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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된 쾌락… 추방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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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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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장기·혈액 등 금지된 거래들
혐오 넘어 사회적 규범으로 확대
아무리 막아도 욕망 사라지지 않아
도덕과 시장의 공존 가능성 고찰

막을수록 범죄 키운 규제의 역설
경제적 효율성만으론 설명 못해
“허용과 규제, 이분법 판단 넘어
위험 줄일 시장의 규칙 설계를”

금지된 거래의 경제학/ 앨빈 로스/ 생각의힘/ 3만2000원

 

우리는 매일 수많은 거래를 하며 살아간다. 물건을 사고팔고 노동의 대가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어떤 거래는 당사자들이 원하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데도 사회가 “해서는 안 된다”며 막는다. 성관계와 출산, 대리모와 입양, 술과 마약, 고금리 대출과 바가지요금, 혈액과 혈장, 신장 이식, 의료조력사망과 임상시험 등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술·마약·장기이식·의료조력사망 등 어떤 거래는 허용되고 어떤 거래는 금지되는지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특히 제3자의 ‘혐오’가 사회적 규범과 법·제도로 확대돼 시장을 제한하는 과정을 살피며 도덕과 시장의 공존 가능성을 묻는다. 생성형 AI 이미지
저자는 술·마약·장기이식·의료조력사망 등 어떤 거래는 허용되고 어떤 거래는 금지되는지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특히 제3자의 ‘혐오’가 사회적 규범과 법·제도로 확대돼 시장을 제한하는 과정을 살피며 도덕과 시장의 공존 가능성을 묻는다. 생성형 AI 이미지

201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 앨빈 로스는 ‘금지된 거래의 경제학’에서 묻는다. 왜 어떤 거래는 허용되고 어떤 거래는 금지되는가. 우리가 혐오하는 거래는 정말 해로운가. 거래를 금지하면 사람들은 더 안전해지는가. 책은 이 질문을 통해 도덕과 시장이 공존할 수 있는지를 살핀다.

 

저자가 주목하는 개념은 ‘혐오’(repugnance)다. 여기서 혐오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감정이 아니다. 거래 당사자들은 기꺼이 거래하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제3자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며 개입하는 상황을 뜻한다. 개인의 감정이 사회적 규범으로 확대되고, 나아가 법과 제도를 통해 거래를 금지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앨빈 로스/ 생각의힘/ 3만2000원
앨빈 로스/ 생각의힘/ 3만2000원

문제는 도덕적 혐오와 실제 피해가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때 동성 간 성관계나 인종 간 결혼이 일부 사회에서 범죄로 취급됐지만, 사회적 가치관이 바뀌면서 오늘날에는 많은 사회에서 더는 불법이 아니다. 반대로 과거에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던 행위가 기술과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로운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결국 무엇을 금지할 것인지는 단순한 도덕적 직관만으로 결정하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금지의 역설’은 술과 마약 문제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은 1920년부터 1933년까지 금주법을 시행했지만 술을 원하는 사람들의 수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거래가 지하로 숨어들면서 범죄와 결합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저자는 사람들이 원하는 거래를 불법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그 거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시장 참여자들이 범죄에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좋은 의도로 만든 정책이라도 실제 결과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고금리 대출과 바가지요금도 같은 문제를 던진다. 고금리 대출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을 더 어려운 상황에 빠뜨릴 수 있지만, 신용에 대한 접근 자체를 막으면 필요한 돈을 구할 수단이 사라질 수도 있다. 재난 상황에서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는 바가지요금 역시 소비자에게는 부담이지만, 높은 가격이 새로운 공급자를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장 이식이다. 이식 가능한 장기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신장 매매는 금지돼 있다. 신장은 기증할 수 있지만 돈을 받고 거래할 수는 없다. 저자는 신장 가격이 사실상 ‘0원’으로 정해져 있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공해 기증을 늘리는 것이 왜 강한 혐오의 대상이 되는지, 무보상 기증과 보상 거래 사이에 어떤 도덕적 차이가 있는지를 묻는다.

혈장도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다. 혈액과 혈장은 모두 생명을 구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미국에서는 유료 혈장 기증이 허용돼 필요한 혈장을 확보하고 다른 나라에 공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신장과 혈장을 다르게 바라보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 차이가 정말 일관된 도덕적 원칙에 근거한 것인지 저자는 따져 묻는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의료조력사망과 임상시험 등 삶과 죽음의 영역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새로운 치료법이나 백신을 개발하려면 누군가는 일정한 위험을 감수하고 임상시험에 참여해야 한다. 그렇다면 위험을 감수한 참가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정당한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에는 자원자를 의도적으로 감염시켜 백신의 효과를 빠르게 확인하는 ‘챌린지 실험’도 논의됐다. 저자는 여기서 단순한 찬반을 넘어 우리가 어떤 위험은 받아들이고 어떤 위험은 혐오하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책이 보여주는 경제학은 가격과 이윤만 계산하는 학문이 아니다. 시장에서 어떤 거래를 허용하고 어디까지 규제할 것인지는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저자는 도덕과 시장이 충돌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허용’과 ‘금지’라는 이분법적 판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거래를 무조건 막거나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가 가져올 위험과 부작용을 줄이면서 사회 전체의 이익을 높일 수 있도록 시장의 규칙을 설계하는 일이다.

결국 경제학은 인간의 욕망과 도덕적 가치가 충돌하는 현실을 외면하는 학문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더 나은 해법을 찾는 학문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세계적인 석학의 통찰을 통해 시장과 도덕이 반드시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며, 적절한 규칙과 제도를 통해 두 가치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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