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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로 그려낸 20년의 ‘나’… 그림이 된 철학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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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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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다. 나를 그리다/최재목 지음/영남대출판부/2만원

 

심심할 때 끄적이는 낙서가 한 사람의 삶과 내면을 기록하는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철학자 최재목 영남대 교수가 20여 년 동안 일상에서 그린 낙서 자화상 145점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나를 찾다. 나를 그리다’는 저자가 2003년부터 최근까지 그린 200여 점의 낙서화 가운데 자화상을 시기별로 골라 엮은 책이다. 세미나 자료집의 여백과 눈에 띄는 종이는 물론 쓰레기통에 버려진 계란 상자와 해변의 모래까지 그의 도화지가 됐다. 볼펜과 매직, 보이차, 매니큐어 등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그림의 도구가 됐다.

 

그렇다고 단순한 그림 모음집은 아니다. 각 페이지에는 자화상과 함께 저자의 철학적 단상이 놓여 있다. 독자는 그림과 글을 따라가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열린 책’인 셈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은 곧 자기 인식의 변화이기도 하다. 초기 자화상에서는 불안과 흔들림이 느껴지고, 중기로 갈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치열한 탐색이 두드러진다. 후기 작품에서는 삶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관조와 수용의 태도가 엿보인다. 한 인간이 살아온 시간과 그때그때의 마음이 그림의 선과 표정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최 교수는 프롤로그에서 “심심하거나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혹은 일이 힘들고 불안할 때 그 순간을 견디기 위해 낙서하듯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낙서 자화상을 “‘나’라는 한 인간이 이 지상에서 견딘 이야기이자 마음의 종종걸음”이라고 표현한다.

 

그림과 글, 철학적 사유가 어우러진 이 책은 거창한 예술론이나 철학적 명제를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무심코 그은 선 하나,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게 한다. 바쁘게 살아가느라 자신의 내면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현대인에게 일상의 낙서가 어떻게 자기 성찰의 기록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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