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은 버거 소스가 되고 들기름 막국수는 도넛으로 변신했다. 검정보리는 콜라에 들어갔고, 흑임자는 라떼와 아이스크림, 젤라또까지 영역을 넓혔다.
유통업계가 한국인에게 익숙한 식재료를 전혀 다른 형태의 메뉴에 접목하고 있다. 전통적인 조리법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버거와 도넛, 탄산음료, 카페 음료 등 젊은 소비자에게 익숙한 메뉴에 한국적인 맛을 끼워 넣는 방식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맥도날드는 지난 17일 ‘맥크리스피 고추장 버터’와 ‘맥스파이시 고추장 버터’ 2종을 출시했다. 고추장에 버터를 더한 소스와 콜비잭 치즈를 치킨 버거에 조합한 제품이다. 맥크리스피에는 통닭다리살 케이준 패티, 맥스파이시에는 닭가슴살 패티를 사용했다.
이번 메뉴는 국내용 신제품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맥도날드가 개발한 고추장 버터 소스는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13개 시장이 참여하는 ‘맥도날드 아시아 치킨 캠페인’에 활용된다. 한국에서 개발한 고추장 기반 소스를 아시아 지역 공통 메뉴 콘셉트로 확장한 것이다.
던킨은 아예 들기름 막국수를 도넛으로 옮겼다.
퓨전 한식 전문가 오스틴강 셰프와 협업한 ‘들기름 메밀 츄이스티’는 메밀가루를 활용한 도넛에 들기름과 들깻가루 풍미를 더했다. 한식 면 요리인 들기름 막국수를 쫄깃한 도넛으로 바꿔 놓은 메뉴다. 함께 출시한 ‘콘치즈 크로크무슈’는 멕시코 음식 엘로테에서 착안해 스위트콘과 모짜렐라 치즈를 프랑스식 샌드위치에 접목했다.
들기름은 라면 시장에서도 쓰임새를 넓히고 있다. 농심은 올해 국산 메밀로 만든 건면에 들기름과 비빔장을 조합한 ‘배홍동막국수’를 선보였다. 기존 비빔면 브랜드에 메밀과 들기름이라는 익숙한 한식 재료를 더한 사례다.
음료에서는 보리가 콜라를 만났다.
하이트진로음료는 지난 7월 국내산 검정보리를 넣은 ‘블랙보리 콜라’를 출시했다. 국내산 검정보리 농축액과 보리 농축액을 넣어 콜라의 탄산감 뒤에 구수한 보리 풍미가 이어지도록 만든 제품이다.
2017년 출시 이후 차 음료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블랙보리 브랜드를 탄산음료까지 넓힌 셈이다. 제로 슈거·제로 칼로리·제로 카페인으로 설계했다.
흑임자의 변신은 더 폭넓다.
할리스는 흑임자와 홍시, 곶감, 모과 등을 활용한 가을 ‘K-무드’ 메뉴 5종을 내놨다. 대표 메뉴인 ‘흑임자 라이스 할리치노’는 흑임자에 버터크림과 쌀 토핑을 조합했다. ‘흑임자 버터크림 라떼’와 ‘흑임자 초코 롤케이크’ 등 음료와 디저트에도 흑임자를 넣었다.
파스쿠찌도 지난달 흑임자를 앞세운 음료·디저트 6종을 선보였다. ‘흑임자 크런치 그라니따’에는 흑임자 젤라또와 흑미 튀밥을 넣었고, ‘흑임자 젤라또 카페라떼’는 에스프레소와 바닐라빈에 흑임자 젤라또를 조합했다.
디저트에도 흑임자와 인절미맛 크림, 떡을 넣은 ‘카사타 흑임자’와 통단팥·떡을 곁들인 ‘흑임자 젤라또 허니브레드’를 내놨다. 전통적으로 떡이나 죽에 사용하던 흑임자를 커피와 젤라또, 케이크로 옮긴 것이다.
버거킹은 지난 6월 디저트 브랜드 골든피스와 협업해 ‘흑임자 킹퓨전’을 선보였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흑임자 소스를 넣고 미니 약과를 토핑했다. 한 메뉴에 흑임자와 약과를 동시에 활용한 사례다.
파리바게뜨는 고추장을 빵 속으로 가져왔다.
‘K파바’ 프로젝트의 첫 샌드위치 제품인 ‘고추장 불고기 샌드위치’는 토종효모 반죽으로 만든 빵에 고추장 불고기와 깻잎 마요 소스, 채소와 무채 피클을 넣었다. 불고기와 깻잎을 쌈으로 먹는 익숙한 조합을 샌드위치 형태로 바꾼 제품이다.
파리바게뜨는 앞서 제주 청보리와 팥앙금, 쑥떡을 넣은 ‘K파바 제주 청보리빵’, 비빔밥의 색감을 케이크로 표현한 ‘K파바 비빔 케이크’ 등도 선보였다. 한국 식재료뿐 아니라 한식의 조합과 시각적인 이미지까지 베이커리에 적용하고 있다.
이디야커피는 한국의 길거리 음식 자체를 카페 메뉴로 가져왔다. 씨앗호떡과 팥·슈크림 붕어빵에 잡채호떡, 피자호떡, 햄치즈 계란빵을 더한 ‘길거리 간식’ 6종이다. 익숙한 겨울 간식에 새로운 속재료를 넣고 카페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디저트로 바꿨다.
업계의 최근 움직임은 단순히 전통 음식을 그대로 복원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고추장과 들기름, 흑임자처럼 이미 맛이 익숙한 재료를 버거·도넛·콜라·아이스크림 같은 예상 밖의 메뉴와 섞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특히 맥도날드의 고추장 버터 소스가 아시아 13개 시장 캠페인으로 확대된 사례는 이런 시도가 국내 소비자를 겨냥한 이색 메뉴를 넘어 해외 시장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파리바게뜨 역시 ‘K파바’를 통해 전통 식재료와 한국의 식문화를 베이커리 메뉴로 넓히고 있다.
익숙한 맛을 그대로 내놓는 대신 형태와 조합을 바꾸는 것. 최근 식품업계가 ‘한국의 맛’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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