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역 앞 로터리가 내다보이는 편의점 창가에 서 있었다. 유리창 너머 저편으로 ‘행정수도특별법 연내 제정’ 현수막을 든 조상호 세종시장과 사람들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옆으로 다가온 노부부의 이 같은 대화가 귀에 툭 박혔다.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건넨 이 몇 마디가 마음에 쓰였다. 어쩌면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터져 나온 자조 섞인 탄식일지도 모른다. 세종시민들이 이토록 간절하게, 때로는 지친 마음으로 바라는 그 ‘행정수도특별법’. 대체 이 법이 뭐길래 이렇게 간절한 것일까. 이 복잡한 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간을 무려 20여 년 전으로 훌쩍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노무현의 꿈으로 태어난 세종, 20년째 이름표를 기다리다
세종의 출발점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행정수도’ 구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겠다며 수도를 충청권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2004년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같은 해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걸었다.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오랜 관습에 의해 형성된 ‘관습헌법’에 해당하며, 헌법 개정 없이 법률만으로는 수도를 옮길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수도 이전이 막히면서 정부는 방향을 틀었다. ‘수도’ 대신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도시가 지금의 세종이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했고 정부 부처들이 하나둘 내려왔다. 지금은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주요 중앙행정기관이 세종에 자리 잡았고,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집무실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세종은 법적으로 ‘행정수도’는 아니다. 정부 부처까지 대거 내려왔지만, 정작 ‘행정수도’라는 이름표는 20년째 못 달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다시 등장한 것이 행정수도특별법이다.
이름표 하나가 전부는 아니다
현재 국회에는 세종을 행정수도로 명시하고 국가 행정기능을 체계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특별법안 5개가 발의돼 있다. 법안마다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핵심은 20여 년 전 무산됐던 ‘행정수도 세종’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법 하나가 통과된다고 세종이 곧바로 대한민국 수도가 되는 건 아니다. 2004년 헌재의 관습헌법 결정이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행정수도’의 범위를 어디까지 규정할 수 있는지, 서울과 세종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등 법적 논의가 아직 남아 있다.
결국 이 법은 세종에 이름표 하나 붙이는 문제가 아니다. 20년 넘게 단계적으로 옮겨온 국가 행정 기능을 어디까지 세종으로 가져올 것인지,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도록 어떻게 법으로 못 박아둘 것인지의 문제다.
“내년에 하면 안 되나요?”
그렇다면 세종은 왜 유독 ‘올해’를 이렇게 간절하게 외치는 걸까. 심지어 세종은 올해를 ‘골든타임’으로 거론할 정도로 연내 통과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반드시 올해여야 하는 건 아니다.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법 제정 자체는 가능하다.
그런데도 세종이 ‘연내’에 매달리는 이유는 이미 20년 넘게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2004년 수도 이전이 무산된 뒤에도 선거와 정권 교체 때마다 ‘행정수도 완성’은 반복해서 등장했다가 번번이 흐지부지됐다.
그런 세종에 올해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조건들이 한꺼번에 맞아떨어졌다. 대통령이 직접 행정수도 완성을 공약했고,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2차 공공기관 이전 논의도 진행 중이다. 급기야 대통령은 지난 18일 ‘행정수도 세종’을 직접 입에 올렸다. 이처럼 대통령과 정부, 국회가 동시에 행정수도 세종을 향해 움직이는 지금의 동력을 놓치면 다시 언제 이런 판이 만들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절박함에 가깝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수도권 이전을 반대하는 기관들의 목소리도 여전하고, 국회에는 이외에도 처리해야 할 법안들이 산적해 있다. 그런데 정작 세종에서 7년째 살고 있다는 한 지인에게 이 얘기를 꺼냈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사실 젊은 사람들은 집값에 관심 있지, 그만큼 행정수도특별법에는 관심 없는 것 같아.”
모든 세종시민이 이 특별법을 같은 온도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시간이 더 흐른다고 지금의 관심과 동력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다. 세종이 ‘연내’를 외치는 데에는 어렵게 만들어진 정치적 동력과 시민들의 관심을 놓치지 않으려는 절박함도 있다.
과연 올해 세종은 어렵게 찾은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20년 넘게 기다려온 ‘행정수도’라는 이름표를 달 수 있을까.
100투더세종…9편/투 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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