 왕홍룡

드라마 ‘맛있는 청혼’ 보며 요리사 꿈 꿔
63빌딩·조선호텔·홍연 등 거쳐 내공 쌓아
정확·일관성 철학 담은 건강한 중식 지향
맛 균형 잡는 어향 벨루테 입힌 일품 해삼
땅콩·참깨소스 곁들인 북경오리 등 차별화
좋은 음식은 사람을 배부르게 하지만, 좋은 식사는 사람의 기억을 바꾼다. 회빈의 왕홍룡 셰프를 만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음식은 결국 기술보다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왕 셰프가 요리를 꿈꾸게 된 계기는 조금 의외였다. 어린 시절 드라마 ‘맛있는 청혼’을 보며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누며 행복해하는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고 한다.
왕홍룡셰프
왕홍룡셰프

그때 그는 처음으로 요리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좋은 기억을 남기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 끼 식사로 누군가의 하루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요.” 그 마음은 자연스럽게 요리사의 꿈으로 이어졌다. 특히 다양한 식재료를 자유롭게 다루고, 강한 화력과 섬세한 기술이 공존하는 중식의 세계는 어린 그에게 무한한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불과 시간, 그리고 셰프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변화는 그를 중식이라는 길로 이끌었다.

왕 셰프가 처음 주방에 들어선 것은 열아홉 살이었다. 그 시작에는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멘토인 막내 매형, 정수주 주방장이 있었다. 매형은 “무조건 3년은 버텨라”는 단 한마디를 남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은 요리를 배우라는 의미보다, 요리사의 삶을 견뎌보라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곳이 63빌딩 백리향이었다. 처음 마주한 주방은 상상보다 훨씬 치열했다. 매일 반복되는 긴장감, 강한 책임감, 그리고 수없이 이어지는 기본기의 반복은 어린 셰프에게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만두고 싶었던 날도 많았다. 하지만 하루를 버티고, 또 하루를 버티다 보니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낫다”는 마음으로 쌓인 시간이 결국 지금의 왕홍룡 셰프를 만들었다.

2001년에는 정 주방장의 권유로 조선호텔에 입사하며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한다. 조선호텔 외식사업부에서 인천공항 중식당 오픈 멤버로 참여했고, 웨스틴 조선 서울 홍연 리오픈과 호경전 주방장을 거치며 정통 중식의 깊이를 배웠다. 이후 그랜드 조선 부산 팔레드 신, 조선팰리스 더 그레이트 홍연까지 수많은 신규 업장을 맡으며 메뉴 개발과 주방 운영, 서비스까지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그에게 요리는 한 번도 혼자 성장한 길이 아니었다. 좋은 스승과 좋은 동료, 그리고 수많은 손님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특히 손님은 또 다른 멘토였다. 칭찬은 자신감을 주었고, 아쉬운 한마디는 다음 요리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손님들의 짧은 인사 한마디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덕분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한마디가 며칠 동안의 피로를 모두 잊게 만든다고 그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왕 셰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다. 정확성과 일관성이다. 아무리 뛰어난 조리 기술도 기본이 흔들리면 오래 기억될 수 없다고 믿는다. 식재료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언제나 같은 기준으로 완성도를 유지하는 것. 결국 좋은 요리는 특별한 재능보다 반복되는 성실함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이런 생각은 현재 그가 이끌고 있는 중식 파인다이닝 ‘회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회빈은 건강한 중식을 지향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건강은 단순히 자극을 줄인 음식이 아니다. 식재료가 가진 본연의 힘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장 좋은 상태로 손님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다양한 육수를 활용해 화학조미료 사용을 최소화하고, 조리 과정에서도 재료의 영양과 풍미를 최대한 살리는 데 집중한다. 특히 회빈 전용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좋은 요리는 주방 안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자라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또 하나의 강점은 사람이다. 조선팰리스 더 그레이트 홍연 오픈 멤버 출신 셰프들이 함께하며 오랜 시간 다져온 팀워크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완성도를 만들어낸다. 왕 셰프는 한 접시를 완성하는 힘은 개인의 실력보다 팀의 리듬과 신뢰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어향 벨루테 소스 일품 해삼
어향 벨루테 소스 일품 해삼

회빈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첫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어향 벨루테소스 일품 해삼’이다. 중식의 대표 소스인 어향은 깊고 진한 풍미를 자랑하지만 자칫 강한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왕홍룡 셰프는 여기에 프렌치의 벨루테 소스를 접목했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조리법을 단순히 섞은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장점을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 해삼은 먼저 정성껏 손질하고 충분한 시간 동안 조려 부드러운 식감을 만든다. 그 안에는 다진 새우를 채워 넣고 다시 쪄낸 뒤 마지막에 얇게 튀겨낸다. 한입 베어 물면 해삼 특유의 탄력과 새우의 풍부한 감칠맛, 그리고 바삭한 식감이 차례대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더해지는 어향 벨루테 소스는 강렬한 향신료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으로 전체의 균형을 잡아준다. 전통 중식과 현대적인 감각이 가장 자연스럽게 만나는 회빈만의 시그니처다.

북경오리
북경오리

두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북경오리다. 익숙한 메뉴일수록 차별화가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왕 셰프는 가장 먼저 소스부터 바꿨다. 일반적인 해선장 대신 땅콩과 참깨를 중심으로 한 고소한 소스를 개발해 오리의 풍미를 더욱 부드럽게 살렸다. 함께 곁들이는 재료 역시 기존의 틀을 벗어났다. 밀전병뿐 아니라 어린 채소, 새싹삼, 자연송이, 트러플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한 식재료를 함께 구성해 북경오리를 더욱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진짜 차별점은 식사의 흐름이다. 오리 한 마리의 가치가 첫 번째 접시에서 끝나지 않도록 마라 오리 뼈 튀김, 양상추쌈, 오리탕 가운데 원하는 요리를 추가 비용 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한 마리의 오리를 끝까지 즐길 수 있도록 설계한 코스 자체가 회빈의 철학을 보여준다.

왕 셰프는 앞으로 회빈을 통해 한국식 중식 파인다이닝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중식이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이라는 오래된 인식을 넘어, 정제되고 섬세하며 건강한 미식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국내 고객은 물론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도 “한국에서 경험한 중식이 가장 인상 깊었다”는 기억을 남기는 것이 그의 목표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요리는 결국 누군가를 향한 가장 따뜻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처럼 회빈의 음식은 맛보다 먼저 마음을 담는다. 그리고 그 마음은 한 접시를 넘어,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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