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dak 필름 한 롤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며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메라에 표시된 필름 카운터가 25 정도가 되면 고민이 시작됐다. 필름을 새걸로 갈아야 하나 남은 거로 찍어도 될까? 제한된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긴장감, 설렘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사진기자는 본인이 취재했던 사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관한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사진의 중요도를 떠나 보관을 많이 하는 사진기자이다.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상황이 기억도 없는 시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있고 취재와 출장 중에 보이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열어본 나의 외장하드를 독자들과 같이 꺼내보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1998년 5월1일 서울 롯데갤러리. 전시장 벽면에 ‘실업자 돕기 범국민 大바자회’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그해 3월에 임명된 김종필 국무총리 서리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전시된 작품을 둘러봤다. 도자기와 그림 등 판매를 위해 나온 작품들이 전시장을 채웠다. 평범해 보이는 바자회 풍경이지만 그 배경에는 외환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고통이 있었다.
1997년 말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충격이 사회 곳곳으로 번지던 때였다.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문을 닫는 사업장이 속출했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실업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7년 2.6%였던 연평균 실업률은 1998년 7.0%로 치솟았다. 실업자 수도 같은 기간 56만 8000명에서 149만 명으로 늘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익숙했던 시대에 대량 실업은 사회 전체가 맞닥뜨린 새로운 문제였다. 거리에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구직자들이 늘었고, 가정마다 ‘IMF’라는 세 글자가 생계를 위협하는 말로 다가왔다.
이듬해 봄에는 실직자를 돕기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기업과 종교계, 시민사회 등이 모금과 바자회를 열었고 정치권도 동참했다. 같은 해 4월 국회에서 열린 실업기금 마련 바자회에는 이틀 동안 10만여 명이 찾아 3억여 원의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연초에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들이 장롱 속 금붙이를 내놓는 ‘금 모으기 운동’도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5월1일 열린 ‘실업자 돕기 범국민 대바자회’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마련됐다. 사진 속 김종필 국무총리 서리는 관계자들과 함께 전시장을 둘러보며 도자기를 살펴본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참석자들이 나란히 서서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날은 근로자의 날이었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날에 ‘실업자 돕기’ 행사가 열린 것은 당시 고용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에 담긴 것은 화려한 행사보다 외환위기를 함께 견뎌내려 했던 당시의 침울했던 사회 분위기다. 금을 내놓고, 물건을 사고, 성금을 모아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자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금 모으기’, ‘실업자 돕기’, ‘경제 살리기’ 같은 구호가 일상의 언어가 됐던 시절이다.
28년 전 필름 속 바자회 풍경은 외환위기가 남긴 또 하나의 기록이다. 경제 위기라는 거대한 숫자 뒤에는 갑작스럽게 일터를 잃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돕기 위해 지갑을 열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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