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와 北아일랜드의 통합 지지
北아일랜드 주민들 간에 ‘충돌’ 위기
최근 아일랜드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통일된 아일랜드를 보고 싶다”는 말로 아일랜드·영국 둘 다 놀라게 만들었다. 아일랜드 섬 대부분을 차지한 독립국 아일랜드와 섬 북쪽의 영국령 북(北)아일랜드 간 통합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이 발언 때문이라고 단정할 순 없겠으나, 북아일랜드에서 친영(親英)계와 반영계 주민들이 물리적 충돌을 빚을 뻔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27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이날 북아일랜드 포터다운에서 개신교 단체 ‘오렌지오더’(ORANGE ORDER) 회원들이 가톨릭 신자가 다수인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 행진하려다가 불상사를 우려한 경찰에 의해 제지를 당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포터다운은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서 남서쪽으로 40㎞쯤 떨어진 작은 도시로 인구는 2만여명이다.
수백년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아일랜드가 20세기 초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친영 주민들이 더 많은 섬의 북부는 그냥 영국에 잔류하는 길을 택했다. 지금도 북아일랜드는 ‘영국 일부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개신교계 연합주의자들과 ‘영국에서 벗어나 아일랜드와 합쳐야 한다’고 여기는 가톨릭계 민족주의자들 간에 엄연히 갈등이 존재한다.
오렌지오더라는 단체는 230여년 전인 1795년 창설됐다. 영국에서 1689년 가톨릭 신자인 제임스 2세를 쫓아내고 개신교를 믿는 윌리엄 3세를 새 국왕으로 추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리는 것이 목적이다. ‘오렌지’라는 이름은 윌리엄 3세가 영국 국왕에 오르기 전 네덜란드에 머물 당시 ‘오라녀(Oranje) 공(公)’으로 불린 데에서 비롯했다.
오랫동안 오렌지오더 회원들은 윌리엄 3세의 승리를 기념하는 교회 예배를 전후해 포타다운 시내를 행진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문제는 그들의 이동로에 ‘가버기(Garvaghy) 로드’가 포함된 점이다. 가버기 로드 근처 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가톨릭 신자들이다. 이들은 오렌지오더 회원들이 가버기 로드를 행진하는 것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1997년 양측 간에 심각한 충돌이 발생한 뒤 당국은 이듬해인 1998년부터 오렌지오더 회원들의 가버기 로드 진입을 아예 금지했다.
그런데 올해 북아일랜드 법원은 몇 가지 단서를 달아 28년 만에 오렌지오더 회원들의 가버기 로드 행진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날 오렌지오더 회원들이 가버기 로드에 접근하자 가톨릭 신자 수백명이 도로를 점거하고 오렌지오더의 행진을 막았다. 이들은 법원 결정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쏟아냈다. 결국 폭력 사태를 우려한 경찰이 출동해 양측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는 가운데 경찰을 사이에 둔 두 진영의 대치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AFP는 이번 사태를 “최근 몇 년간 북아일랜드에서 발생한 최악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앞서 지난 13일 트럼프 대통령이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을 방문했다. 그는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언젠가 아일랜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며, 총리께서 그 일을 추진하기에 적임자”라고 말했다. 이어 “아일랜드 통일은 환상적인 일이 될 것”이라며 “이제 영국도 분명히 이에 대해 할 말이 있을 텐데, 나는 그것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영국 정부는 영·미 외교 관계를 의식해 말을 아꼈으나, 내정 간섭에 가까운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에 불쾌감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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