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주 기록한 ‘10억팔’의 벽 넘을지 관심
계약금은 기대의 크기일 뿐 성공 보증 못해
최근 대만에서 열린 제14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8년 만의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일본을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 선발 투수로 나선 하현승(부산고) 7이닝 1피안 2볼넷 8탈삼진 무실점 완봉승을 거두며 우승의 일등공신이었다.
이런 하현승은 21일 열리는 2027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가장 주목 받을 선수로 꼽힌다. 전체 1순위 지명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큰 관심은 지명 후에 쏠린다. 바로 하현승이 한기주의 기록을 넘어 KBO 사상 최초의 ‘10억원 초과 신인’이 될 것인지 됐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10억원’은 신인 계약금의 보이지 않는 천장처럼 남아 있다. 2006년 KIA에 입단한 한기주가 받은 10억원을 20년 동안 누구도 넘지 못했다. 오
하현승은 드래프트 직전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자신의 가치를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증명했다. 일본과 결승전뿐아니라 대만전 5.2이닝 무실점, 일본과의 슈퍼라운드 3이닝 무실점까지 포함해 국제무대에서도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줬고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하현승의 몸값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메이저리그의 평가다. 그는 미국 진출을 선택했다면 훨씬 많은 계약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뉴욕 양키스는 하현승에게 300만달러, 당시 환율로 약 40억원 규모의 계약을 제안했다. 하지만 하현승은 미국 직행 대신 KBO에서 경험을 쌓은 뒤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같은 고교 졸업 예정 선수들의 사례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광주일고 우완 박찬민은 KBO 드래프트 대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120만5000달러(약 18억3000만원)에 계약했다. 덕수고의 투타 겸업 유망주 엄준상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150만달러(약 22억6000만원)에 사인했다. 하현승이 받은 것으로 알려진 300만달러 제안은 이들보다도 훨씬 크다. 세계 최대 야구시장에서도 하현승의 잠재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MLB와 KBO의 계약금을 액수만 놓고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MLB 국제 아마추어 선수는 구단별 보너스 풀 안에서 계약하고, 계약 직후부터 길고 불확실한 마이너리그 경쟁을 거쳐야 한다. 반면 KBO 최상위 신인은 상대적으로 빠른 1군 진입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제도와 선수 육성 환경 자체가 다르다. 그럼에도 40억원 안팎의 해외 제안을 포기한 선수에게 국내 구단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인정할 것인지는 국내 유망주들의 미국행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상징성이 작지 않다.
역대 KBO 신인 계약금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최고 기록은 한기주의 10억원이고 장재영이 2021년 키움과 9억원에 계약해 뒤를 잇는다. 임선동(LG), 김진우(KIA), 유창식(한화)이 각각 7억원을 받았고 지난해 전체 1순위 박준현도 키움과 7억원에 계약하며 공동 3위 그룹에 들어갔다. 김명제(두산), 윤호솔(NC), 안우진(키움)은 각각 6억원을 받았다.
문제는 한기주의 10억원이 무려 20년 전의 금액이라는 점이다. 프로야구의 시장 규모와 선수 연봉, FA 계약 규모는 그 사이 크게 변했지만 신인 계약금의 최고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구단으로부터 수십억원의 평가를 받은 하현승이 전체 1순위로 지명된다면 10억원 이상이 거론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시각도 나온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높은 계약금이 프로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역대 최고액 계약자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기주는 150㎞대 후반의 빠른 공으로 큰 기대를 모았고 프로에서 71세이브를 올렸지만 잦은 부상과 수술로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펼쳤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9억원을 받은 장재영 역시 시속 150㎞ 후반의 강속구를 앞세워 최고의 투수 유망주로 평가받았지만 제구 문제 등으로 투수로 정착하지 못했고 결국 외야수로 전향했다.
7억원을 받은 유창식도 고교 시절 기대에 비해 프로에서는 확실한 에이스로 자리 잡지 못했다. 김명제 역시 6억원이라는 거액을 받고 두산에 입단했지만 선수 생활이 기대만큼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반대로 계약금이 역대 최고 수준은 아니었던 선수 가운데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신인 계약금이란 이미 이뤄낸 성과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에 대한 투자라는 뜻이다.
투수에게는 특히 위험 부담이 크다. 고교 시절 150㎞를 던지고 전국대회를 지배했다고 해도 프로의 긴 시즌과 강한 타자들을 상대하면서 구위와 제구를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어깨와 팔꿈치 부상이라는 변수도 있다. 그래서 10억원이든 15억원이든 그것은 ‘10억원짜리 실력’을 이미 갖췄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단이 그 정도 위험을 감수할 만큼 미래 가치가 크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럼에도 하현승이 역대 최고 계약금에 도전할 조건을 갖춘 것은 분명하다. 194㎝의 장신 왼손 투수라는 희소성, 150㎞ 안팎의 빠른 공, 타자로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운동능력에 국제대회에서 대만과 일본을 상대로 보여준 강심장까지 갖췄다. 여기에 실제 MLB 구단의 거액 제안까지 존재했다. 단순히 국내 고교야구 성적만으로 가치를 매기던 과거의 신인들과는 또 다른 시장의 평가를 받은 셈이다.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키움도 이미 고액 계약의 전례가 있다. 장재영에게 9억원, 지난해 박준현에게 7억원을 지급했다. 특히 박준현 계약 당시 키움은 미국 진출 가능성과 전체 1순위라는 점, 성장 가능성을 계약금 산정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다음 그렇다면 양키스의 300만달러 제안을 포기하고 국내에 남은 하현승에게 어떤 숫자를 제시할지는 향후 국내 최고 유망주를 붙잡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결국 하현승의 계약금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갈래여야 한다. 10억원을 넘어선다면 20년간 멈춰 있었던 KBO 신인 몸값의 새로운 이정표라는 의미를 충분히 부여할 수 있다. 동시에 그 숫자가 하현승의 성공을 미리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냉정함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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