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철학하기―예술인가, 진실인가?/ 헬레나 드브레스/ 성시윤 옮김/ 한울아카데미/ 4만2000원
“나의 삶을 책으로 남긴다면 무엇을, 어디까지 써야 할까.” 회고록 쓰기가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자신의 삶을 기록하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 하면 고민이 시작된다. ‘내 기억은 정확한가’, ‘회고록은 반드시 사실만 담아야 하는가’, ‘가족의 어두운 과거까지 공개해도 되는가’ 같은 질문이다.
‘회고록 철학하기―예술인가, 진실인가?’는 이처럼 회고록을 쓰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근본적인 문제를 철학의 시선으로 탐구한다. 미국 웰즐리대학 철학 교수이자 회고록 작가인 헬레나 드브레스는 회고록의 개념과 진실성, 예술성과 윤리, 타인에 대한 책임, 집필의 의미 등을 형이상학·인식론·가치론과 연결해 살핀다. 단순히 ‘잘 쓰는 법’을 알려주는 실용서가 아니라, 회고록이라는 장르가 무엇이며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묻는 철학적 자기계발서다.
책은 먼저 자서전과 근대 회고록, 개인 에세이 등을 비교하며 회고록의 장르적 특성을 짚는다. 이어 인간의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이유로 회고록을 본질적으로 허구로 보는 ‘회고록 허구론’을 검토한다.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고 일부 사건이 흐릿해진다고 해서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문학적 표현을 위해 과거의 장면을 어느 정도까지 재구성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중요한 기준은 ‘체험적 진실’이다. 과거의 모든 사실을 완벽하게 재현하기는 어렵지만, 예술성을 앞세워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존재하지 않았던 일을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회고록의 진실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복원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삶을 정직하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있다는 설명이다.
회고록에 등장하는 타인에 대한 윤리적 문제도 짚는다. 배우자와 부모, 자녀, 친구의 삶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공개할 경우 사생활 침해나 상처를 넘어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가족이 함께 과거를 돌아보며 서로의 상처와 삶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일이 결코 ‘나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 회고록을 쓰려는 이들에게 예술과 진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기준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하며 타인에게 이야기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철학적 안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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